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고속 부당지원’ 혐의로 발목…아시아나항공 매각 완료 땐 중견기업 전락
#박삼구 전 회장의 혐의 살펴보니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5월 10일 박삼구 전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틀 후인 12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증거 인멸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고발에 따른 것이다. 공정위는 2020년 8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공정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로 박 전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금호그룹이 그룹 재건 과정에서 박 전 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회사 금호고속을 부당하게 지원했다는 이유에서다.
박삼구 전 회장이 지난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2016년 12월 스위스 게이트그룹은 1600억 원 규모의 금호고속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30년간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독점 공급권을 얻는 계약을 체결했다. BW는 발행회사의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사채를 뜻한다. 당시 게이트그룹이 인수한 금호고속 BW는 0% 금리에 만기 최장 20년의 조건이었다. 공정위에 따르면 당시 정상금리는 3%대 후반 수준으로 금호고속은 금리 차이에 해당하는 162억 원의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 아시아나항공은 다른 기내식 업체들과 더 유리한 거래를 진행할 수 있었지만 BW 인수를 수락한 게이트그룹과 거래해 재산상의 피해를 입은 셈이다.
뿐만 아니다. 게이트그룹과 계약을 맺기 전, 금호그룹의 자금 사정이 어려워지자 금호산업, 금호리조트 등 9개 계열사는 2016년 8월~2017년 4월 금호고속에 총 1306억 원을 담보 없이 저금리로 빌려줬다. 이에 공정위는 금호그룹 계열사에 총 32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고, 금호산업, 아시아나항공, 박삼구 전 회장 등을 고발 조치했다.
공정위 측은 “금호그룹 전체의 동반 부실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총수 일가의 숙원인 그룹 재건 및 경영권 회복 목적으로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회사가 계열사 가용자원을 이용해 무리하게 지배력을 확장한 사례”라며 “금호고속이 핵심 계열사를 인수해 총수 일가의 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력이 유지·강화되고 관련 시장에서의 공정한 거래 질서가 저해됐다”고 설명했다.
금호그룹 측은 공정한 거래였다고 주장하지만 박삼구 전 회장의 구속은 막지 못했다. 공정위 고발 후 금호그룹 측은 “각 거래들은 적정 금리 수준으로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매우 짧은 기간 동안 일시적인 자금 차입 후 상환된 것으로 박 전 회장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라며 “금호고속에 대한 BW 투자 역시 전략적 제휴에 따른 금호그룹의 지주회사로서 성장 가능성을 고려해 이루어진 통상적인 거래로 전혀 이례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박삼구의 금호그룹 재건 실패와 위기
박삼구 전 회장은 2016년 전후로 금호타이어 인수도 시도했다. 하지만 수천억 원에 달하는 현금 마련이 쉽지 않았다. 금호고속을 부당지원한 것도 금호타이어 인수 자금 마련을 위한 무리수였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당시 금호그룹 측은 금호타이어 인수를 위한 컨소시엄을 구성하려고 했지만 채권단이 거절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금호타이어는 2018년 중국 더블스타에 매각됐다.
금호타이어 인수 실패에 이어 2018년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대란 사태가 불거졌다. 당초 아시아나항공은 게이트그룹과의 합작법인 게이트고메코리아를 통해 2018년 7월부터 기내식을 공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2018년 3월 게이트고메코리아가 인천광역시에 건설 중이던 공장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공급 개시일이 2018년 10월로 미뤄졌다. 아시아나항공은 샤프도앤코코리아라는 업체와 임시적으로 기내식 공급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중소 업체인 샤프도앤코코리아는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물량을 감당하지 못했고, 결국 2018년 7월 1일 승객들에게 기내식을 공급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2018년 7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열린 ‘아시아나항공 No Meal(노 밀) 사태 책임 경영진 규탄 문화제’에서 아시아나항공 승무원과 시민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이후 금호그룹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도 악화했다. 삼일회계법인은 2019년 아시아나항공 감사보고서에 ‘한정’ 의견을 내 파장이 일기도 했다. 결국 박삼구 전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기로 했고, 한때 HDC그룹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시도했으나 중도 철회했다. 현재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 관리 하에 있으며 대한항공과 매각 협상이 진행 중이다.
#남은 금호그룹의 운명은?
박삼구 전 회장의 구속이 당장 금호그룹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 전 회장은 2019년 3월 회장직을 비롯해 금호그룹 관련 직위에서 모두 물러났기 때문이다. 금호그룹도 박 전 회장 구속 이후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현재 박 전 회장의 장남 박세창 금호산업 사장과 장녀 박세진 금호익스프레스 상무는 계열사 임원으로 재직 중이다. 2020년 말 기준 박 전 회장의 금호고속 지분율은 44.8%, 박세창 사장의 지분율은 28.6%에 달한다.
금호고속이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차기 금호그룹 총수도 박세창 사장이 유력해 보인다. 그러나 금호리조트가 지난 5월 1일자로 금호석유화학에 매각됐고, 아시아나항공 매각까지 완료되면 금호그룹은 금호산업과 금호고속, 금호익스프레스 정도만 남은 중견기업이 된다. 박세창 사장 입장에서는 금호산업으로 과거 영광을 회복해야 하는 숙제를 안은 셈이다.
반면 박삼구 전 회장의 동생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의 상황은 대조적이다. 박찬구 회장은 대우건설, 대한통운 인수 과정에서 박삼구 전 회장과 갈등을 빚었다. ‘형제의 난’으로 불린 이들 형제 간 대립은 소송전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박찬구 회장이 이끌던 금호석유는 2015년 금호그룹으로부터 계열 분리됐다.
박찬구 회장은 최근 공격적인 투자에 이어 금호리조트 인수까지 성공하면서 그룹 외연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그룹 주력 계열사인 금호석유는 업황 개선에 힙입어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1조 8545억 원, 영업이익 6125억 원을 기록하며 창사 이래 분기 기준 최대 실적을 달성하기도 했다.
박찬구 회장은 올해 조카이자 금호석유 지분 10%를 보유한 개인 최대주주 박철완 전 금호석유 상무와의 경영권 분쟁을 사실상 ‘완승’으로 마무리했다. 최근 박찬구 회장은 금호석유 대표이사를 비롯한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이는 회사의 경영 기반이 견고해졌고 각 부문의 전문경영인들을 이사회에 진출시켜 경영에 참여할 기회를 열어줘야 한다는 박찬구 회장에 판단에 따른 것이다. 다만 박찬구 회장의 회장직은 그대로 유지된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