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꼬막’ 산복도로 옛모습 그대로…168계단 뷰 맛집 ‘김민부전망대’, 1년 뒤 배달 ‘유치환우체통’ 감성 플러스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두 달 뒤에 전국의 피란민이 부산으로 몰려왔는데 전쟁 전 40만여 명이던 부산 인구가 당시 100만 명까지 늘었다. 초량동 모습. 사진=이송이기자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산동네에 남았다. 산동네에 정착해 살면서 부두 노동자나 자갈치 시장 일꾼 등을 하며 생계를 이었다. 부산역 부근에는 그래서 까꼬막이 많다. 지금은 까꼬막의 중간 중간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어 이질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까꼬막 골목들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1970~1980년대를 연상케 하는 골목길을 걸으면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
초고층빌딩과 세련된 도시의 거리 속에서 왠지 주눅이 든다면 가끔은 잘 못살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시간여행을 해보길 권한다. 아련한 향수 속에서 삶의 기운을 다시 얻어갈지 모른다.
#피란민 이야기길
‘이바구’는 이야기란 뜻의 부산 사투리로, 이바구길은 말하자면 초량으로 대표되는 부산 서민들의 이야기길이다. 사진=이송이 기자
‘이바구’는 이야기란 뜻의 부산 사투리로, 이바구길은 말하자면 초량으로 대표되는 부산 서민들의 이야기길이다. 이바구길은 부산사람들이 그 길에서 겪어낸 시대와 세월의 희로애락을 굴곡진 길 따라, 또 가슴 먹먹해지는 풍경 따라 굽이굽이 풀어낸다. 초량동의 구불구불, 오르락내리락 하며 이어지는 골목길들은 숱한 이야기로 물들어 있다.
이바구길은 일제강점기 부산항 개항과도 그 궤를 같이 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피란민의 생활터전이 되어 생존을 위한 길로 다져졌다. 이후 본격적으로 산업이 일어섰던 1970~1980년대의 굴곡진 세월까지 켜켜이 고스란히 담고 있다. 산비탈에 난 구불구불한 길들이 그 길 곁에 사는 사람들 이마에 깊게 패인 주름과도 닮았다.
#세월을 머리에 인 골목사람들
이바구길로 들어서면 바로 초량동의 옛 이야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옛것들은 분주한 일상 속에서 잠깐의 여유를 준다. 이바구길 초입에는 1922년 일제강점기 때 부산 최초의 근대식 개인 종합병원으로 쓰였던 백제병원 건물이 있다. 지금은 멋진 카페가 됐다.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잔하며 주머니 속 타임머신에 에너지를 넣는다.
카페에서 나오면 몇 걸음 걸을 것도 없이 부산 최초의 창고로 쓰였던 남선창고터가 있다. 건물은 사라지고 없지만 담장을 남겨놓은 채 지난 세월을 굽어본다. “부산 사람치고 남선창고 명태눈깔 안 빼먹은 사람 없다.” 한 어르신의 말이다. 남선창고는 당시 부산의 생선창고였는데 북쪽에서 오는 신선한 명태를 보관해 명태고방이라고도 불렸단다. 어른들은 여전히 옛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과거에 묻혔던 이야기는 남선창고터를 찾은 여행객으로 인해 잠시나마 다시 부활하곤 한다.
이 길에서는 최초라는 수식어도 흔하다. 조금 더 걸어가면 한강이남 최초의 교회인 초량교회가 있다. 교회에선 여전히 예배를 한다. 이 거리의 모습 속에는 굳건히 살아남은 것들이 많다. 초량초등학교와 초량교회 역시 과거는 물론 현재에도 성성하다. 여전히 마을 사람들의 학교이자 교회다. 세월을 잇는 징검다리이자 생활의 중심에 들어앉아 있다. 현재를 걸으며 과거를 만나고 과거를 바라보다가도 문득 현재를 맞닥뜨린다. 이것이 사람 사는 골목을 걷는 맛이자 묘미다.
1970~1980년대를 연상케 하는 ‘초량이바구길’을 걸으면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 사진=이송이 기자
“여기 요 이쁘장한 아가씨가 내다.” 근처에 있던 할머니가 사진을 가리키며 진지하게 농담을 건넨다. 담장갤러리가 보여주는 사진과 시를 보며 어렴풋 그 시절 골목의 정서를 읽는다. 나고 진 사람들의 자취를 더듬는 일은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시공간을 또 다른 의미로 재생한다.
#파란만장 골목과 168계단
길은 골목을 배회하다 문득 가파른 계단을 내 놓는다. 168개의 계단이 있어 ‘168계단’이라 불리는 계단 앞에서 그 경사도에 다리가 후들거린다. 스키장 최상급 난이도의 슬로프보다 더 가파르다. 누군가는 마실 삼아 놀러온 길이지만 밤낮으로 동네를 오갔을 사람들에게는 이 계단은 생활의 한 부분이다.
옛날엔 아낙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우물물을 길어다 물동이를 이고 올랐다고도 하고 새벽마다 밤마다 부두노동자들이 한잔 술 걸치고 휘청이며 오갔던 길이라고도 했다. 생활과 노동으로 지긋하리만치 고단했을 계단은 이제 관광상품이 됐다.
2016년부터는 무료 모노레일까지 설치됐다. 동네 사람들 말로는 예전엔 부두 노동자들이 일하러 갈 때 다녔던 지름길이었다고. 그 시절을 떠올리며 모노레일을 타지 않고 계단으로 올랐다.
계단은 바라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힌다. 역시 한 번에 오르기엔 힘에 부친다. 다행히 몇 계단 오르지 않아 아담한 전망대가 발길을 쉬게 한다. ‘김민부전망대’다. 이 전망대는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로 시작하는 가곡 ‘기다리는 마음’의 작사가인 김민부 시인의 이름을 땄다. 그 시절이든 지금이든 먼 바다를 바라보면 누군가 혹은 무언가 그리운 마음이 일어난다. 확 트인 시야는 마음까지 훤하게 트여준다.
168개의 계단이 있어 ‘168계단’이라 불리는 계단 앞에서 그 경사도에 다리가 후들거린다. 스키장 최상급 난이도의 슬로프보다 더 가파르다. 사진=이송이 기자
#1.5km 타임머신
김민부전망대를 들려 가면 힘겨운 168계단도 금방이다. 계단을 다 오르면 길 끄트머리에서 산복도로를 만난다. 산의 배를 둘러 만들었다고 해서 산복도로다. 길의 이름은 ‘망양로’. 이 역시 전쟁통에 피란민들이 산비탈에 모여 살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길인데 지금은 주로 차도다. 여행자에게 산복도로는 오르기 힘든 까꼬막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어디서나 끝내주는 전망을 선물한다.
부산역에서 산복도로를 오가는 333번 버스가 다니는 이 길에는 ‘유치환의 우체통’이 있다. 부산 동구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한 유치환 시인을 기려 만들었다. 그리운 이에게 엽서나 편지를 써 우체통에 넣으면 1년 뒤에 배달해준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나의 유년에게나 청춘에게 보내는 편지여도 좋다.
해가 져 어둑해지고 저녁의 검푸른 빛이 바다를 물들일 때쯤, 지저분한 것은 어둠에 감추고 황홀한 불빛만 반짝이는 이바구길과 산복도로는 얼핏 산토리니를 닮은 것도 같고 이탈리아의 아말피 해안을 떠올리게도 한다.
초량이바구길은 겨우 1.5~2km 정도의 짧은 길이지만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15km, 150km보다 더 길고 끈끈하다.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 과거도 되살리고 추억도 끄집어낸다. 자꾸만 자꾸만 이야기를 끄집어낼 때 마을은 비단 현재에만 존재하지 않고 시대를 거슬러 옛 사람들을 만나고 그때 그 시절을 되살린다.
해가 져 어둑해 지고 저녁의 검푸른 빛이 바다를 물들일 때쯤, 지저분한 것은 어둠에 감추고 황홀한 불빛만 반짝이는 이바구길과 산복도로는 얼핏 산토리니를 닮은 것도 같고 이태리의 아말피 해안을 떠올리게도 한다. 사진=이송이 기자
아직도 이 골목 구석구석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단한 삶을 살아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흘러간 시간들은 박제처럼 굳어있지 않다. 앨범이나 추억으로 그치고 마는 이야기가 아니라 여전히 그 속에 살아 숨 쉬는 사람들로 인해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눅진한 삶의 이야기들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실핏줄 같은 골목길들처럼 끊김 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