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여행작가 ‘코시국’ 수입에 맞춰 소비…3번의 암 겪으며 ‘소확행’ 날마다 자연 속 ‘굿모닝’
#강연 대신 캠핑카 일주하며 유튜버로
오재철 씨 가족은 2020년 11월부터 2021년 2월까지 3개월여간 캠핑카로 전국을 일주했다. 사진=오재철 작가 제공
코로나19 전에는 소위 ‘잘나가는’ 여행작가로 불리며 강연과 방송, 원고료 등으로 500만~1000만 원 정도의 수입을 벌었던 여행작가 오재철 씨의 일상도 코로나 전과 후로 많이 달라졌다. 불러주는 곳이 없어졌고 수입도 5분의 1로 줄었다. 강연료가 그의 주 수입원이었기에 다수가 모일 일이 없는 요즘엔 소소한 원고료나 사진작업 등으로 용돈벌이를 하는 정도다.
예전 같았으면 그는 지금쯤 해외 어딘가를 떠돌고 있었을 테지만 요즘은 주로 가족과 함께 한국의 곳곳을 여행한다. 오재철 씨는 “요즘엔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고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캠핑카로 여행한다”고 했다. 아내 정민아 씨 역시 여행작가인 덕에 부부를 얽매는 일은 없다. 일곱 살 딸아이도 아직 미취학이라 세 식구 함께 여행하기에도 좋은 시기다. 다만 사람 많은 곳은 되도록 피하려고 한다. 아이가 있기에 여행에서의 안전은 더더욱 유념해야 할 항목이다.
오재철 씨 가족은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2월까지 3개월가량 캠핑카로 전국을 일주했다. 그는 “서울에 있을 때 오히려 코로나19에 걸릴까봐 걱정이 많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나 마트에 가거나 카페와 식당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는 늘 긴장이 됐다”며 “하지만 캠핑카로 세 식구가 자연 속을 여행하니 코로나 걱정도 줄고 마음도 한결 자유로웠다”고 전했다. 여행을 못 떠나는 사람들에게 세 식구의 캠핑카 여행을 보여주기 위해 강연 대신 아이의 이름을 딴 유튜브 ‘라니라니tube‘도 시작했다.
#‘진짜가족’ 될 수 있는 기회
예전 같았으면 오재철 씨는 지금쯤 해외 어딘가를 떠돌고 있었을 테지만 요즘은 주로 가족과 함께 한국의 곳곳을 여행한다. 사진=오재철 작가 제공
캠핑카 여행은 코로나19 시대의 안전한 여행법으로 꼽힌다. 여행을 하면서도 숙소나 식당, 카페 등에 갈 필요 없이 캠핑카 안에서 모든 게 해결된다. 캠핑카로 여행하는 곳도 도심보다는 주로 한적한 자연속이다. 비대면 여행이 가능하다.
오재철 씨네 세 식구는 3개월 동안 캠핑카 여행을 하며 “요즘 같은 땐 캠핑카 여행이 고급 리조트보다 마음 편하고 자연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어 좋았다”고 말한다. 9시에 눈을 떠 침대에서 뒹굴다가 커피를 마시고 ‘오늘은 어디 갈까’를 궁리하는 캠핑카 여행의 하루하루는 새로움과 반복의 연속이었다고.
매일 달라지는 풍경은 새롭지만 매일 눈을 뜨고 밥을 해먹고 산책하고 이동하는 건 캠핑카의 또 다른 일상이다. 작은 공간에서 온종일 함께 있는 가족, 괜찮을까? 오재철 작가는 “집에 살 때는 못 느꼈던 가족의 새로운 면들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다”고 캠핑카 여행을 소개한다.
그는 “함께 산 지 오래된 부부라도 캠핑카 여행을 하다보면 상대방의 전혀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고 서로를 좀 더 깊이 알아갈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며 “아이와의 시간도 더 깊이 있게 누릴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가족이란 단지 집이라는 공간을 함께 쓰는 사람이 아니라 시간을 함께 쓰는 사람이다. 캠핑카 여행을 통해 ‘진짜 가족’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 오 작가 부부는 이미 7~8년 전 400여 일간의 신혼여행으로 세계일주를 하며 내공을 다졌다.
물론 캠핑카 여행에서 불편한 점을 꼽으라면 좋은 점만큼이나 많다. 장기여행은 더 그렇다. 24시간 좁은 공간에 계속 붙어있어야 하고, 작은 화장실에선 씻는 것이 불편하고, 빨래를 하려면 빨래방을 찾아가야 하고, 부엌이 좁아 밥 해먹기도 불편하다. 집같이 너른 침대도 없다. 하지만 매일 새로운 풍경에서 눈을 떠 모닝커피를 마실 수 있고, 자연 속에서 제철 재료로 식사를 할 수 있고, 하루 종일 아이와 뛰놀 수 있고, 하루 24시간을 좀 더 길게 누릴 수 있다. 비로소 ‘온전한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오재철 작가는 “집에 살 때는 못 느꼈던 가족의 새로운 면들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다”고 캠핑카 여행을 소개한다. 사진=오재철 작가 제공
오재철 씨 아내 정민아 씨는 “우리는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을 여행한다”는 말로 3개월여의 캠핑카 여행을 설명했다. 그녀는 “일상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여행 중에는 우리가 얼마나 많이, 깊게 웃었나가 행복의 척도가 된다”고 덧붙였다.
#슬기로운 소비생활
코로나19는 우리의 삶을 제한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만남, 운동, 여행, 모임, 스킨십처럼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일상의 작은 일들을 그리워하게 됐다. 오재철 작가는 “코로나19로 인해 작은 것에서 만족하는 삶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많은 사람들에게 의식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사실 그는 평탄한 길을 걸어온 여행작가는 아니다. 근육암, 위암 등 암을 3번이나 겪어냈다. 때문에 누구보다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 얼마나 큰 것인지 잘 안다. 오 작가는 “흔히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어서 여행을 못한다고들 하지만 우리는 돈은 없지만 시간이 있으니 여행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로 수입이 줄어드는 것 정도는 괜찮다. 건강하기만 하다면…”이라며 “병치레를 하면서 위를 바라보기보다는 내가 가진 능력 안에서 행복과 만족을 추구하게 됐다”고 말했다.
오 작가는 “한 달 150만 원이면 3인 가족이 살 수 있다. 소비에 맞춰 수입을 늘리는 게 아니라 수입에 맞춘 소비를 한다”며 “소비를 하기 위해 일하는 것을 멈추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돈에 맞춰 생활한다. 삶의 기준이 외부가 아니라 내 안에 있기 때문에 나에게 맞는 소비는 내가 정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줄어든 수입은 그의 가족에게 그리 큰일은 아닌 듯 보인다.
그는 “여행을 하면서 상대적인 행복감을 자주 맛봤던 탓에 어려운 환경이 닥쳐도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낼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하루에 1만 원짜리 호스텔에서 자다보면 5만 원짜리 콘도에만 가도 행복하다. 반면 20만 원짜리 특급호텔에서 자다보면 5만 원짜리 콘도에 만족하기가 어렵다. 여행을 통해 그런 상대적 만족감에 대한 경험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니 오히려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이 저절로 생긴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제한된 능력과 시간, 에너지를 원하는 곳에 쓰고 싶다고 했다. 여행을 하면서 ‘좋아하는 것’에 대한 취향도 명확해졌다. 그에게 ‘슬기로운 소비’란 돈의 소비가 아니라 제한된 시간과 에너지의 소비다. 사진=오재철 작가 제공
그는 자신의 제한된 능력과 시간, 에너지를 원하는 곳에 쓰고 싶다고 했다. 여행을 하면서 ‘좋아하는 것’에 대한 취향도 명확해졌다. 그에게 ‘슬기로운 소비’란 돈의 소비가 아니라 제한된 시간과 에너지의 소비다. 그는 “불안이 부스터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타인의 취향에 전복돼 휩쓸려 갈 수 있다”며 “인생을 더 재미있게 잘 살기 위해선 먼저 자신의 취향과 깜냥을 잘 알아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오재철 작가는 수입이 대폭 줄어든 요즘에도 생활전선에서 자신만만하다. “코로나19가 장기화돼도 5년은 잘살 거 같다”고 말한다. 오히려 ‘가짜’가 많았던 ‘여행바닥’에서 지금은 ‘진짜’를 가려내기 위한 시간일 거라고 했다. 그는 “여행이 원래 돈 되는 직업은 아니었잖아요?” 반문하며 “코로나19가 지나가고 나면 유명세와 돈을 좇던 어중이떠중이는 가고 진짜 좋아서 하는 사람들만 남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코로나19 시대에 ‘인간의 적응력’은 더 큰 화두가 됐다. ‘강한 자’가 아니라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았던 인류의 역사처럼 오재철 작가는 ‘적응’이라는 관점에서 여행작가라는 직업을 다시 보고 있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