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장관 “유출 과정 감찰하라” 목청 높여…공수처, 2호 사건 이규원 낙점해 뜻밖의 변수로
박범계 장관은 5월 14일 출근길에 “언론 보도를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다”는 말로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대검찰청에 ‘공소장 유출 과정에 대해 감찰하라’고 지시했다. 사진=박은숙 기자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공소장이 공개된 것을 문제 삼겠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5월 14일 출근길에 “언론 보도를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다”는 말로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대검찰청에 ‘공소장 유출 과정에 대해 감찰하라’고 지시했다.
공소장 등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국금지 수사 당시 이규원 검사는 이광철 청와대 선임행정관에게 자신이 안양지청의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고, 이에 이광철 행정관은 직속상관인 조국 민정수석에게 이 검사가 수사를 받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조국 민정수석은 윤대진 검찰국장을 통해 이현철 안양지청장에게 ‘이규원 검사가 연수를 갈 수 있게 수사를 하지 말라’는 취지로 얘기를 했다는 게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공소장에 포함됐다.
하지만 검찰 수사결정시스템에 접속해 공소장을 본 적이 있는 검사는 100여 명에 달할 정도로 많아, 정확한 유출 과정과 언론 보도 경위를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검찰 내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공소장 내용을 언론에 유출했다면 징계는 충분히 가능하고 그런 조항도 있다”면서도 “다만 공소장을 봤다고 모두 ‘직접 유출한 케이스’로 의심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냐. 조사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변수가 등장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다. 공소장 내용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공수처의 수사 필요성이 제기됐고, 공수처는 이규원 검사를 2호 수사 대상으로 선택했다. 일단 수사 대상이 된 사건은 ‘윤중천 면담보고서 왜곡 및 유출 의혹’이지만, 이성윤 지검장의 공소장에 포함된 ‘조국-이광철 청와대 라인의 수사 개입’ 역시 사건이 공수처에 이첩된 상태라 수사를 개시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검찰은 해당 의혹을 받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재판에 넘기면서 함께 연루된 윤대진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 등 3명의 검찰 관계자 사건을 공수처로 이첩한 바 있다.
공수처가 1호 수사 대상으로 선정한 조희연 교육감과 달리, 조국 전 장관과 이광철 민정비서관은 공수처가 수사뿐 아니라 기소까지 할 수 있다. 현행법상 공수처는 검사의 범죄만 기소할 수 있는데 조 전 장관 등은 검사인 당시 윤 국장에게 지시를 했다는 정황이 있기 때문에 관련 범죄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당사자인 이규원 검사는 진행 중인 1심 재판에서 “(김학의 전 차관 출금 조치가) 잘못됐다면 그것은 봉욱 당시 대검찰청 차장 지시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확인할 여지가 많은 사건을 공수처로 이첩한 후 2개월 가까이 직접 수사 여부를 밝히지 않아 비판을 받았던 상황에서, 이규원 검사 사건을 2호 사건으로 낙점한 것은 우려 불식을 위한 공수처의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공수처는 이규원 검사를 2호 수사 대상으로 선택했다. 사진=박은숙 기자
공수처 내부 소식에 정통한 법조계 관계자는 “해당 사건에는 현 정권의 핵심 인사인 조국 전 장관과 이광철 민정비서관이 연루돼 있다는 점이고 이를 공수처도 알고 있었다”며 “조희연 교육감도 그렇고, 지금 공수처는 ‘정치적 중립성’을 중요한 가치로 놓고 사건을 선택한다. 공수처의 존립을 위해서는 여론의 지지가 중요하고, 그러려면 공수처가 좌와 우를 가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귀띔했다.
검찰이 진행 중인 사건이 있어, 공수처가 마냥 기다렸다가는 ‘공수처와 검찰 간 경쟁 구도’에서 공수처 무능론이 나올 수도 있다. 공수처는 이규원 검사의 허위 보고서 작성 및 언론 유포 과정을, 검찰은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당시 청와대의 기획사정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 검사의 허위 보고서 작성 정황을 포착한 검찰은 현재 이 검사의 배후로 이광철 민정비서관(당시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을 의심하고 소환 여부를 검토 중이다. 공수처도 수사를 본격화할 경우, 당시 진상조사단 내 정치적인 판단과 의사소통들이 공수처와 검찰 모두에서 드러날 수도 있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이규원 검사에서 비롯된 하나의 사건에서 둘로 나눠진 의혹들이 검찰과 공수처에서 각각 수사를 통해 결과가 드러나게 됐다”며 “두 사건이 서로 연결된 부분이 있어서, 검찰도 공수처도 어느 한 쪽이 현 정부에 대해 무조건적인 ‘편들어주기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여권의 반발은 변수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19일 페이스북에 “대검 진상조사단 검사가 공수처 수사대상 1호 검사가 되었다니 또 한 번 기가 찬다”며 “부패와 제 식구 감싸기 때문에 만든 공수처인데 수사대상 1호 검사가 부패 검사가 아닌 축소은폐 수사를 조사한 이 검사가 되다니 이 무슨 희한한 아이러니인가”라고 비판했다.
대권 주자들도 비판을 보탰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성역 없이, 철저하게 수사하길 바랐던 국민의 기대에 어긋난다”고 지적했고,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고나 말할 법한 일”이라며 “엉뚱한 1호 사건 수사로 공수처의 존재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고 언급했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페이스북에 관련 기사를 공유한 뒤 “이러려고 공수처 만들었나 자괴감이 (든다)”고 혹평했다.
앞선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공수처는 1호 사건과 2호 사건을 ‘국민 대다수가 납득할 수 있는’ 수사 결과로 보여줘, 정치적으로 치우친 조직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 큰 시험대에 오른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