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마인’에선 레즈비언 역할 호평…해외팬들도 “한국의 케이트 블란쳇” 서형앓이 중
“죽지 않는 역할로 돌아온 게 아무래도(웃음). 농담이고요, 사실 ‘여고괴담’이란 시리즈에 다시 동참하게 돼서 기분이 더 묘한 건 있었어요. 누구는 ‘부담감이 있지 않았냐’ 하시지만 오히려 그게 더 원동력이 됐던 것 같아요. 꼭 두 번 출연해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건 아니었는데, 고 이춘연 대표님께서 먼저 제의를 주셨어요. 그런 뒤에 시나리오를 읽으니까 ‘꼭 내가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제목 그대로 ‘모교’로의 귀환이었다. 2005년 ‘여고괴담4-목소리’에 이어 16년 만에 다시 ‘여고괴담 여섯 번째 이야기: 모교’로 돌아온 김서형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자신을 둘러싼 진실을 찾아 헤매는 교감 ‘은희’ 역을 맡았다. 김서형이 이제까지 맡아온 ‘센 캐릭터’의 연장선 가운데 하나라고 단순하게 표현한다면 캐릭터에게 실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우 복잡하고 여러 가지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인물이다. 김서형은 시나리오를 받는 순간 “나는 은희의 서사를 한 번에, 제대로 연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의문점 하나도 없이 저 스스로에게 이상하게도 믿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SKY캐슬’ 끝나고 바로 몇 달 뒤에 이 작품을 선택했었는데, 제게 있어서 ‘SKY캐슬’ 속 역할이 트라우마였나봐요. 김주영 선생님에게 응축돼 있는 태도, 연기 패턴 이런 게 저를 많이 억누르고 있었거든요. 뭔가 폭발적으로, 감정으로 확 밀고 가는 게 제겐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작품이 끝나고 바로 뭔가를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이게 제일 먼저 제 손에 들어온 거죠. 바로 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가 가진 서늘한 인상과 단호한 눈빛이 센 캐릭터를 불러 오는 것인지, 아니면 센 캐릭터를 주로 맡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인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였다. 분명하게 답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촬영장 밖의 김서형은 센 캐릭터가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어린 후배들과 긴밀하게 호흡을 맞춰야 했던 ‘모교’ 촬영 현장에서는 혹시나 후배들이 어려워 할까봐 자신이 먼저 과감하게 다가갔다고 했다.
“제가 맡은 역할이 센 거지 사람이 센 건 아니거든요(웃음). 사실 저한테 그런 이미지가 있고 후배들에겐 연차도 많이 차이가 나니까 그런 선입견 같은 게 있지 않을까 했어요. 혹시라도 그럴까봐 저는 동료로서 후배들을 대하려 했던 것 같아요.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다 같이 먹고 이야기도 많이 걸려고 하고…. 제가 후배들한테 엄마뻘이잖아요(웃음). 또 아이들이 다 각자의 몫을 현장에서 너무나 잘 버텨줘서 기특하더라고요. 김형서 씨(재연 역) 촬영할 때는 정말 더운 여름이었는데 분장을 지우지도 못하고 밥을 먹고 그랬어요. 그런 걸 보면 어떻게 잘해주지 않을 수가 있어요.”
촬영 현장이 무섭지 않았다는 어린 배우들과 달리 김서형만이 유독 무서워하는 공간이 있었다는 것도 새로운 발견이었다. 극 중 가장 미스터리한 공간인 화장실에서의 촬영이 그렇게 무서웠다고. “어릴 때 들은 괴담 때문”이라는 김서형의 변명(?)은 그의 이미지가 주는 거리감을 상당히 좁혀주고 있었다.
“저도 어릴 때 '푸세식' 화장실을 써봤던 터라 화장실에 대한 괴담을 무지무지 많이 알거든요. 그래서 학교 다닐 땐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집이 가까우니까 집에 갔다 오고 그랬어요(웃음). 촬영 전엔 화장실을 보면서 ‘별 거 아니네’ 했는데 현장에선 (화장실 귀신의) 너무 리얼한 얼굴과 그 피가 실제처럼 느껴졌거든요. 시각도 무서웠지만 그냥 느낌만으로도 발을 들이기 싫은 공간이었어요. 그날 시사회에서 그 장면 나올 때마다 제일 크게 소리 지른 게 저예요(웃음).”
그런 김서형은 최근 tvN 토일드라마 ‘마인’으로 레즈비언이라는 파격적인 캐릭터를 소화하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고정관념대로의 캐릭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특유의 연기력으로 섬세하고 세련되면서도 유려하게 표현해 냈다는 극찬이 이어졌다. '동성애자'라는 용어 그 자체에만 매몰되거나 고착된 연기가 아닌, 그저 사람을 사랑하고 있을 뿐인 사람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였다.
특히 넷플릭스로 동시 공개되면서 해외 팬들 역시 케이트 블란쳇에 그를 견주며 ‘서형 앓이’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이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타고 알려져 국내 대중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간 여성의 동성애는 국내 방송에선 터부시되거나 다뤄지더라도 클리셰적인 활용에만 그쳐 왔었다. 그것이 김서형을 통해서, 그의 연기로 실체화돼 수면 위로 올라온 것엔 그가 오래전부터 가졌던 열정이 디딤돌 역할을 했다고.
“이제까지 작품에서 남성의 동성애는 다룬 적이 있지만 직접적으로 여성의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죠. 개인적으로 저도 케이트 블란쳇의 팬이에요. 그가 출연한 ‘캐롤’ 같은 너무 좋은 영화를 접하면서 저런 캐릭터의 매력을 안다면 누구나 연기해보고 싶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점을 저는 ‘마인’으로 해소할 수 있었던 거죠. 저는 사실 ‘마인’을 ‘로맨스’라는 점에서 선택했던 것이거든요. 다른 나름의 서사도 있었지만 제겐 이 서사가 제일 중요했어요. 해외 분들도 ‘마인’을 직접 찾아보시고, 저를 보고 케이트 블란쳇과 연결해 주신다니 더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한국의 케이트 블란쳇이 되도록(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