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 가로채기 등 대리점 소장 갑질 논란 잇따라…소장들 의혹 부인 속 본사 “사인 간 계약관계”
지난 1월 21일 정부와 국회, 택배사업자, 택배노조 등이 참여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사회적합의기구)’에서 1차 사회적합의를 체결했다. 가장 큰 변화는 기본 작업범위를 택배의 집화와 배송으로 규정하고 소위 ‘까대기’라고 불리는 분류 작업은 하지 않기로 한 점이다. 까대기 업무가 택배기사 업무 시간을 크게 늘려 과로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6월 9일 택배노조 측에서는 ‘여전히 까대기 업무가 계속되고 있다’면서 ‘사회적합의’ 이행을 요구하며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최근 택배기사의 계속되는 과로사와 택배노조 파업으로 택배기사 처우에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그런데 택배기사들에게는 세상에 알려진 까대기, 과로, 대단지 아파트 갑질 외에도 정말 힘든 존재가 있었다. 그게 바로 대리점 소장들이다.
각 택배사는 대부분 본사와 지사가 있고 이 지사들이 대리점을 관리하며 운영 중이다. 대리점은 각 택배기사와 계약한다. 대리점 소장은 택배기사가 배달할 때마다 수수료 일부를 받는다. 일요신문이 만난 택배기사들은 대리점 소장들의 갑질이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택배기사 고통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전체 택배 시장 점유율은 해마다 조금씩 달라지지만 일반적으로 CJ대한통운이 50% 가까운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그 뒤를 롯데글로벌로지스가 약 13%, 한진택배가 약 12% 점유율로 따르고 있다. 점유율 때문인지 CJ대한통운 대리점 소장 갑질 사례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수도권 CJ대한통운 택배기사 A 씨는 배달할 때마다 받는 급지가 매년 조정되면서 수수료가 지속적으로 낮아져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급지란 각 택배를 배달할 때마다 받는 수수료를 지역마다 나누는 등급이다. 예를 들어 도서산간지역의 경우 1개를 배달하기 위해 몇 km씩 가야 하지만 아파트 단지 경우 한 번 차를 대면 몇 개씩 배달할 수 있다.
CJ대한통운은 12개로 급지를 나눈다. 1급지가 가장 배달 난이도가 낮은 지역이고 12급지가 최고난이도 지역이다. 예를 들어 약 2500원 택배 1개를 배달했을 때 1급지의 경우 840원을 받지만 11급지에서 배달했을 때는 1140원을 받을 수 있다. 하루에도 수백 개씩 배달하는 택배 기사의 경우 급지 하나 차이로 월급이 5% 이상 차이 날 수 있다.
A 씨가 제시한 배달을 하고 돈을 받은 ‘실적명세서’를 보면 2014년, 2015년, 2018년, 2019년에 걸쳐 A 씨의 급지가 점점 쉬운 급지로 1등급씩 조정됐다. 시간이 지나며 물가는 오르는데 급지가 조정되면서 받는 수수료가 더 낮아졌다. 당시 A 씨 담당 소장은 ‘택배기사 구역 내의 아파트가 늘어나서 본사에서 급지를 조정했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계속 내려가는 수수료에 분노한 택배기사들이 해명을 요구하자 소장은 본사발 급지 조정에 대해 제대로 된 인증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택배기사들은 이렇게 택배기사 수수료를 낮추고, 낮춘 수수료를 소장이 편취해 간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택배기사 B 씨는 “내가 속한 대리점은 약 18명의 택배기사가 있다. 소속 기사들이 알아본 바에 따르면 이 소장은 월 5000만 원에서 6000만 원을 번다. 애초부터 소장들이 떼어가는 수수료가 많은데 여기서 더 챙기기 위해 본사에서 급지 조정을 했다는 변명으로 돈을 더 가져간 것이다”라고 호소했다.
논란이 된 해당 소장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본사 측 급지 조정이 있어 조정된 게 맞다”면서 “과거 급지 조정은 오래돼 현재 확인해주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급지 조정이 몇 차례 있긴 했지만 어떻게 반영하는지는 전적으로 소장과 택배기사의 몫이다. 소장과 택배기사도 사인 간의 거래라 본사 측에서 간섭하거나 확인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택배기사들은 “CJ대한통운 측에서 명확하게 기사들에게 확인을 안 해주니 소장이 급지 조정이 됐다고 수수료를 내리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최소한 투명하게 공개해줬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대리점 C 택배기사는 “소장의 역할은 대리점과 배송 계약을 맺은 규모가 큰 업체들을 관리하는 일이다. 그런데 대부분 택배회사를 보고 계약하지 택배 대리점 소장 보고 계약하는 사람은 없다. 하는 일도 별로 없다. 그에 비해서 너무 많은 돈을 받아 간다”면서 “약 40명이 근무하는 대리점 소장이 슈퍼카 및 외제차를 몇 대씩 소유하고 있다. 한 달에 1억 원을 번다는 얘기가 있다. 배달은 하지 않으면서 택배기사의 박봉만 쥐어짜는 마름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소장은 대리점을 운영하면서 기초적인 사무 업무와 택배기사를 관리하는 역할을 하는 경리 1명 정도를 더 고용한다. 보통 이 역할을 소장의 부인들이 하는데 이 부인들이 경리이면서 제2의 소장 역할을 하며 갑질까지 일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D 택배기사는 “대리점에서 소속 택배기사를 상대로 회식비 명목으로 일부를 떼고 돈을 주는 일이 계속됐다. 지난해부터는 코로나19 사태로 회식을 아예 하지 못하는데 매달 3만 원가량을 회식비로 월급에서 계속 떼어갔다. 이런 식으로 말도 안되는 일들이 많아 항의하자 소장 부인이 오히려 ‘팀워크를 해치는 사람은 나가라. 잡지 않겠다’면서 화를 내서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소장이 되면 워낙 큰돈을 벌 수 있다 보니 소장을 시켜주겠다면서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택배기사 B 씨는 “최근 대리점에서 소장이 한 택배기사에게 소장을 시켜준다는 명목으로 수억 원을 빌린 후 갚지 않고 있다. 일반 택배기사의 10배 이상 되는 큰돈을 버는데 왜 못 갚는지 미스터리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앞서의 소장은 “지적하는 것과 달리 걷은 회식비보다 쓴 회식비가 많다”면서 “개인끼리 돈을 빌리고 갚는 게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택배기사들은 비정상적으로 많은 돈을 챙겨가는 소장제를 폐지하고 택배사에서 운영하는 택배기사 중 돌아가면서 소장 역할을 맡는 방법을 제안하기도 한다. 택배업 초기 운 좋게 소장이 된 사람만 천국이 된 현재 제도를 바꿔서 소장 역할을 택배기사들이 돌아가면서 맡고 소장 몫의 수수료를 택배기사가 나눠 가지는 방식이다.
소장 문제는 CJ대한통운에만 있는 건 아니다. 최근 MBC 보도에 따르면 한진택배에도 대리점 소장의 갑질 사건이 있었다. 한 택배기사가 컨베이어벨트 앞에 서서 택배상자를 분류하던 중 손가락이 절단돼 접합 수술을 했지만 신경은 살아나지 않았다. 해당 택배기사는 산재를 신정했지만 처리기간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결국 진행 상황을 묻는 택배기사에게 소장은 ‘그냥 참고 일하라. 더 심한 사람도 봤다’고 폭언을 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택배기사와 소장 간의 관계는 명확하게 본사에서 가이드하기 어렵다. 서로 독립적인 계약 관계이기 때문에 서로 간의 역할이 관례 등으로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현재 파업 등으로 택배기사와 대리점 소장 간의 갈등이 커지면서 과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던 것까지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택배기사들은 “지시, 명령, 하달을 하는 관계가 어떻게 각자 사업자가 있는 독립적인 계약 관계로 볼 수 있나. 일방적 갑질에도 견딜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본사 측에서 헤아려 줬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