함덕해수욕장 수심 얕고 물빛 예뻐 강추…만만한 올레길 망오름정상 비현실적 풍경 감탄 절로
고요와 사색의 시간을 원한다면 제주에선 오름과 올레길이 고전이다. 제주에는 섬 전역에 368개의 오름이 있고 26개 코스의 올레길이 있다. 사진=이송이 기자
예전 같으면 단체여행객이 많을 시기지만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으로 인해 단체여행객의 행렬도 자취를 감췄다. 삼삼오오 가족여행객이나 커플여행자들이 대부분인 요즘 제주의 5월은 관광버스에서 쏟아져 나오는 인파에 치일 일도 없다. 공항과 비행기 안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이 제주에 도착하면 저마다의 취향에 따라 곳곳으로 흩어진다.
#오름이자 올레길 19코스
고요와 사색의 시간을 원한다면 제주에선 오름과 올레길이 고전이다. 제주에는 섬 전역에 368개의 오름이 있고 26개 코스의 올레길이 있다. 올레길은 해안을 따라 마을길과 바닷길이 실핏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제주 어딜 가나 만나게 되는 오름은 그 태생설화처럼 칠칠치 못한 조물주 할망이 한라산을 두고 가다가 무시로 떨어 뜨려놓은 흙덩이처럼 잊을 만하면 둥글둥글 서서 사람을 반긴다.
오름은 동네 뒷산처럼 쉽게 오를 수 있고 올레길은 바다와 산과 마을을 두루 이으며 아기자기하면서도 시원하게 이어진다. 산을 좋아하지 않아도 길에 취미가 없어도 올라보고 걸어보기에 부담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주의 자연을 더 살갑게 만나기 위해 오름을 오르고 올레길을 걷는다. 등산이나 트레킹처럼 오르고 걷는 것에 목적이 있다기보다 올라보고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제주의 남다른 자연을 더 가까이서 친근하게 만날 수 있다.
아름다운 함덕해변 곁에 있는 서우봉은 오름이자 올레길 19코스에도 포함된다. 함덕해수욕장을 목적지로 삼고 갔다가도 무심코 오름을 오르고 올레길도 걸어볼 수 있다. 시간이나 에너지를 많이 들이지 않고도 짧은 시간에 함축적으로 제주의 진수를 맛보기에 제격이다. 멀리 서귀포나 성산, 협재까지 가지 않고도 제주만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오름은 동네 뒷산처럼 쉽게 오를 수 있고 올레길은 바다와 산과 마을을 두루 이으며 아기자기하면서도 시원하게 이어진다. 산을 좋아하지 않아도 길에 취미가 없어도 올라보고 걸어보기에 부담이 없다. 사진=이송이 기자
제주는 국내에서 가장 이국적인 섬이다. 육지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제주 특유의 지형과 풍경을 오름과 올레길에서 맞닥뜨린다. 보이는 것이 새로우니 느껴지는 감정도 새롭다. 낯섦을 찾아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면, 제주의 이국적 풍경 속에서 낯선 무언가를 건져 올릴 수 있을 것만 같다.
#황홀한 전망과 신비한 숲길
함덕해수욕장은 수심이 얕고 물빛이 예뻐서 제주도민이 추천하는 해변이다. 물빛은 날씨에 따라 스카이블루, 에메랄드, 코발트, 밀키블루를 오간다. 바다의 빛깔을 표현할 수 있는 또 다른 단어가 있다면 그 역시 함덕해변에 붙일 수 있을 테다.
해변과 그 인근으로 펼쳐진 잔디마당은 꽤 이국적인 정취를 풍긴다. 너른 잔디위엔 캠핑과 차박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작은 텐트를 치고 낮 시간을 즐기는 데일리 캠핑족부터 큰 텐트를 치고 며칠씩 야영을 하는 전문 캠퍼들, SUV를 취향껏 꾸며 차박의 낭만을 즐기는 차박족 등 가지각색의 캠퍼들이 뒤섞여 있다. 해변 옆으로 야영장도 따로 갖춰져 있다.
함덕해변은 분위기가 편하면서도 ‘핫’해서 가족단위 여행객과 젊은 커플들이 늘 혼재되어 있다. 사진=이송이 기자
함덕해변은 분위기가 편하면서도 ‘핫’해서 가족단위 여행객과 젊은 커플들이 늘 혼재되어 있다. 2030이 주류를 이루는 월정리나 세화해변보다 정감 있으면서도 서귀포보다 트렌디하다. 가슴이 탁 트이게 너른 풍경도 매력이다.
함덕해수욕장은 유명 관광지라 사람이 적지 않지만 대부분의 관광객은 야자수 심겨진 너른 잔디와 함덕해수욕장의 물빛에 마음을 뺏겨 해변을 산책하거나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반면 서우봉 산책로는 번잡함을 피해 고요함을 찾아 가는 길이다.
서우봉은 나름 오름이지만 걷는다는 표현이면 적당할 정도로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경사도 급하지 않다. 곧장 오르지 않고 오름의 허리를 둘러 걷는다. 서우봉 허리에서는 방목 중인 말이 풀을 뜯는 모습도 흔하다.
서우봉은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경사도 급하지 않다. 서우봉 허리에서는 방목 중인 말이 풀을 뜯는 모습도 흔하다. 사진=이송이 기자
정자가 있는 곳까지 조금만 올라가도 절로 감탄사가 터지는 ‘끝내주는’ 전망이 펼쳐진다. 한라산이 가림 없이 드러나고 그 아래로 중산간지역이 어우러지고 함덕해수욕장도 한 눈에 들어온다. 제주에서도 손꼽히는 전망이다.
산책길을 따라 좀 더 걸으면 문득 아늑한 숲길이 반긴다. 식생이 달라선지 숲속 오솔길의 운치도 육지의 그것과는 좀 다르다. 나무 이름이야 일일이 알지 못하지만 제주 특유의 식물들이 뿜어내는 섬만의 독특한 조화가 신비롭다. 숲속 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해안까지 내려가 볼 수도 있다.
산책길을 따라 좀 더 걸으면 문득 아늑한 숲길이 반긴다. 올레길과 서우봉 둘레길이 겹치다가 다시 흩어지고 또 겹친다. 사진=이송이 기자
서우봉 둘레길은 올레길이기도 하다. 올레길과 서우봉 둘레길이 겹치다가 다시 흩어지고 또 겹친다. 서우봉에 난 소소한 길은 올레길 말고도 제1숲길, 제2숲길, 제3숲길, 망오름길 등 아기자기한 길들이 여럿이다.
하이라이트는 ‘망오름정상’이다. 걷다가 그냥 지나쳐 버리기 쉽지만 팻말을 따라 조금만 걸어가면 기막힌 장관을 만난다. 별달리 오르지 않아도 쉽게 품을 내어주는 정상에 닿으면 갑자기 탁 트이는 시야로 멀리 제주의 구불구불한 해안선이 펼쳐지고 그 옆으로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장난감처럼 흩어져 있다.
사뭇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풍경이란 직접 보지 않고는 말로나 사진으로는 잘 표현되지가 않는다. 특히 이곳이 그렇다. 사진에 담긴 풍경은 실제의 감상에 비하면 10분의 1도 못 채워주는 느낌이다. 너른 잔디가 펼쳐져 있고 군데군데 벤치도 있어서 홀로 한동안 명상을 하거나 여럿이 피크닉하기에도 좋다.
하이라이트는 ‘망오름정상’이다. 문득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사진=이송이 기자
#공항에서 30분, 당일치기도 가능
함덕은 공항에서 버스로는 40~50분, 렌터카로는 30분 남짓 걸린다. 제주공항에서 함덕해변까지 가는 빨간색 직행 버스 101번이 30분마다 있다.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평일은 항공료도 특히 저렴하다. 시간에 따라 1만~2만 원대의 항공편도 많다. 부지런을 좀 떨고 시간을 잘 맞추면 저렴한 가격으로 당일 여행도 충분히 가능하다.
김포에서 아침 7~8시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날아가 하루 종일 제주에서 시간을 보내고 저녁 9시 무렵의 마지막 비행기로 돌아오면 12시간은 족히 제주를 즐기다 올 수 있다. 당일여행이라면 굳이 렌터카도 필요 없다. 숙소 예약도, 짐도 필요 없다. 홀가분히 휘리릭 날아갔다 올 만하다.
직장인이라면 기분이 영 다운되는 어느 날 출근길에 연차를 내고 문득 방향을 틀어 김포공항으로 향하는 상상만으로도 마음은 이미 ‘훨훨’ 날아간다. 5분에 한 번씩 비행기가 뜨고 내린다는 제주공항에 항공편은 그야말로 널렸다. 실행을 하든 안하든 언제든 당일치기로 떠날 수 있다는 설렘을 품어볼 수 있는 요즘 제주. 어쨌든 설렘에는 비용이 들지 않는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