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청사’ 짓고 아파트 분양 혜택…“대선까지 영향 미칠 악재” 전망도
발단은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의 의혹 제기였다. 권 의원은 5월 17일 행정안전부와 관세청에서 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대전에 위치한 관평원이 특별공급 아파트를 노리고 세종시에 신축 청사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2010년부터 세종으로 이전하는 기관의 직원들이 특공 물량을 우선 배정받을 수 있도록 해왔다. 관평원 청사가 대전에서 세종으로 옮겨지면서 관평원 직원들은 세종시 아파트 특공 물량을 분양받을 자격을 얻었다. 관평원 직원 82명 가운데 49명이 특공 분양을 받았고, 수억 원의 시세차익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권 의원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관평원은 세종시 이전 대상이 아니었다. 정부 기관 세종시 이전을 관리하는 행안부의 2005년 고시에서 관평원은 이전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관세청은 2015년 관평원 신축 청사 이전을 추진했고,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과 협의해 세종청사 건축 예산 171억 원을 확보했다. 관세청은 2018년 2월 관평원 세종청사 건축을 앞두고 행안부에 고시 개정 변경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지만 건축을 강행했다.
공사 강행 사실을 인지한 행안부는 2019년 9월 진영 당시 행안부 장관 지시로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고, 관세청은 결국 2020년 11월 세종 이전을 포기했다. 이미 지어진 관평원 세종청사는 기획재정부에 반납됐지만, 현재까지 빈 상태다. ‘유령청사’로 전락한 셈이다. 관평원 세종청사 이전은 무산됐지만 그사이 특공 분양을 받은 직원들은 시세차익을 챙겼다. 세금 171억 원을 들여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한 이유가 소속 직원들이 특공 분양 특혜를 위해서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이유다.
세종시는 2020년 집값 상승률 1위(42%), 공시가격 상승률 1위를 기록했다. 2020년 7월엔 한 주에만 집값 상승률이 3%에 육박하기도 했다. 세종시 내에 지난 한 해 동안 두 배 이상 집값이 오른 아파트 단지가 속출했다. 2020년 다주택 공직자 19명이 세종시 특공 아파트를 매각하면서 올린 차익은 평균 4억 원 정도에 이른다.
권영세 의원은 “특공 아파트를 받기 위해 신청사를 짓는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며 “관세청이 어디를 믿고 이처럼 대담한 일을 벌였는지 청와대가 해명해야 한다. 특히 특공 아파트에 대한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관세청 관계자는 “2015년 관평원의 사무 공간이 협소해 새 청사가 필요했고, 당시에는 세종이 대전보다 부지 확보가 용이해 세종 이전을 추진했던 것”이라며 “특공을 위해 신청사를 건축한 것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의혹 제기 하루 뒤인 5월 18일 “위법사항이 확인되면 수사 의뢰 등 조치를 하겠다. 취소 가능 여부에 대한 법적 검토를 하겠다”며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특공 관련 문제 제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논란은 재점화했다.
새로 문제가 된 건 한국전력 대전중부건설본부·세종지사·세종전력지사 직원들이 청약권을 따낸 것이었다. 한국전력은 세종시에 세종통합신사옥을 짓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세종시 조치원읍에 있는 한국전력 세종지사와 대전에 있는 대전중부건설본부·세종전력지사 192명이 특공으로 세종시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특히 소담동에 지어지고 있는 세종통합신사옥과 조치원읍에 있는 세종지사 사이 직선거리가 13km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세종에서 세종으로 근무지가 이전했는데도 특공으로 분양권을 따냈기 때문이다. 대전 서구와 유성구에 각각 위치한 중부건설본부와 세종전력지사 또한 통합신사옥과 직선거리로 20km 이내다.
근무지가 바뀌더라도 충분히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에 사는 직원들에게 특공 특혜를 주는 건 ‘수도권 기능 분산’이라는 세종시 출범 취지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세종시 공무원 특공은 갑작스레 근무지를 세종시로 이전해야 하는 수도권 거주자들의 주거 문제 해결과 보상 차원에서 마련된 제도다.
또 대전의 한 벤처기업이 2019년 세종시 벤처산업단지에 입주하는 조건으로 임직원 5명이 특공 신청 자격을 받았지만 끝내 벤처산업단지에 입주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임직원 5명 가운데 1명은 청약권을 따내기도 했다. 행복청은 허위 문서 제출과 공급 질서 교란 등의 혐의로 해당 기업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특공 기간이 끝난 공공기관의 독립 사업소 직원들에겐 특공 자격을 연장해주는 사례도 나왔다. 세종시교육청 공무원의 경우 2019년 12월 31일 자로 자격이 없어졌지만 행복청은 시교육청 교육시설지원사업소 공무원들은 2024년 1월까지 아파트 특공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시교육청 산하 세부 조직에 불과했던 교육시설지원사업소가 2019년 1월 시교육청에서 독립했다는 이유였다.
특공 제도가 허술하게 운용되고, ‘공무원 로또급 특혜’로 변질하자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 공방이 벌어졌다. 국민의힘 정의당 국민의당 등 야 3당은 국정감사를 요구했다. 야 3당은 각 당 소속 국회의원 111명 전원 서명을 담아 5월 25일 국회 의안과에 공무원 특공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했다. 야 3당 요구서에서 “특공 제도를 악용한 위법행위로 과도한 시세차익을 얻은 자들에 대해 실효성 있는 조사가 이뤄져 부당이득 등을 환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당인 민주당은 사실상 국정감사 요구를 거부했다. 윤호중 원내대표는 5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부동산 투기를 근절해야 하는 과제는 10번, 20번 반복해도 부족함이 없지만, 검찰에 합동수사본부가 설치돼 있고, 철저한 수사를 하고 있다”며 “국회가 나서서 국정조사 여부를 결정하는 건 그 수사 결과를 지켜보고 해도 늦지 않다”고 답했다.
윤 원내대표는 이어 “다만 공직자, 공기업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 문제에 대해 당당하고 떳떳하게 국회가 투기 근절 조사를 하겠다고 이야기하려면 민주당처럼 국민의힘도 소속 의원 전원에 대한 부동산 투기 여부 조사에 적극적으로 응해야 한다”며 “야당도 똑같이 당당하게 (부동산 투기 여부를) 조사받고, 공직자들에 대한 국정조사 이야기를 꺼내는 게 도리”라고 덧붙였다.
야 3당은 다음 날인 5월 26일 강하게 반발했다. 강민국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매번 야당 탓을 하며 진짜 ‘부동산 투기 전수조사’를 회피하는 건 바로 민주당 아닌가”라며 “이번 국정조사 요구서는 3당이 당리당략과 관계없이 '국민의 대표'로서 요구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강 원내대변인은 “이 정도면 부동산 투기 문제를 발본색원할 의지가 진짜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YTN 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 “집권여당이 오만과 독선으로 비판을 받는 이유가 여기 있다”며 “귀와 눈을 막고 사나”라고 비판했다. 이어 심 의원은 “이번 특공 문제는 ‘LH 사태’로 허탈해하는 국민들의 뺨을 때리는 격”이라며 “야당이 요구하면 무조건 거부하는 편협한 태도부터 고쳐야 한다. 여당은 솔선수범해 국정조사를 수용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도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행복청의 특공은) 수사대상이 되는 부분도 아니고, 수사대상으로 하기에도 어려운 제도적 측면이 있다”며 국정감사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권 원내대표는 “여당의 태도가 죄가 없는 자만이 돌을 던질 수 있다는 얘기인데 돌을 던진 자에게 죄가 있으면 마찬가지로 처벌하면 된다”며 “여당의 반응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고 꼬집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주당 의원은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이번 사태는 4·7 재보궐 선거 때의 ‘LH 사태’와 같이 대선까지 이어질 수도 있는 문제”라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다간 ‘LH 사태’ 꼴 난다. 대선 전에 당 지도부가 먼저 나서서 정면 돌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부동산 투기 의혹을 수사하는 정부 합동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5월 27일 세종시 특공 논란과 관련해 “아직 우리(경찰)한테 고발되거나 수사 의뢰가 접수된 것은 없다”며 “감사원에서 감사한다는 얘기가 있어 상황을 보고 있다”고 밝혔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