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일 서울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하이브리드카 개발 기념식에 참석한 정몽구 현대차 회장(왼쪽)과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이멜트 회장의 방한에 정부, 재벌총수들이 줄줄이 면담을 가질 만큼 GE의 위상은 대단했다. 웬만한 재벌총수는 아예 이멜트 회장의 면담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이멜트 회장의 이번 방한 기간 중 있었던 각계 인사들의 만남 가운데 최대 하이라이트는 한국 재계랭킹 3위인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과의 만남이었다.
공식적으로 이멜트 회장의 일은 이날 저녁 5시 현대차의 하이브리드차 정부 납품 발표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는 축사를 한 뒤 이해찬 총리와 정 회장 등과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저녁식사가 끝난 뒤 이멜트 회장은 정몽구 회장을 포함한 현대차그룹 핵심 경영진과 극비 미팅을 가졌다. 참석자는 현대차그룹 핵심 경영인 5명과 GE그룹 고위 경영인 5명이었다. 재계의 눈과 귀는 이날 극비 미팅에서 양대 기업이 어떤 협의를 가졌는가에 쏠리고 있다.
공식적으로 이번 이멜트 회장의 방한 목적은 지난 5월 그가 방한했을 때 체결된 현대차와 GE의 소비자금융 부분 협력사업방안을 매듭짓기 위한 것이었다. 이날 GE와 현대차는 현대캐피탈에 GE측이 40%의 지분을 출자하는 문제를 최종 매듭지었다.
현대차와 GE의 협력은 현대차에겐 그룹의 금융 부문 위험을 줄이고, GE에겐 한국 소비자금융에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해 줄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물론 현대차는 유럽이나 미국 등 해외수출 자동차의 할부금융 분야에서도 GE의 협력과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GE는 최근 2~3년 사이 한국 투자를 크게 늘렸다. 최근 잠실 시그마 빌딩을 사들인 것을 비롯해 강남지역에 2~3곳의 빌딩을 매입하는 등 부동산 투자도 크게 늘리고 있다. 이들 빌딩에는 현재 한국에 진출해 있는 GE그룹의 계열사를 모두 입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재계에선 GE가 그간 자회사인 GE플라스틱을 통해 현대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관계를 맺어 왔는데, 이번 현대캐피탈에 대한 출자를 계기로 양사의 사업협력 폭이 크게 넓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 GE의 부품을 사용한 현대의 NF쏘나타.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벌써 두 회사의 협력은 현대차에 플러스 효과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중순 발행한 현대캐피탈의 3년만기 회사채가 연 4.98%대의 저리로 발행된 것이다. 물론 이는 현대캐피탈이 GE와 자본합작 계약을 맺은 뒤 신용평가사들이 신용등급을 올렸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다.
정태영 현대캐피탈 사장은 지난 8월 현대캐피탈에 대한 합작이 마무리되면 현대카드에 대한 투자유치도 하겠다는 발언을 해 실현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GE가 이웃 일본에서도 GE카드를 발행하고 있고 이미 수차례 국내 카드사 인수 움직임을 선보였지만 사실상 국내 카드사 인수는 매물이 거의 소진된 상태라, 국내에선 합작 형태로 진행할지, 아니면 단독으로 신용카드를 발행할지 주목받고 있다.
캐피탈에 이어, 현대카드도 GE소비자금융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할 경우 현대차는 부실한 금융부분에 대한 시름을 덜 수 있고, GE는 국내 소비자 할부금융 중 가장 큰 규모인 자동차 할부금융 시장에 진출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실제 현대차와 GE의 합작설이 지난해부터 대두되자, 미국에서 가장 큰 실적을 갖고 있는 자동차할부 금융사인 GMAC가 삼성카드와 합작을 서둘러 GMAC캐피탈(가칭)을 설립, 지난 7월부터 영업에 나서고 있다. GMAC캐피탈은 오는 12월 정식 출범한다.
카드나 캐피탈 등 금융분야에선 삼성이 현대보다 앞서고 있지만, 자동차 할부와 주택할부의 최강자가 현대와 합작해 들어오자 계열사에 자동차 제조사 없는 삼성에서도 GM과 합작하는 차선책을 택한 것.
GE그룹에 자동차 계열사가 없고, 현대차는 미국과 서유럽 수출에 열을 올리고 있어, 현대차는 안마당을 내주는 대신 미국과 서유럽에서 자동차 판매를 할 때 GE의 협력을 얻게 되는 윈윈게임인 셈이다.
문제는 국내에서 GE의 몫을 어느 정도 인정해 줄 것인가 하는 점. 현대차는 이번에 GE 소비자금융파트로부터 자본을 도입하면서 이미 국내에 들어와 있는 GE캐피탈과 연계할 방침이다. GE의 신용카드업이나 자동차 할부, 주택금융 등은 비은행계 금융사임에도 세계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현대캐피탈은 일단 클라스 오토라는 자동차할부 상품을 첫 번째 상품으로 내세웠고, 향후 주택금융 시장도 적극 공략할 태세다.
현대캐피탈에선 GE캐피탈 코리아에서 소규모로 운영을 준비중이던 주택관련 상품을 모두 없애달라고 요청하는 등 ‘실력’을 행사했다는 후문이다. 현대차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국내 자동차 할부 시장의 과실을 내주는 대신 철저하게 바터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재계에선 GE와 합작한 현대차의 금융파트가 이미 석권하고 있는 자동차 할부 시장은 물론 주택할부 시장에서도 상당한 파괴력을 보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일단 조달금리가 싸기 때문에 현대차로선 단연 다른 금융기관에 비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다.
현대캐피탈은 지난 10월1일 주주총회를 열고 지분 38%를 가진 GE가 추천한 3명을 신임 이사로 뽑았다. 본격적인 동업관계에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하는 대목이다.
현대차그룹이 GE와 할부금융에서 손을 잡자 경쟁 관계에 있는 삼성, LG, GM대우 등은 매우 긴장하는 표정이다. 특히 삼성의 경우 삼성캐피탈의 경영이 시원치 않고 GE와 그동안 매우 우호적인 사업관계를 유지해왔던 점에 비춰 큰손을 놓치지 않을까 우려하는 표정이다. 이처럼 삼성이 긴장하는 것은 자동차 할부금융을 필두로 현대차그룹이 금융시장에서 몸집을 키울 경우 삼성이 직격탄을 맞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