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반기문 안철수 등 3지대 후보 모두 고배…윤석열 ‘참신성’ 대신 1야당 ‘안정감’으로 선회
“3지대에서 대권을 거머쥐는 건 연금술과 비교할 수 있다. 돌로 금을 만들어내는 거다. 할 수만 있다면 굉장히 이상적인 기술 아닌가. 그러나 연금술에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상적이지만 손에 닿을 수 없는 기술이다. 3지대도 마찬가지다. 돌풍을 일으킬 수 있을지라도, 태풍은 불지 않는다. 그간 정치권에서 ‘대세론’이나 '신드롬'을 등에 업었던 유력 인사들도 3지대에서 수없이 스러져갔다. 3지대는 혁신의 수단이 아닌 패망의 지름길이다.”
3지대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한 정치권 인사 주장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를 거치며 3지대 대권 후보를 도운 경험이 있는 이 인사는 “선거를 공학으로 봤을 때 개인의 인기는 당선으로 가는 하나의 축”이라면서도 “그러나 또 다른 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개인의 인기는 대세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다”고 했다. “먼저 갖춰야 할 축은 바로 조직력”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과거 1야당에서 고위당직을 지내다 3지대 후보에게 힘을 실었던 다른 정치권 인사 역시 조직을 강조했다. 이 인사는 “통상적으로 인기가 많은 3지대 인물은 국민에게 참신한 이미지를 준다”면서 “그러나 그들의 약점은 명확하다. 바로 맷집”이라고 했다. 그는 “조직력을 갖추지 않은 상황에서 외부 공격이 들어오면 맷집이 약한 3지대 주자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집권여당이나 1야당은 외부의 공격이 불어 닥쳐도 내부 지지층 결속력 강화 카드를 꺼내며 위기를 이겨낸다. 굳건한 지지층을 하나로 묶으며 반등의 기회를 노리는 셈이다. 그러나 3지대는 태생적으로 ‘중도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 외부서 작은 공격이 들어오면 지지층이 순식간에 와해된다. 결속시킬 핵심 지지층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 돼버리는 거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3지대에서 살아남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면서 “현대를 일으킨 창립자(정주영), 유엔 사무총장(반기문)도 3지대에선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사라졌다”고 했다. 지금까지 3지대를 넘나들며 ‘다크호스의 반란’을 꿈꿨던 주자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지지율 선두를 달렸던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들 중 ‘3지대 대권’ 연금술을 성공시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 야권 관계자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충분히 검토하고 국민의힘 입당 쪽으로 마음을 틀었던 것 아닌가 하는 분석이 고개를 들고 있다”고 귀띔했다.
#대선 완주하더라도…정주영과 문국현의 ‘제3지대 미풍’
1992년 일이다. 한국 근·현대사 중심인물로 꼽히는 거물급 기업인이 대권에 도전했다. 현대 그룹 창립자 정주영 전 회장이었다. 제14대 대통령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정 전 회장은 통일국민당을 창당하며 세 넓히기에 나섰다. 통일국민당 당원 수가 1000만 명이 넘었던 것으로 알려졌을 정도로 정 전 회장의 대권 출마에 관심이 쏠렸다. 정 전 회장은 이른바 ‘금전 정치’를 바탕으로 대선을 치렀다.
정 전 회장의 대권 도전 결과는 3위였다. 김영삼-김대중 ‘양김’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는 388만 67표(득표율 16.3%)를 얻었다. 개표가 끝난 뒤 정 전 회장은 “당원이 1200만 명인데 400만 표라니 우리 당원들은 다 어디에 투표했느냐”며 좌절한 것으로 전해진다. 핵심 지지기반이 약한 제3지대 후보의 맹점을 명확히 드러낸 사례였다.
그래도 정 전 회장의 경우 3지대 후보로 대선을 완주했다는 점을 높게 평가받을 수 있다. 정 전 회장처럼 기존 정치권 경험이 없이 2007년 대선을 완주한 후보는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대표이사 정도뿐이다. 문 전 대표는 17대 대선에서 137만 5498표(득표율 5.83%)를 얻어 4위로 낙선했다.
참신하고 깨끗한 이미지, 그리고 차별화된 정책으로 호평받았던 문 전 대표는 창조한국당을 창당한 뒤 대권에 도전했다. 그러나 그의 참신함 역시 기존 제도권 정치 벽을 넘지 못했다. 참신함만으로 제도권 정치가 쌓아 놓은 조직의 벽을 허물긴 어려웠던 셈이다. 문 전 대표의 참신한 이미지는 ‘강남 아파트 20억 시세차익 논란’, ‘전원주택 토지 용지변경 논란’ 등 상대 후보 측의 검증 공세에 희석됐다.
#대망론부터 중도 포기까지…고건 7개월, 반기문 20일
전 국민적인 인기를 한몸에 받았지만 대권 도전을 중도에 포기한 인물도 있다. 바로 고건 전 총리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다. 둘은 모두 ‘대망론’의 중심에 선 바 있다. 고 전 총리는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보다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고, 반 전 총장은 ‘충청 대망론’이라는 키워드와 더불어 탄핵정국 태풍의 핵으로 꼽히기도 했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두 인물의 대망론은 빠르게 꺼졌다.
노무현 정부 당시 국무총리로 지명된 고건 전 총리는 2004년 3월부터 5월까지 이어진 탄핵 정국서 대통령 직무대행 임무를 무난히 소화해내며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급부상했다. 정치적 커리어도 화려했다. 1970년대부터 전남도지사, 서울시장으로 재임했다. 김영삼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진영을 오가며 두 차례 총리직을 맡았다.
2006년 중반 차기 대선 후보도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고 전 총리의 대선 출마는 기정사실처럼 보였다. 고 전 총리는 2004년부터 2005년까지 꾸준히 30% 이상 지지율을 기록했다. 2006년 중반까지도 이명박 전 대통령보다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그러나 2006년 12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건 씨 기용은 실패한 인사”라고 발언하면서 상황이 변했다. 한때 여론조사 1위를 굳건히 지키던 고 전 총리 지지율은 10%대로 추락했다. 결국 '고건 열풍'은 동력을 상실했다.
고 전 총리는 2007년 1월 16일 대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당시 고 전 총리는 “기존 정당의 벽이 높아 현실 정치 한계를 느꼈다”고 했다. 고 전 총리가 ‘3지대 정치’를 선언한 지 7개월여 만에 나온 불출마 선언이었다. 정치권 일각에선 ‘뭘 해보지도 못하고 주저앉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2000년대 초반 진보 진영에서 활동했던 한 인사는 “고 전 총리는 국무총리와 서울시장, 전남도지사 등 정무보다 행정이 중요한 보직에 오래 있다 보니, 정치적인 외풍을 견디는 맷집이 상대적으로 약했다”면서 “노 전 대통령의 ‘실패한 인사’ 발언이나 지지율 하락 등에 정면돌파 하는 모습보다는 알아서 돌아서는 모습으로 정치권에서 잊혔다”고 회고했다.
2017년 장미대선을 앞두고 새로운 대권주자가 급부상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었다. 반 전 총장은 유엔에서 임기를 마친 뒤 2016년 1월 12일 귀국했다. 반 전 총장은 귀국 메시지를 통해 “오로지 국민과 국가를 위해 한몸 불사를 의지가 있느냐, 그런 의지라면 얼마든지 여러분과 함께하겠다”면서 “정권교체가 아닌 정치교체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사실상 대권 도전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됐다.
반 전 총장은 귀국 전인 2016년 11월 3~4주 차 리얼미터 대선 주자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23%대 지지율을 유지하며 문재인 대통령과 오차범위 내 접전을 펼치고 있었다. 반 전 총장이 현실 정치에 뛰어들면 지지율이 더욱 상승할 것이란 장밋빛 전망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은 현실 정치 외풍의 강력함을 몸소 실감해야 했다(자세한 사안은 리얼미터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반 전 총장은 ‘퇴주잔 음복 논란’, ‘국기에 대한 경례 당시 목례 논란’ 등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이를 공격하는 정치권의 공세는 거셌다. 반 전 총장은 귀국 20일 만에 자신의 출사표를 무르는 상황에 다다랐다. 2017년 1월 마지막 주 당시 반 전 총장 지지율은 15.4%까지 하락했다.
2월 1일 반 전 총장은 “내 마음과 몸을 다 바친 3주의 기간이었다”면서 “내 순수한 포부가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와 가짜뉴스로 정치교체 명분이 실종됐다”고 했다. 이어 반 전 총장은 “일부 정치인들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에 실망했다”면서 “이들과 함께 길을 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에 이르렀다”고 했다. 대권 도전 중도 포기였다.
반기문 캠프에 합류했던 한 정치권 인사는 “3지대에서 현실 정치를 시작하려던 반 전 총장의 의지는 현실적인 요소에서부터 무너졌다”고 회고했다. 이 인사는 “반기문 진영이 ‘조직’을 갖추며 태동하기 시작한 지 정확히 3일 만에 문제가 발생했다”면서 “모인 사람들이 밥도 먹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했다. 그는 “반 전 총장과 그 측근 인사들이 정치 조직을 관리하는 아주 기초적인 방법조차 알지 못했다”면서 “정치 경험이 없는 3지대 정치인의 한계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던 사례였다”고 덧붙였다.
#단일화로 흡수된 참신함…정몽준과 안철수
3지대에서 대권을 노렸으나 기존 정치 구도에 흡수된 인물도 있다. 정몽준 전 의원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다. FIFA(국제축구연맹) 부회장으로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숨은 공로자 역할을 했던 정몽준 전 의원은 ‘국민통합21’을 창당하며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 월드컵 훈풍을 등에 업고 대권에 도전한 셈이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정 전 의원은 당시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여론조사 방식을 통한 단일화에 합의했다. 정 전 의원은 근소한 차이로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패해 대권 도전 꿈을 접어야 했다. 단일화 이후 과정도 순탄치 못했다. 정 전 의원은 대선 전날 밤 ‘단일후보 노무현’ 지지 철회를 전격 발표했다. 결론적으로 정 전 의원은 단일화를 통해 아무 실익을 얻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새정치 열풍’을 일으켰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역시 비슷한 케이스다. 안 대표는 2012년 9월 19일 정치 입문을 선언했다. 동시에 대권 출마까지 선언했다. 충격적인 등장이었다. 정치 입문 선언 1년 전인 2011년 9월 여론조사에서 안 대표는 40%대 지지율을 기록하며 오차범위 내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앞서는 등 정치권 태풍의 핵을 꼽혔다.
그러나 당시 정치에 막 입문했던 안 대표는 ‘경험 부족’의 약점을 극복하지 못했다.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단일화 방식에 합의를 하지 못하던 가운데, 2012년 11월 23일 안 대표는 돌연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안 대표는 스스로 후보직을 사퇴하며 문 후보 지지를 호소했다. ‘안철수 신드롬’은 일단락됐다.
#"윤석열, 과거 3지대 후보들보다 맷집 셀 것"
정가에선 윤 전 총장이 정치 입문 및 대권 도전을 공식 선언한 뒤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검증 외풍’이 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전 총장 장모를 둘러싼 사문서 위조 논란이라든지 부인을 둘러싼 세금 관련 논란이 검증의 핵심 사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윤 전 총장 역시 현실 정치의 강력하고 치밀한 검증 과정을 통해 대망론을 구체화해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다”면서 “그러나 윤 전 총장은 과거 ‘3지대 주자’라고 불렸던 정치 경험 없는 유력 인사들과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른 야권 관계자는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하게 될 경우, 그간 3지대 주자들이 정면으로 마주했던 검증의 칼날을 비교적 부드럽게 피해갈 가능성이 생긴다”면서 “1야당이란 거대 조직이 윤석열 방패막이가 돼 완충 작용을 할 수 있는 까닭”이라고 했다. 그는 “그간 3지대 주자들은 검증 과정에서 조직이 와해되며 대권 도전 동력을 상실했었다”면서 “윤 전 총장이 과거 사례를 반면교사 삼는다면 ‘경험 부족’이란 약점을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을 거라 본다”고 주장했다.
과거 대선후보 캠프 활동 경력이 있는 한 인사는 “윤석열 전 총장은 과거 신드롬을 일으켰던 후보들과는 차원이 다른 맷집을 보유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문재인 정부에서 정권 핵심들과 전면전을 펼쳤고, 그 과정에서 집권 여당의 강력한 정치공세를 모두 견뎌냈다”고 했다. 그는 “정권 심장부에서 외풍을 견뎌낸 만큼, 향후 치밀한 정치 공세가 이어지더라도 뚝심 있게 버티는 힘을 보여줄 가능성이 적지 않아 보인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간 대중으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주자들은 ‘순간의 인기’에 매료돼 기존 정당에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은 모래밭에 건물을 짓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험난한 길이다. 현실 정치에 대한 깊숙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에 3지대를 선택했고, 이런 것이 잠시나마 참신함으로 비춰졌던 것이다. 그런데 윤 전 총장의 경우는 참신함 대신 안정감을 선택하는 방향으로 키를 돌리는 양상이다. 흥미롭게 지켜볼 만한 대목이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