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6년 주기설’ 막내 엄청난 부담”…강 “은퇴 후의 생활이 더욱 중요”
최근 은퇴를 발표한 김태술과 오랜 시간 농구팬들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던 강동희 전 감독이 한자리에서 만났다. 김태술은 인터뷰가 진행될 때만 해도 강 전 감독의 합류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6년 주기설의 처음과 끝인 강 전 감독과 김태술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최근 은퇴를 선언한 김태술(왼쪽)의 인터뷰 자리에 강동희가 방문하면서 두 포인트가드 레전드의 만남이 성사됐다. 사진=이영미 기자
#우상과의 만남
인터뷰 전 김태술을 어느 사석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우상이 강동희 전 감독인데 한 번도 따로 만나보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래서 김태술한테는 비밀로 하고 인터뷰 자리에 강 전 감독을 깜짝 손님으로 초대한 것이다. 강 전 감독의 등장에 김태술은 매우 놀랐다. “순간 헛것을 본 줄 알았다”고 말할 정도로 후배는 대선배와의 만남을 기뻐했다.
김태술(김): 진짜 깜짝 놀랐어요. 갑자기 문이 열려서 누가 또 오시나? 싶었거든요.
강동희(강): 종업원이 음식 주문 받으러 온 줄 알았구나(웃음).
김: 그건 아니고요(웃음). 와, 이거야말로 최고의 은퇴 선물입니다. 감독님을 꼭 사석에서 뵙고 싶었는데 그런 기회가 없었잖아요. 제 우상과 이렇게 나란히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합니다.
강: 만약 다른 선수를 만난다면 고민이 많았을 텐데 태술이와 함께한다고 해서 흔쾌히 응한 거야. ‘6년 주기설’의 막내이고, 은퇴를 축하할 겸 고생했다고 격려도 할 겸 나왔어. 그동안 선수 생활하면서 얼마나 고생했을지 잘 아니까.
#‘6년 주기설’과 김태술
김태술은 고교 시절부터 ‘천재 가드’로 주목을 받았다. 연세대를 거쳐 서울 SK에서 프로 데뷔하자마자 여론은 그를 향해 포인트가드 ‘6년 주기설’을 잇는 신인으로 조명했다. 하지만 선수는 그런 시각에 적잖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김: 사실 프로 데뷔 후 제 의지와 상관없이 ‘6년 주기설’의 막내로 언급되는 게 굉장히 부담스럽더라고요. 한번은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어요. 왜 나를 1984년에 태어나게 해서 안 먹어도 될 욕을 먹게 하느냐고요. 제 커리어가 세 분의 선배들 커리어와는 비교가 안 되잖아요. 제 이름이 그 계보에 속하는 바람에 정말 욕 많이 먹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영광스런 일이기도 했지만 엄청난 부담이 되기도 했어요.
강: 태술이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을 거야. 어쩔 수 없이 앞의 선배들과 비교되었겠지만 각자 특징들이 뚜렷하기 때문에 누가 낫다고 말하기가 어려워. 4명 다 자존심, 자부심이 대단했으니까. 그런 점에서 태술이가 6년 주기설의 막내로 꼽힌 건 당연한 거야. 은퇴할 때까지 그 자리를 잃지 않았잖아. 나도 그랬지만 이상민, 김승현 다 자기만의 농구를 했다고. 보기에 따라선 그런 모습이 최고일 수도, 최고가 아닐 수도 있거든. 태술이가 포인트가드로서 자리를 잡은 부분은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주고 싶어. 태술이는 가드로서 절대 부족한 선수가 아니었어.
대한민국 농구계에는 6년마다 대형 포인트가드가 나타난다는 속설인 ‘6년 주기설’이 있다. 이날 한자리에 모인 강동희 전 감독, 김태술을 포함해 이상민, 김승현이 주인공이다. 사진=이영미 기자
김태술은 강동희 전 감독과의 인연 중 유독 이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연세대 시절 당시 LG 선수였던 강 전 감독과 연습경기를 갖게 된 것이다.
김: 연습경기 때 감독님을 맡았는데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셨어요. 아무리 빨리 움직이려고 해도 쫓아가면 사라지시곤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감독님 농구를 보고 자랐거든요. 감독님을 닮고 싶어서 영상 보고 많이 따라하기도 했었고요. 감독님이 선수 시절 자주 사용했던 페이크가 있어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는 척하면서 페이크를 주는 동작인데 그 기술을 제가 잘 사용했어요. 상대편에서 픽앤롤이 들어오면 선수들한테 “야, 속지 말고 한쪽으로 잘라”라고 말할 만큼 제가 굉장히 좋아한 동작이었습니다. 감독님이 가드의 신(神)계에 계셨기 때문에 그 동작을 정말 많이 연습했어요.
강: 나의 고교시절을 떠올리면 난 태술이보다 농구를 못했어.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고. 중앙대 시절에도 농구를 투박하게 한다고 감독님한테 혼도 많이 났었지. 한 번 드리블 치면 골밑에 가서 결정을 지어야 직성이 풀렸거든. 태술이는 내 농구를 보고 성장했지만 난 허재 형 농구를 아주 좋아했었다고. 허재 형을 따라하다 보니 공격적이었던 것이고. 그러다 실업팀 기아 입단 후 농구에 눈이 뜨인 거야. 움직임을 통해 상대의 타이밍을 뺏는 방법을 배우게 된 거지. 사실 국제대회에 나가면 우리가 신장은 작지만 해볼 만했거든. 자신감으로 하나로 밀고 나간 기억들이 많아.
#2011-2012시즌 챔피언결정전
2012년 3월 27일 원주 치악체육관에서는 KBL 챔피언결정전 미디어데이가 열렸다. 원주 동부를 이끄는 강 전 감독과 함께 안양 KGC 선수 대표로 그 자리에 참석한 김태술은 당시 인터뷰를 통해 “강동희 감독님과 이 자리에 같이 앉아 있어서 영광이다. 앞으로 농구 인생이 끝날 때까지 나의 롤모델은 강동희 감독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우상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다.
김: 당시 미디어데이 때 감독님이 “김태술 선수가 못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강: 맞아. 내가 그런 말 했던 기억이 나네.
김: 저는 그 말이 칭찬으로 들리더라고요. 감독님 말씀 덕분에 신나서 경기를 풀어 갔어요.
강: 그랬다면 내가 말을 잘못 한 거야(웃음). 당시 안양 KGC랑 경기를 하면 제일 위에서 압박하는 선수가 태술이니까 어떻게 하면 태술이를 묶을 수 있을지를 놓고 고민을 거듭했거든. 그래서 미디어데이 때 그 말이 나온 것 같아. 태술이는 팀의 주축 선수이면서 모든 패스가 태술이 손에서 가고, 2 대 2나 픽앤롤을 잘하는 터라 태술이의 움직임을 비디오를 통해 분석하면서 연구 많이 했었지.
#김태술 뒤를 잇는 정통 포인트가드는?
포인트가드는 넓은 시야와 유연한 드리블 그리고 이타적인 패싱 플레이로 게임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현대 농구의 트렌드가 바뀌었다. 패스와 게임 리딩으로 대변되는 포인트가드 대신 공격과 경기 조율이 모두 가능한 듀얼 가드로 변화를 이뤘기 때문이다. 강 전 감독은 현재 코트에서 활약 중인 선수들 중 눈에 띄는 정통 포인트가드를 꼽아달라는 요구에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강: 요즘 대세가 듀얼 가드라고 하는데 그래도 실력 있는 정통 포인트가드를 꼽는다면 허훈이 아닐까 싶어. 허훈이 포인트가드로서 재능이 뛰어나 보이는 것 같더라고.
김: 저도 감독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허훈이 패스도 득점도 잘 넣지만 훈이가 3점슛 10개를 넣었다고 가정한다면 그러는 동안 다른 선수들은 그만큼 슛을 쏠 기회가 줄어든다는 걸 의미하거든요. 다른 선수들의 슛 감각도 살려주면서 자신한테 기회가 주어졌을 때 득점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누가 뭐래도 허훈은 경험을 쌓고 2, 3년 지나면 엄청나게 무서운 선수로 성장해 있을 거예요.
#서로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처음에 강 전 감독에게 김태술과 함께하는 인터뷰를 제안했을 때 그는 자신의 출연이 오히려 후배에게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이전 ‘과거’ 때문이리라. 그는 인터뷰 말미에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강: 난 태술이나 농구인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어. 감독이란 자리를 잘 지키고 오래해서 많은 분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후배들에게 모범적인 지도자로 다가갔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잖아. (불미스러운 일로) 농구 인생을 중도 하차할 수밖에 없어 진심으로 미안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은퇴하는 태술이는 어쩌면 선수 생활보다 앞으로의 생활이 더 중요할 수 있어. 현명한 선수이고 운동을 잘했던 선수인 만큼 다른 위치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김: 감독님, 이렇게 나와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전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영광스런 자리였습니다. 만약 제가 농구할 때 감독님이 존재하지 않으셨다면 제 농구는 많이 달랐을 겁니다. 감독님 조언대로 제2의 인생도 멋지게 그리고 겸손하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마음 속 레전드였던 선배와의 만남을 두고 최고의 은퇴 선물이라고 말하는 김태술. 그런 후배를 위해 기꺼이 자리에 함께한 강동희 전 감독. 서로가 가는 방향은 다르겠지만 포인트가드란 옷을 입고 신나게 농구했던 그 시절 그 느낌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