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평씨의 부동산 등을 둘러싸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혹 들이 노 대통령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노 대통령이 지난 1월 당선자 신분으로 건평씨를 찾았다. | ||
지난해 12월 대선 과정에서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이 “노무현 후보와 형인 노건평씨를 둘러싼 부동산 투기 의혹이 있다”고 주장한 것에 이어 최근 다시 한나라당이 공격의 불씨를 지핀 탓이다.
이 문제는 최근 몇몇 언론을 통해 ‘국립공원 내에 노건평씨가 호화별장을 지었다’는 보도가 나가면서 일파만파로 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노건평씨의 반박이 다시금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의 ‘재공격’을 받으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 한나라당이 “사실상 노무현 대통령의 재산”이라는 주장을 펴며 특검제까지 요구하고 있어 파문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도대체 왜 노건평씨와 그를 둘러싼 재산 형성과정이 정치권의 유례 없는 공방으로까지 가열된 것일까. 자신이 평범한 농부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노건평씨가 이 같은 정치권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문제의 발단이 된 토지가 있는 경남 거제시 일대와 노건평씨가 살고 있는 김해시 진영읍 현지 취재 등을 통해 이번 파문의 전 과정을 심층 해부해봤다.
노건평씨 관련 의혹이 불거지게 된 불씨는 바로 거제시 구조라리 한려해상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1천8백여 평의 땅에 대한 논란이다. 노씨는 이 땅을 지난 81년 1월과 83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매입했다. 그리고 98년 3월 주택 두 채를 짓기 위해 국립공원관리공단으로부터 건물 신축 허가를 받게 된다. 이후 노씨 부인 민아무개씨도 98년 5월 노씨가 소유하고 있던 구조라리 땅 인근의 토지를 매입해 2층짜리 커피숍 건물을 지었다.
한나라당은 이와 관련해 “국립공원 내에는 현지 주거용 목적이 아니면 건물 신축 허가를 받기 어렵지만 건평씨는 김해시 진영읍에 거주하면서 구조라리 내 신축허가를 쉽게 받아냈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공단측의 특혜가 있었다는 것.
공단측은 ‘특혜설’을 부인했다. 노씨가 허가를 받을 당시 아무런 문제점이 없었다는 설명이다. 노건평씨도 “관련 공무원들을 만나 커피 한잔 마셔본 일이 없다”며 ‘특혜설’을 부인한 바 있다.
양측의 주장이 크게 엇갈리고 있어 당시 노씨가 실제로 해당 토지에 거주했는가가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른 상태. 이에 대해 일부 언론은 현지 주민들의 말을 빌어 ‘노건평씨가 실제로 해당토지에 살지도 않았다’ ‘건물 신축 당시 노건평씨 실제 거주지는 김해시 진영읍이었다’라는 기사를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기자가 취재과정서 만난 현지 주민들의 이야기는 사뭇 달랐다. 그들 중 노건평씨가 해당 토지에 거주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언론과 한나라당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는 주민들이 적지 않았다.
“그 사람(노건평씨) 그 땅 산 이후에 유자농사 지으려고 컨테이너 하나 갖다 놓고 생활하며 열심히 살았다” “당시 노건평씨는 거의 매일같이 (해당토지에) 머물렀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농부도 보기 힘들 정도였다” 등의 말들이 쏟아져 나온 것.
구조라리 토지 내에 있는 노건평씨 부인 민씨의 커피숍을 지난 2월에 사들였다는 최아무개씨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노건평씨가) 20여년 전에 땅 사서 컨테이너 지어놓고 거의 살다시피 하며 유자 농사를 지었습니더. 98년도에 건물을 지을 때는 노건평씨가 직접 포크레인 등을 사용해 축대를 올리는 것도 보았십니더. 자기 손으로 건물을 직접 올린 가난한 촌부에게 ‘투기’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한심스럽습니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노씨 부인 민씨도 “당시에 남편은 매일같이 구조라리 땅에 가 있었고 내가 현지에 1주일에 3~4일 정도 머물렀다. 애들이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마냥 집을 비울 수가 없었다”고 밝혔다.
해당 토지에 지어진 두 채의 집에 대해 노건평씨는 “유자농사도 망하고 해당 토지를 매각하려는데 누가 건물을 지으면 팔릴 것이라고 알려줘 집을 짓게 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집들은 몇몇 언론 보도를 통해 ‘호화별장’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실제로 이 집들은 해금강 절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일 정도로 풍광이 빼어난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호화주택’이라는 언론의 수식어에 현지 주민들은 고개를 내저었다.
▲ 건평씨가 소유했던 구조라리 710번지 건물. 현장서 본 건 물의 모습은 예상밖에 초라했다. 아래쪽은 738번지 건물 서 내려다본 해금강 정경으로 이 건물 역시 ‘호화별장’과는 거리가 있었다. | ||
문제가 된 집 두 채 중 하나는 아래ㆍ위층 모두 방 두 개씩을 지닌 2층짜리 건물이고 다른 하나는 방 두 개짜리 단층 건물이었다. 두 집 모두 실 사용면적은 약 30평 정도. 취재진이 방문했을 당시 두 집은 문이 열린 채 모두 비어 있었다. 얼마 전까지 사람이 생활한 듯했지만 주거 목적으로 사용된 듯한 자취는 없었다.
주민들이 ‘호화별장’이란 말에 고개를 가로젓는 이유는 바로 이 집들의 초라한 구조 탓이다. 두 집 모두 아직 건물 외벽 공사가 끝나지 않아 벌거숭이 같은 느낌을 준다.
집 내부로 들어가는 계단조차 만들어져 있지 않아 아슬아슬한 임시 나무 계단을 밟고 현관으로 올라가야 할 정도였다. 창틀도 단열이나 방음이 제대로 되지 않을 정도로 허술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여름이라면 모를까 한겨울에는 찬바람을 막아낼까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이 집들이 들어선 구조라리 토지의 명의 이전 과정은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을 전망이다. 해당 토지와 집들의 소유주 명의는 지난 2000년 5월 노씨 처남인 민아무개씨에게 이전됐다가 2년 후인 2002년 4월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으로 바뀌게 된다. 단 커피숍 건물만큼은 현재 커피숍을 운영중인 최씨가 지난 2월 인수했다.
노건평씨는 이 과정을 설명하며 “부채가 많아져 평소 알고 지내던 박 회장에게 부탁해 팔게 됐다”고 밝혔다. 그런데 박 회장측은 “노무현 대통령 일가가 관련된 토지였다면 사들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사뭇 다른 얘기를 꺼냈다. 박 회장측은 “별장이 마음에 들어 부동산 중개업자를 통해 사들인 것이고 노건평씨와는 알긴 하지만 노건평씨가 거래 과정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부분에서 두 가지 논란거리가 파생된다. 우선 노건평씨와 박연차 회장의 관계에 대한 의문이다. 한나라당은 당시 박 회장이 사실상 노 대통령을 ‘지원’하느라 문제의 부동산을 매입한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박 회장이 해당 토지와 집들을 사들인 시점이 노무현 대통령이 여당의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시점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박 회장측은 이에 대해 “박 회장은 한나라당 상임위원이다. 노무현 후보를 지원한 일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 이후 박 회장의 셋째 딸이 청와대 국정상황실에 발령을 받아 근무중인 사실이 알려져 좀처럼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또 하나의 의문점은 바로 ‘압류 회피 의혹’이다. 지난 2000년 8월5일 한국리스여신(주)는 생수회사 ‘장수천’(노무현 대통령의 전 사업체)이 빚을 갚지 못했다는 이유로 연대보증인인 노건평씨와 노무현 대통령 후원회장 이기명씨의 재산을 가압류하게 된다. 그런데 노건평씨는 가압류 3개월 전인 2000년 5월 해당 토지를 처남인 민아무개씨에게 넘겼다.
당시 노건평씨 재산에 대한 가압류는 지난 2월5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을 얼마 안 남긴 상태서 해지됐다. 한국리스여신측은 “대출금액 26억원과 그동안 쌓인 이자 4억여원을 합해 30억여원 등을 회수해 압류를 풀었다”고 밝혔다. 대출금 상환은 노건평씨와 이기명씨가 함께 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나라당은 이와 관련해 “노건평씨가 구조라리 일대 토지를 급하게 처남에게 넘긴 것은 가압류를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또한 한나라당은 “노건평씨 말에 따르면 자신이 잘 알고 지내던 태광실업 박 회장에게 구조라리 땅을 팔았다는데 이것은 명의는 처남에게 줬지만 실질적 주인은 노건평씨였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라며 강제집행면탈죄 여부에 대한 수사를 검찰측에 요구하고 있다.
또 하나 문제가 된 건평씨 소유 부동산은 한국리스여신이 ‘장수천’ 보증 문제로 노건평씨 재산을 압류할 때 포함됐던 거제시 성포리 일대 7백여평의 땅.
한나라당은 “가조도와 거제도를 잇는 새 다리 공사 계획이 지난 99년 5월에 확정됐는데 노건평씨가 이 일대 토지를 사들인 시점은 1년 8개월 전인 97년 9월”이라며 개발계획 정보를 미리 알게 된 노씨가 투기 목적으로 이 땅을 사들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건평씨는 이에 대해 <오마이뉴스> 인터뷰를 통해 “90년대부터 알게 된 전직 공무원 황아무개씨가 대출을 받는데 보증을 서줬다. 그런데 황씨가 그 돈을 갚지 못해 그 빚을 내가 떠안게 됐다. 황씨가 나중에 변제 대용으로 그 땅을 넘겨주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노씨가 지목한 황씨는 그 직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런 땅은 알지도 못한다’는 식의 발언을 해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러나 황씨는 곧 입장을 바꾸었다. “97년께 사업자금이 필요해 노건평씨 소유의 땅을 담보로 2억원을 대출받았고 이후 사업이 어려워지자 나와 동업을 하던 김아무개씨가 다른 사람 명의로 돼있던 성포리 땅을 노씨에게 넘겨준 것”이라 밝힌 것.
황씨가 언급한 김씨는 “동업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면서도 “사업차 노건평씨 부동산을 담보로 2억을 대출받았지만 이후 돈을 갚기 어려워지자 성포리 땅을 지난 97년 노씨에게 넘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 노건평씨 부인이 운영하다 지난 2월 매각한 구조라리 땅 내 커피숍. | ||
하지만 노건평씨 주변 사람들은 보증을 서줬다가 피해를 봤고 그 때문에 땅을 대신 받은 것뿐인데 언론이 말꼬리만 잡고 있다는 반응이다.
이들은 “시골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땅의 위치는 잘 알아도 정확한 번지수에는 둔감한 것이 사실” “친한 사람끼리 명의 좀 빌려주고 하는 것은 허다한 일” “기자들이 와서 물고늘어지는데 순박한 시골사람들이 당황해서 인터뷰할 때마다 말이 조금씩 달라질 수도 있는 법” 등의 말들을 쏟아냈다.
앞서 밝힌 대로 노건평씨의 성포리 땅은 한국리스여신이 지난 2000년 8월 가압류를 했다가 올해 2월 압류가 풀렸다. 대출상환금과 이자를 모두 갚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이 과정에 또 다른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노건평씨가 한국리스여신측에 낸 대출상환금 30억원을 어떻게 마련했느냐’라는 의문이다.
물론 장수천 대출건의 연대보증인은 노씨 이외에도 여러 명이 있어 애초 몇 사람이 분담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실제로 청와대는 이에 대해 “노건평씨가 김해시 진영읍 여래리 일대 땅을 매각해 돈을 마련했고 나머지는 연대보증인이기도 한 이기명씨가 마련했다”고 밝혔다.
노건평씨는 이와 관련해 “한국리스여신측이 진영읍 땅을 경매에 부쳐 12억1백만원을 받아갔고 나머지 금액은 어떻게 갚아졌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노씨의 해명 속에 등장하는 ‘진영읍 여래리 땅’이 또 다른 의혹을 불렀다. 이 땅이 노씨 이외에 다른 두 사람이 함께 공동명의로 소유하고 있던 땅이라는 것이 한나라당의 주장이다. 즉 이 땅을 경매에 부쳐 12억1백만원에 팔렸다 해도 전액을 노건평씨가 사용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란 시각이다.
여기에 최근 이 땅과 관련된 또 한 가지의 의혹이 불거졌다. 지난 2001년 4월 경매를 통해 여래리 땅의 새 주인이 된 사람이 바로 노건평씨 처남 민아무개씨로 밝혀진 것.
한나라당은 “민씨의 매입자금 12억원은 부산은행에서 8억원, 노 대통령의 친구이자 운전기사였던 선봉술씨의 부인 박희자씨로부터 6억원을 빌린 대금 중 일부였다”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민씨는 진영읍 땅 매입 이후 1년 뒤 은행 대출금 및 신용카드 대금연체로 신용불량자로 기록됐다. 그럼에도 대출금 월 이자 7백여만원을 매달 연체 없이 납부했다”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즉 민씨가 그런 땅을 살 능력이 있냐는 지적과 함께 정상적 경제력도 없는 민씨가 대출 이자금을 꼬박꼬박 납부한 배경도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한편 민씨가 돈을 빌린 것으로 알려진 박희자씨는 노무현 대통령의 전 운전기사 선봉술씨의 부인이다. 한나라당은 박씨가 과연 민씨에게 6억원을 빌려줄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갖고 있다.
한나라당은 “민씨에게 6억원을 빌려주기 5개월 전 박씨는 2001년 3월 자신이 살던 실평수 25평의 아파트를 담보로 은행으로부터 2천만원 대출을 받은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즉 박씨가 6억원이라는 거액을 민씨에게 빌려주기 어려운 형편이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신용이 좋지 않은 민씨에게 부산은행에서 거액을 대출해 준 점이나 박씨가 6억원을 빌려준 상황에 대한 의구심을 근거로 “결국 민씨나 박씨는 모두 대리인이며 몸통은 따로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이번 논란으로 불거진 재산들의 실 소유주는 노무현 대통령이 아니냐는 게 한나라당의 주장이다. 대선 과정에서 “은닉 재산이 전혀 없다”라고 밝힌 노 대통령의 도덕성에 의문부호를 찍은 것.
한편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청와대는 “한나라당이 노건평씨 문제를 가지고 정치 공방의 무기로 삼고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응을 하면 할수록 야당측이 문제를 부풀리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대응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도 청와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실제로 노건평씨의 땅과 장수천 보증에 얽힌 의혹은 당사자들의 해명이 또 다른 의혹의 불씨가 되는 기현상을 빚어내고 있다. 과연 야당이 사실에 너무 진한 덧칠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야당의 주장대로 아직 ‘진실’은 감춰져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