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벗고 와일드 장착 ‘성공적’…이수혁과 3번째 인연 “이젠 고민 털어놓는 사이”
“이번 캐릭터는 저랑 성격이 안 닮은 것 같아요. 제가 어릴 적 별명이 ‘촐랑방구’였을 정도였는데(웃음), 지금은 어릴 때만큼 장난치지도 않고 잔잔한 부분이 많거든요. 핀돌이는 굉장히 공격적인 캐릭터죠. 땅굴, 그 막장 아래에서 위아래 없이 자기가 리더인 것에 대한 자신감, 자부심만 있어요. ‘너네는 대체 가능, 난 불가능’이란 대사가 그 면모를 잘 보여주죠. ‘나 없으면 누가 송유관 뚫을래!’ 하는 그런 자신만만함에서 오는 태도가 저랑 안 닮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작업하는 내내 핀돌이를 굉장히 재미있게 촬영했던 것 같아요.”
인생 한 방을 노리는 도유꾼들의 막장 팀플레이를 그린 영화 ‘파이프라인’에서 서인국은 이 막장 팀의 리더이자 도유업계 최고의 천공 기술자 ‘핀돌이’ 역을 맡았다. 드릴과 한 몸이 돼 천재적인 실력으로 송유관을 뚫어 기름을 훔쳐내는 그는 서인국의 말대로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다. 시종일관 다른 팀원들을 무시하고 하대하면서 조금이라도 항의가 나오려고 하면 “너희들이 나 없이 이 프로젝트 성공할 것 같아?”라는 말로 입을 막아버린다. 그래도 막히지 않는 입이 있다면, 주먹을 꽂아 막아버리는 식이다. 서인국이 이제까지 맡았던 캐릭터 중에 가장 거친 캐릭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핀돌이는 정말 너무 거칠어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캐릭터죠. 약간 고슴도치 같은 느낌도 나고. ‘누구도 나를 판단할 수 없어, 누구도 내 위로 올라설 수 없어’라는 느낌이 핀돌이가 가진 매력이지 싶어요. 항상 까칠하고, 또 언제든지 상대와 계약을 파기할 수 있고 계약 중에도 언제든지 도망갈 수 있다는 그런 아슬아슬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또 거칠고 욕도 많이 하고, 막말도 많이 하는 친구라 그런 성격이 기본 표정과 제스처는 물론이고 그냥 가만히 있을 때도 자연스럽게 풍기는 이미지에서 잘 드러나길 바랐어요. 다행히 작품에서 잘 표현된 것 같아서 뿌듯합니다(웃음).”
그런 핀돌이를 꼼짝 못하게 하는 인물이 있다. 그를 이 판에 던져 놓은 ‘고용주’이자 계약 당사자인 작품의 빌런, 황건우(이수혁 분)다. 회사의 손해를 메우기 위해 도유 범죄를 계획하고 핀돌이를 비롯한 팀을 모아 놓은 황건우는 누구도 믿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인물이다. 팀을 도구처럼 부리며 가차 없이 폭력을 가하고 마지막까지 동정이라곤 하려야 할 수 없을 정도로 악하기만 한 인물이다.
그런 황건우를 맡은 이수혁은 벌써 서인국과 tvN 드라마 ‘고교처세왕’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등에 이어 세 번째로 같은 작품에서 만나고 있다. 서인국은 “작품에서는 대립하지만 사석에선 전혀 그렇지 않다”며 이수혁과의 친분을 밝혔다.
“사실 ‘고교처세왕’ 땐 (이)수혁 씨와 이렇게 가까워질 줄 몰랐어요. 그때도 대립 구조의 캐릭터였고, 그걸 준비하는 과정에서 연기적인 부분은 많이 얘기했지만 사적인 이야기를 하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드라마가 끝나고 같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친해져서 서로의 고민도 많이 나누게 되더라고요. 또 ‘파이프라인’ 촬영을 하면서 의지를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이건 수혁 씨가 좀 싫어할 수도 있는데(웃음), 세트 촬영에 먼지가 너무 많았는데 수혁 씨가 알레르기가 있거든요. 그래서 피부가 안 좋아질 때가 있어서 (카메라에) 안 좋은 모습으로 비치면 어떡하나 제가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모니터로 보니까 그런 모습도 건우의 악역다운 모습에 너무 잘 어울리더라고요. 본인도 ‘괜찮네’ 하고 스트레스를 풀고, 저도 ‘너무 괜찮은데?’ 그랬죠(웃음).”
유독 이수혁에게 신경이 쓰인 것엔 친분만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다. 최근 서인국은 “완전한 빌런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며 연기 욕심을 드러냈다. 2012년 연기자 데뷔 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악역을 맡아본 적이 없었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이수혁이 맡은 건우에 특별히 관심을 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저는 빌런의 삶을 보여주는 게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영화 ‘조커’처럼 캐릭터가 빌런으로 가는 방향, 그가 빌런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인 이유 같은 것을 굉장히 딥(Deep)하고 현실성 있게 풀어낸 게 저한테는 신선했어요. 자극적이긴 하더라도 정신적으로 고통을 줄 수 있는 감정적 상태에서 캐릭터를 표현하는 게 배우로서 욕심이 많이 나요. 그러다가 정말 정의로운 히어로에게 그 정의에 꺾여서 처절하게 사라져가는 캐릭터요. 단순하게 ‘악역 하고 싶어요’가 아니라 악역도 여러 가지가 있으니까 그런 걸 한 번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악역으로서의 서인국도 물론 궁금하지만, 그의 첫 정체성이었던 가수로서의 복귀도 팬들이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다. 다행히 길지 않은 시일 내에 가수 서인국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될 것 같다.
“어떻게 하다 보니 이렇게 계속 연기를 보여드리게 됐네요(웃음). 하지만 음반에 대한 목마름은 아직도 있어요. 얼마 전에 음악 작업실을 만들고 작곡가 형들과 작업도 많이 한 상태예요. 또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OST에도 참여하게 됐어요. 제가 정규 앨범이 아직 없는 가수라서, 정규 앨범을 내고 제 음악적인 색을 보여드리고 싶기도 해요. 차츰 차츰 노력해서 만들어가야 할 숙제겠죠.”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