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배 마신 초선 김웅 김은혜와 단일화 효과…조직력 약하고 룰 불리해 승리 낙관 못해
국민의힘의 차기 당권을 둘러싼 6·11 전당대회는 이례적으로 초반부터 과열 양상을 보였다. 당대표로 8명의 후보가 나서면서 보수 정당 역사상 처음으로 예비경선(컷오프)이 실시됐기 때문. 국민의힘 선거관리위원회는 5월 25일 서울 누리꿈스퀘어에서 예비경선 비전발표회를 갖고 26일부터 27일까지 이틀간 여론조사를 진행, 28일 결과를 합산해 컷오프 통과자 5인 명단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본경선에 오를 5명은 나경원 이준석 조경태 주호영 홍문표 후보(가나다 순)로 낙점됐다. 후보별 득표율과 순위는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당대표 지지율 1위를 기록하며 ‘0선 돌풍’을 일으킨 이준석 후보가 종합 득표율 41%로 이변 없이 1위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2위는 나경원 후보로 29%를 득표해 이준석 후보와 두 자릿수 격차를 보였고, 주호영 후보가 15%로 그 뒤를 이었다. 4위와 5위는 여론조사 예상과 달리 중진들이 약진하며 마지막 본선행 티켓을 획득했다. 4선의 홍문표 후보와 5선의 조경태 후보는 각각 5%와 4%를 기록한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발표된 여러 여론조사에서는 이준석 후보와 함께 신인 정치인 바람을 일으킨 김웅 김은혜 후보가 두 중진 후보들보다 앞서는 수치를 보였다. 하지만 실제 예비경선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여론조사에서는 초선 의원들이 중진들보다 높은 지지율을 보였지만, 전당대회는 어디까지나 당내 선거다. 경선룰에서 국민 여론조사 비중이 높아져도 당내 조직력을 무시할 수 없다. 전당대회를 준비한 중진들은 지난해부터 전국을 돌며 조직을 관리했다. 선거를 여러 번 치러본 경륜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노하우가 컷오프 막판 변수로 작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종 후보가 가려지고 본경선이 시작되면서 국민의힘 당권경쟁은 한층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 최대 관심사는 컷오프에서 1위를 기록한 이준석 후보의 ‘돌풍’이 본게임에서도 이어질 것이냐다.
신예그룹 중 이준석 후보만 살아남으면서 본경선에서 초선 후보들과의 단일화 이벤트는 사라졌다. 하지만 ‘중진 대 신예’의 대결 구도가 이어지면 단일화 효과는 누릴 것으로 보인다. 김웅 김은혜 의원이 이준석 후보를 지원할 가능성도 높다. 그럼 이준석 후보는 예비경선에서 받은 41%의 지지를 바탕으로, 김웅 김은혜 후보를 지지했던 표까지 흡수할 수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일부 중진 후보들이 컷오프 전 당대표 선호도 여론조사를 두고 ‘음모론’을 제기해 논란이 됐다. 이준석 후보에 대한 밴드왜건 효과를 노리고 누군가가 의도를 가지고 여론조사를 지속적으로 낸다는 의혹이었다”며 “하지만 이번 컷오프 결과로 국민의힘 내부에 2030을 중심으로 젊은 피를 통한 변화의 목소리가 존재하는 것이 입증됐다. 이러한 흐름은 본경선에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중진들의 경우 주호영 나경원 홍문표 조경태 후보가 지지세를 나눠 갖게 된다. 이에 일각에서는 중진들이 단일화 결단을 내릴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일부 중진 측에서는 단일화 관련 다른 후보와 접촉을 시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중진 의원들 간 단일화 가능성은 낮게 점쳐진다. 또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는 “나경원 후보는 최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경선에서 패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밀릴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주호영 후보 역시 원내대표까지 지낸 여세를 몰아 당대표까지 도전하는데 물러서기 어렵다. 홍문표 조경태 의원 역시 양보할 수 없을 것”이라며 “서로의 입장차 때문에 단일화가 성사될 거라 보지 않는다”고 전했다.
본경선에서 이준석 후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신예 대 중진’의 대결 구도가 이준석 후보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본선에 진출한 5명의 후보는 약 2주일간 권역별 합동연설회 4차례, 토론회 5차례를 치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중진 후보들은 신예그룹의 홀로 남은 후보이자, 1위를 기록한 이준석 후보를 집중 견제할 가능성이 높다. 4 대 1의 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예비경선 과정에서도 나경원 주호영 후보와 이준석 후보 간에 공방이 오가며 네거티브전 양상을 보였다. 중진 후보들은 이준석 후보를 ‘유승민계’로 규정하며 유승민 전 의원의 배후 지원과 당권·대권 장악 의혹을 제기했다.
나경원 후보는 “특정 계파의 당대표가 뽑히면 윤석열 안철수가 과연 (국민의힘으로) 오겠느냐”며 “특정 주자를 두둔하는 것으로 오해받는 당대표라면 국민의힘 모든 대선주자에게 신뢰를 주기가 어렵다”고 비판했다. 주호영 의원 역시 “계파정치 피해자였던 유승민계가 계파정치의 주역으로 복귀하고 있다”며 “유승민 대통령 만들기가 꿈인 사람(이준석)이 대표가 되면 공정한 경선 관리가 가능하겠나. 유 전 의원 말대로 찌질한 구태정치”라고 공격했다.
유승민계에 대한 공세가 이어지자 이준석 후보는 친박 친이 프레임으로 반격했다. 이 후보는 “구 친박계의 전폭 지원을 받고 있는 나경원 후보가 당대표가 되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우리 당으로 오는 걸) 상당히 주저할 것 같다”고 맞받아쳤다.
각 후보들은 컷오프 결과가 나온 이후 공정한 경쟁을 약속했다. 이준석 후보는 결과 발표 직후 자신의 SNS를 통해 “네거티브 없이 끝까지 비전과 미래로 승부하겠다”라는 짧은 소감을 밝혔다.
주호영 후보 역시 “예비경선 기간 당원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대선 3대 필패론’인 영남 배제론, 세대교체론, 계파 부활론, 이제 그만하자”며 “지금 이 순간부터는 정권 교체론, 당 혁신론, 범야권 대통합론이라는 ‘대선 3대 필승론’으로 본선을 이어가자”고 강조했다. 하지만 본경선 경쟁 과정에서 이준석 후보를 겨냥한 네거티브 공방이 이어질 가능성은 존재한다.
본경선의 룰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예비경선에서는 투표 반영비율이 당원투표와 일반시민 여론조사가 50 대 50이었다. 하지만 본경선에서는 당원투표가 70%, 일반시민 여론조사가 30%다. 중진들의 당 조직력이 이준석 후보로 향하는 결집 표를 압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비경선에서 당원과 일반시민 투표율을 나눠서 보면, 일반시민 여론조사의 경우 이준석 후보가 51%로, 나경원 후보(26%)에 2배 가까이 앞선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당원투표에서는 나경원 후보가 이준석 후보에 32% 대 31%로 근소하게 앞섰다고 한다. 본경선의 바뀐 투표 반영비율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한편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본경선을 앞두고 당원투표 연령·지역 할당 결정 과정을 두고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본경선 당원투표에서 청년층과 호남지역이 사실상 배제됐고, 일반시민 여론조사에 ‘역선택 방지 조항’이 들어간 것이 문제라며 초선 등을 중심으로 경선룰을 재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통계청장 출신 유경준 의원은 5월 26일 자신의 SNS를 통해 “당원 여론조사 연령별 비중을 ‘40대 이하(27.4%)’ ‘50대(30.6%)’ ‘60대 이상(42%)’ 이렇게 세 그룹으로 나눠서 할당한다고 한다”며 “이 비율대로라면 청년 몫은 어디에도 없다. 노인 정당임을 인증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지역별 할당에서도 “당원 여론조사 조사대상 인원 1000명 중 호남지역에 배정된 인원은 0.8%, 즉 8명에 불과하다”며 “아무리 지역별 당원 비례에 따른 것이라 하더라도 1000명 중 8명은 너무 한 것 아닌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말로만 호남과의 동행이냐’고 비판한 것. 다만 선관위는 여러 이의제기를 받고 최종 회의에서는 호남 비율을 2%로 상향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하태경 의원은 SNS를 통해 “2030 당원의 참여를 막기 위해 20대와 30대, 40대 당원의 표본을 분리하지 않고 한 묶음으로 합쳐서 조사한다. 명백한 꼼수이자 반칙”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초선 황보승희 의원 등 의원 12명이 긴급 의원총회를 소집 요청하기도 했다.
원내 지도부와 선관위는 현재는 룰 조정 가능성을 일축하는 모습이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얼토당토않은 분석”이라고 잘라 말했다. 국민의힘 중진 의원도 “이미 전당대회가 진행 중이다. 룰 변경은 후보 간 유·불리가 얽혀있어 조정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