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어주고 쪼개고…후계구도 신호탄
▲ 정용진 부회장(왼쪽)과 정유경 부사장 |
현금배당 공시와 동시에 신세계는 영업실적 공시를 통해 2010년 당기순이익 1조 760억 원을 기록, 전년 5079억 원보다 89.4%(5681억 원) 올랐음을 밝혔다. 수치상으로만 보면 현금배당액을 늘릴 법도 한 셈이다. 순이익 1조 원 돌파는 신세계 창사 이래 최초다.
신세계 배당액 증가의 최고 수혜자는 이명희 회장과 아들 정용진 부회장일 것이다. 이 회장은 신세계 지분 326만 2243주(지분율 17.30%)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며 정 부회장은 137만 9700주(7.32%)를 보유한 2대주주다. 정 부회장 여동생인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은 47만 4427주(2.52%)를 갖고 있다.
주당 2500원 배당 결정에 따라 이명희 회장은 81억 5560만 7500원을, 정용진 부회장은 34억 4925만 원을 각각 수령하게 된다. 정유경 부사장 배당액은 11억 8606만 7500원이다.
이에 최고의 실적을 기록하면서 두둑한 배당금을 챙기게 된 신세계 오너들이 어디에 돈 보따리를 풀어놓을지가 관심사로 떠오른다. 그중 황태자 정용진 부회장의 신세계 지분 매입 가능성이 가장 많은 시선을 끄는 대목이다.
정 부회장이 이번 배당액으로 사들일 수 있는 주식 수는 5800여 주다(신세계 1월 20일 종가 59만 3000원 기준). 지분율로 보면 0.03%에 불과하다. 정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크게 앞당겨줄 만한 수치는 아닌 셈이다.
그러나 정 부회장의 추가 지분 매입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정 부회장의 지분율이 지난 4년 4개월 동안 변화가 없었던 까닭에서다. 정 부회장은 지난 2006년 9월 7일 아버지 정재은 명예회장으로부터 84만 주를 증여받은 이후로 추가 지분 매입에 나서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국내 증시에 미치면서 주가가 급락했을 때도 이명희 회장만 신세계 지분을 사들였을 뿐 정 부회장 지분율은 늘지 않아 자사주 대량 매입에 나섰던 다른 재벌가 후계자들과 대조를 이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정 부회장이 이 회장의 충분한 신임을 얻지 못한 탓”이라 여기기도 했다.
▲ 이명희 회장 |
정 부회장은 지난 2009년 말 신세계 총괄대표로 선임되면서 전문경영인들 그늘을 벗어나 신세계 경영을 진두지휘하게 됐다. 지난 연말 인사를 통해 젊은 임원들을 대거 발탁하면서 조직 장악력 또한 높여가고 있다. 이젠 자타가 공인하는 신세계 간판 경영인이 된 만큼 경영권 승계 작업 또한 빨라질 것이란 관측이 주를 이룬다.
정 부회장이 총괄했던 지난 1년간의 신세계 성적표는 외형상 좋은 편이다. 최근 실적 공시를 통해 신세계는 지난 2010년 매출액 11조 253억 원, 영업이익 9927억 원, 당기순이익 1조 760억 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10%, 8% 증가했으며 앞서 살펴봤듯 당기순이익은 무려 89%가 상승했다. 창사 이래 첫 순이익 1조 원 돌파의 신기원이 정 부회장 체제하에서 만들어진 셈이다.
이런 화려한 기록에도 정 부회장의 지난 1년 성적표에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는 시선도 있다. 신세계의 2010년 순이익엔 신세계가 보유하고 있던 삼성생명 주식 처분액이 포함돼 있다. 지난해 5월 삼성생명이 상장되면서 신세계 명의 500만 주의 구주매출로 신세계는 5416억 원의 처분이익을 챙겼다.
삼성생명 지분 처분이익을 제외하면 2010년 신세계 순이익은 2009년 실적을 밑돌게 된다. 실적 발표가 난 1월 17일 60만 원대였던 신세계 주가는 오히려 하락하기 시작해 1월 19일 57만 원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사상 최고 순이익 발표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증시에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2011년 새해 신세계는 창사 이래 가장 큰 변화를 맞이할 전망이다. 신세계는 지난 1월 20일 공시를 통해 “백화점 사업과 이마트 사업으로 기업 분할을 검토 중”이란 내용을 밝혔다. “급변하는 유통 경쟁 환경에 대응한 경영 유연성 제고”와 “사업부 특성에 맞는 독립경영 및 전문성 강화”가 신세계가 밝힌 분할 검토 목적이다.
일각에선 이명희 회장이 정용진 부회장과 정유경 부사장 간의 재산 분할을 염두에 두고 신세계-이마트 분할을 추진할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이 외에도 정 부회장이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홈쇼핑 진출 의사를 밝히면서 사업 확장 움직임 역시 활발해질 전망이다.
신세계에게 격변의 시기가 될 2011년은 경영권 승계 명분 축적을 위해서도 정 부회장에게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4년 넘게 요지부동이었던 정 부회장의 신세계 지분율 변화 여부가 정 부회장의 대관 행보 속도를 가늠할 것이라 보는 시선이 늘어나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