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에 양배추·브로콜리 먹으면 약효 사라져…아스피린과 탄산음료도 상극
회사원 A 씨는 아침에 일어나 우유 한 컵을 마시고 변비약을 복용했다. 점심엔 스테이크를 먹었더니 속이 더부룩해 위장약 한 알을 추가했다. 저녁이 되자 왠지 몸이 으슬으슬 추워서 감기약도 사먹었다. 초기 감기에는 비타민 섭취가 중요하니, 브로콜리수프를 챙겨먹은 뒤 휴식을 취했다. A 씨에게는 모두 건강을 지키기 위한 조치들이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약과 함께 먹어선 안 되는 위험한 조합”이라고 입을 모은다.
#위장약
제산제 계통의 위장약은 우유와 함께 복용하지 말아야 한다. 제산제에 포함된 수산화알루미늄겔과 우유의 칼슘 성분이 상극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유와 동시에 먹으면, 혈중 칼슘 수치가 상승해 구토나 설사, 다뇨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제산제는 위산을 중화시키는 약으로, 속이 쓰리거나 위통이 있을 때 주로 사용한다. 상비약으로 구비해 놓는 가정도 많을 만큼, 위장약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다. 간혹 스테이크 같은 고기류를 과식하고 속이 더부룩할 때도 제산제를 먹곤 하는데, 이 경우 약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나가사와 야스히로 약사는 “고기에 포함된 인산과 제산제 성분이 만나면 약효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고기를 먹은 뒤라면 위산을 억제하는 제산제가 아니라, 위장 운동을 활성화하는 약이나 소화제를 선택하라”는 설명이다. 또한 제산제를 복용할 때는 오렌지주스 등 신맛이 나는 음료도 피해야 한다. 약의 효능이 떨어질 뿐 아니라 증상이 악화될 우려가 있어서다. 일례로 “제산제에 포함된 탄산수소나트륨이 산성 액체와 만나면 이산화탄소가 발생해 ‘속 울렁거림’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변비약
흔히 우유나 유제품은 장 운동을 도와 변비에 좋은 식품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우유와 변비약도 함께 먹어선 안 되는 조합이다. 변비약은 대장에서 약효가 나타나야 하므로 대부분 위장에서 녹지 않도록 코팅되어 있다. 반면, 우유는 위산을 중화시켜 코팅되어 있는 약의 보호막을 손상시킨다. 약이 대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녹아버리게 되는 것. 당연히 약효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변비약이 녹으면서 위를 자극해 복통이나 위경련이 일어나기도 한다.
#감기약
감기에 걸렸을 경우 몸에 좋은 채소를 적극 섭취하려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감기약과 궁합이 맞지 않는 채소도 있다. 예컨대 브로콜리, 양배추, 양상추 등 십자화과 채소다. 이들 채소에는 글루쿠론산이 함유돼 있는데, 감기약과 해열진통제(타이레놀)의 유효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을 분해시켜 버린다. 따라서 감기약 복용 후 이들 채소를 먹으면 약효가 사라질 수 있으니 피하는 것이 좋다.
피로회복을 위한 음료도 잘못 선택하면 역효과다. 미카미 아키코 약사는 “카페인의 과잉섭취로 오히려 컨디션이 나빠질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한다. 감기약이나 해열진통제에는 무수카페인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으며, 자양강장제나 에너지드링크 또한 카페인이 포함된 것들이 많다. 무심코 양쪽을 같이 먹으면 카페인 과잉섭취로 맥박이 빨라지거나 두통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가급적 피로회복 음료는 카페인이 들어 있지 않은 것을 선택하도록 한다.
#항응혈제
처방약은 시판약에 비해 강한 성분이 포함된 것들이 많아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쓰치야병원의 가마타 나오히로 약사는 “조합에 따라서는 생명에 직결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한다. 가마타 약사가 꼽은 위험 조합은 뇌경색이나 심근경색 치료에 쓰이는 ‘와파린(항응혈제)’과 ‘낫토’다.
와파린은 흔히 ‘피떡’이라 불리는 혈전이 잘 생기지 않게 하는 약이다. 그런데 “낫토에는 비타민 K를 늘리는 낫토균이 포함돼 와파린의 작용을 방해하게 된다”고 한다. 낫토 외에도 시금치나 파슬리, 클로렐라 같은 녹황색 채소에도 비타민 K가 많이 함유돼 있다. 따라서 와파린 복용 중에는 이들 식품을 과잉 섭취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반대로 생강이나 마늘, 양파 등 혈액순환을 좋게 하는 식품도 과식하면 출혈의 위험을 높아져 증상을 악화할 수 있으니 주의한다.
#항우울제
카페인이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처방약도 마찬가지다. 특히 정신과 약물을 복용할 때는 삼가도록 한다. 커피 등 카페인이 많은 음료들은 각성효과가 있기 때문에 기분을 안정시키는 항우울제나 항불안제의 효과를 떨어뜨린다. 되레 불안하고 초조한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으니 피하는 게 바람직하다.
#결핵치료제
등푸른생선은 일반인의 건강에는 도움을 주지만, 결핵을 앓는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일례로 다랑어에 많이 들어있는 아미노산은 몸 안에서 알레르기 증상을 일으키는 히스타민으로 변한다. 또한 결핵치료제는 히스타민 분해를 억제하는 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이 둘을 함께 먹으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오한이 나거나 구토 등 알레르기 중독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천식, 알레르기 환자도 관련 증상이 악화될 수 있으니 주의한다.
#조심해야 할 음료들
어떤 약이든 술과 함께 먹는 것은 좋지 않다. 약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데다, 알코올도 약도 간에서 분해되기 때문에 간에 부담이 걸려 면역력 저하로 이어진다. 또한 우유나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약을 복용한 후 1시간 뒤에 마시는 편이 바람직하다.
조심해야 할 것은 카페인이나 알코올만이 아니다. 아스피린계 해열진통제는 탄산음료 및 주스와도 상극이다. 예를 들어 아스피린은 알칼리성에 녹고, 산성에 녹지 않는 성질이 있다. 탄산음료 같은 산성물질과 조합하면 잘 녹지 않아 흡수율이 떨어지게 된다. 나가사와 약사는 “해열진통제를 탄산수와 먹었는데 효과가 전혀 없어 고생한 환자가 있었다”며 “약은 가능한 물에 복용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조언했다.
#올바른 약 섭취 방법
약의 효과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미카미 약사는 “알약 섭취 시 물을 한 입만 삼키고 끝내는 사람이 많은데, 알약 한 알에 물 100ml는 마셔줘야 한다”고 전했다. 마시는 물의 양이 적으면 자칫 목에 걸릴 수 있으며, 위벽에 달라붙어 위벽이 손상될 위험도 있다. 덧붙여 그는 “특정 약을 복용할 땐 어떤 음식이 약효를 떨어뜨리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처음 복용하는 약이라면 약사와 충분히 상의해 피해야 할 약이나 음식이 있는지 체크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