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내대표·당대표 선거 거치며 유승민계 분열…윤석열 입당하면 말 갈아탈 계파 의원들 대기중?
차기 야권 대선주자 중 하나인 유승민 전 의원을 따르는 계파는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태동했다. 당시 ‘진박’이라 불리는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주류에 반발한 쇄신파는 유 전 의원을 중심으로 뭉쳤다. 유승민계의 시작이다. 유승민계는 탄핵정국 이후 바른정당으로 분화해 신당의 최대주주로 부상했다. 시간이 흐르며 바른정당은 바른미래당, 새로운보수당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그때마다 유 전 의원을 필두로 한 ‘유승민계’가 전면에 배치됐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새로운보수당은 자유한국당과 통합해 미래통합당을 만들었다. 총선에서 유승민계는 약진했다. 이에 따라 향후 대선정국에 유 전 의원이 다크호스로 떠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1년 만에 상황이 바뀌었다. 대선을 1년도 남기지 않은 시점 순항하던 유승민계 내부에 균열의 틈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이준석 대표 취임이 유승민계에 호재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바른정당과 새로운보수당을 거치며 정치활동을 했던 한 인사는 “이준석 대표는 현재 유승민계라고 볼 수 없는 정치인”이라면서 “유승민 전 의원도 이번 당대표 선거에서 이 대표에 대한 지원 사격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유 전 의원은 오히려 김웅 의원을 밀었다”면서 “이준석 대표에겐 출마 권유를 한 차례도 하지 않았던 반면 김 의원에겐 삼고초려를 통해 당대표 출마를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주장했다.
새로운보수당 출신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이준석 대표의 당권도전은 유승민계와 무관하다”고 잘라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역별 당협위원회에서 당대표 후보자들을 불러서 당원 간담회를 했다”면서 “유승민계로 꼽히는 당협위원장들이 당원 간담회에 누구를 불렀는지를 보면 유 전 의원 마음이 어느 쪽으로 기울었었는지를 유추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유승민계 당협위원장들은 이준석 대표가 아닌 김웅 의원을 당원 간담회에 불렀다”고 덧붙였다.
김웅 의원이 컷오프에서 탈락하자 유 전 의원이 타격을 받을 것이란 반응이 나왔던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바른정당에서 당직을 지냈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전당대회 이전부터 유승민계에 내부적인 균열이 생겼다”면서 “4월 국민의힘 원내대표 선거에서 그런 기류가 확연해졌다”고 귀띔했다.
4월 30일 펼쳐진 국민의힘 원내대표 선거엔 유승민 전 의원 복심이라 불리는 유의동 의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유 의원은 1차 투표에서 17표를 얻어 전체 후보 4명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유승민계 지지세를 결집시키며 선전할 것이라던 관측과 상반되는 결과였다. 유 의원이 원내대표 선거에서 고전한 이유 중 하나로 유 전 의원의 지원사격이 없었던 게 꼽힌다.
한 야권 관계자는 “유승민 전 의원이 원내대표 선거전에서 유의동 의원이 아닌 다른 후보를 지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유승민계 표심이 갈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원내대표 결선투표 결과를 보면 컷오프에서 탈락한 후보들 표 대부분이 김기현 의원 쪽으로 쏠렸다”면서 “유승민계의 표심이 반으로 갈렸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그는 “유승민 전 의원이 교통정리에 서투른 모습을 보이며 계파 분열 불씨에 불이 지펴졌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원내대표 결선투표에서 김기현 의원은 66표, 김태흠 의원은 34표를 얻었다. 1차투표에서 김기현 의원은 34표, 김태흠 의원은 30표를 얻고 결선에 올랐다. 컷오프에서 탈락한 권성동 의원과 유의동 의원이 얻었던 표 대부분이 김기현 의원 쪽으로 쏠린 셈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유승민계 의원들의 분열하면서 원내대표 선거 판도 자체가 뒤바뀐 양상을 보였다”고 했다.
유승민계로 꼽혔던 정치권의 한 인사는 “유승민 의원에게 그간 얼마나 힘을 실었든 결정적인 상황에서 챙겨주는 것이 없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유승민계가 분열하고 있다”면서 “유승민계 핵심부터 등을 돌리는 상황이 되니 유 전 의원 영향력이나 지지기반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원내대표 선거를 기점으로 일부 인사들이 유 전 의원으로부터 멀어졌다는 얘기였다.
여기다 과거 유승민계로 꼽혔던 이준석 당대표와 하태경 의원 등의 ‘정치적 체급’이 상향 조정된 것도 변수다. 이 대표는 이미 당권을 손에 쥐었고, 하 의원은 대선 출마 의사를 내비치면서 유승민 전 의원과 같은 무대에서 경쟁을 하게 됐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면서, 유승민계가 자연스런 세포분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새로운보수당 당직자를 지냈던 인사는 “유승민계로 꼽혔던 전·현직 의원들이 이번에 이준석 대표에 힘을 실었다”면서 “유승민 전 의원이 김웅 의원을 미는 상황에 동조하지 않은 셈”이라고 했다. 그는 “유승민계 소속 정치인 중 몇몇 인사들의 체급이 상향 조정되고, 유 전 의원이 자신의 측근들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 이에 유승민계 정치인들도 유 전 의원을 따라가지 않으면서 계파 자체가 와해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현 시점, 유승민계는 힘이 많이 빠졌다. 다 망가진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이번 전당대회 과정서 ‘이준석이 유승민계’라는 프레임이 씌워졌다. 유승민계 내부 사정을 아는 입장에선 헛웃음이 나오는 이야기였다. 과거에 유승민계라고 불렸던 사람들도 지금은 체급이 불어나 유 전 의원보다 영향력이 커진 사례가 있는데, 이준석 대표가 딱 그 사례에 부합한다. 이 대표는 더 이상 유승민계로 묶일 체급이 아니다. 유 전 의원이 대권 행보를 이어감에 있어서 ‘유승민계’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입장이 된 셈이다. 유 전 의원이 마주한 딜레마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위원은 “계파는 유력한 대선후보 내지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재편된다”면서 “‘윤석열 변수’가 떠오르면서 유승민계로 꼽히던 정치인들이 향후 말을 바꿔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전망했다.
채 연구위원은 “이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국민의힘에 합류하게 되는 상황에 대해 파트너십을 형성할 기반을 마련한 젊은 정치인들도 눈에 띄는 상황”이라면서 “윤 전 총장 향후 행보에 따라 유승민계 또한 남을 사람 남고 갈 사람 가는 세포분열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채 연구위원은 “자기 계파가 있다가 점수를 못 내면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이 대권 주자의 운명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