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 영상과 사진 발견, 이번엔 피해자 직접 고소…숨진 전 여친 사건도 재수사 검토
‘가을방학’ 멤버이자 유명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다수 작곡한 가수 겸 작곡가 정바비(본명 정대욱)가 교제하던 여성을 폭행하고 성관계 영상 등을 불법 촬영한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됐다. 사진=MBC ‘뉴스데스크’ 방송 화면 캡처
“오늘 부로 저에 대한 고발 건에 대한 검찰 송치가 이루어졌습니다. (중략) 이 상황이 심히 유감스럽습니다만, 향후 검찰 조사에 있어서도 성실하게 임하여 남겨진 진실을 밝혀나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2020년 11월 18일 정바비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밝힌 ‘검찰송치 관련 입장문’의 일부다. 당시 정바비는 강간치상 혐의로 고발돼 해당 혐의는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의견 사건 송치가 이뤄졌지만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는 기소의견으로 사건이 송치됐다. 이후 정바비는 검찰에서 두 가지 혐의에 대해 모두 불기소 처분을 받는다. 검찰 불기소 처분이 나오자 지난 2월 15일 그는 다시 무혐의 관련 입장문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밝혔다. 이 글에서 그는 “제가 처음부터 주장해온 대로, 검찰은 최근 고발 사실 전부에 대해 혐의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라며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최초 언론 보도로 인해 많은 이들이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억울하게 고발당해 경찰 수사와 검찰 수사를 거쳐 결국 무혐의를 받은 것처럼 보였던 정바비는 최근 또 다시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사건이 검찰에 송치되는 상황에 놓였다. 2020년 검찰 송치 당시에는 블로그를 통해 입장문까지 냈던 행보와 달리 이번에는 침묵하고 있다. 이번에는 폭행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는 2020년 사건과 동일하다.
2020년 사건 당시에도 경찰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에 대해 혐의가 있다며 기소의견을 밝혔다. 압수수색을 통해 영상 3개와 사진 4장을 확보했는데 이에 대해 ‘촬영 각도 등을 놓고 볼 때 피해자가 인지하지 못한 채 찍힌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렇지만 검찰 판단은 달랐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서부지검은 증거로 확보된 영상과 사진에 대해 불법 촬영이 아니었다는 정바비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경찰의 주된 혐의점이었던 화장실에 간 피해자를 따라가 문틈 사이로 몰래 촬영한 증거에 대해 정바비는 “장난이었다”고 주장했고 검찰이 이를 인정했다.
올해 불거진 두 번째 사건 역시 피해 여성의 신체를 동의 없이 촬영한 혐의를 받고 있는데 여기에 폭행 혐의까지 더해졌다. 경찰은 정바비의 휴대전화와 컴퓨터, 노트북 등을 확보해 증거 분석 작업에 착수했는데 압수수색이 이뤄인 시점은 지난 2월 초로 그가 2020년 사건에 대한 무혐의 입장문을 블로그에 올리기 2주 전 즈음이다.
이를 단독 보도한 MBC는 “압수수색한 경찰은 불법 촬영된 영상 여러 개를 발견했는데 2020년 7월부터 9월 사이 각기 다른 날짜와 장소에서 촬영됐고 피해자는 이들 영상의 존재조차 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2020년 사건 피해자는 그해 4월 사망했는데 몇 달 뒤인 그해 7~9월 사이 또 다른 불법 촬영이 이뤄졌다는 게 피해자의 주장이다. 정바비는 이번에도 합의 하에 찍은 영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는 피해자 진술이 분명히 존재한다. 피해자가 직접 고소한 사건이기 때문에 검찰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 진술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물론 이번에도 검찰 수사에서 불기소 처분이 나올 수 있고 그렇게 된다면 정바비는 또 다시 자신의 블로그에 무혐의 관련 입장문을 올릴 수 있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은 지난해 사건과 비교해 크게 다른 점이 있다. 2020년 사건은 피해자 송 아무개 씨가 극단적인 선택으로 사망하면서 유가족이 사건의 실체를 추적해 고발했다. 이후 경찰 수사가 진행됐지만 피해자 진술이 없었다. 성범죄에서 피해자 진술은 결정적인 증거능력을 갖는다. 대부분의 성범죄는 은밀한 공간에서 둘만 있을 때 발생하는 까닭에 증거와 증인 확보가 어려운 경우가 많아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증거인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 2020년 사건에선 이미 피해자 송 씨가 세상을 떠난 뒤라 진술이 불가능해 “합의 하에 촬영했다” “장난이었다” 등의 정바비 진술이 받아들여져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피해자 진술이 분명히 존재한다. 피해자가 직접 고소한 사건이기 때문에 검찰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 진술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2020년 7~9월 사이 각기 다른 날짜와 장소에서 불법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영상 여러 개가 증거로 확보된 상황에서 피해자의 진술까지 더해질 경우 기소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피해자의 진술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피해자 진술이 증거 능력을 가지려면 일관되고 구체적이며 상세해야 한다. 또한 주변 증언 등 다른 증거와 어긋나는 부분이 없어야 한다. 이런 부분에서 큰 결격사유가 없는 경우 피해자 진술이 증거 능력을 갖게 되고 정바비가 기소될 가능성이 커진다.
뿐만 아니라 2020년 송 씨 사건에서 정바비의 피의자 진술도 흔들릴 수 있다. 영상 3개와 사진 4장 등의 증거는 있었지만 피해자 진술이 없는 상황에서 피의자 진술만 받아들여져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지만 피의자 진술의 신빙성이 무너질 경우 상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검찰은 2020년 송 씨 사건의 재수사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