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 때부터 성폭행, 4번 출산, 동성애·성매매 강요까지…14세 딸까지 넘보려 한 ‘악마’ 뒷덜미에 “탕!”
24년 동안 계부(의붓아버지)이자 남편이었던 남성으로부터 성폭행 및 학대를 당했던 프랑스 여성이 자신의 비극에 마침표를 찍으면서 한 말이다. 이 여성의 이름은 발레리 바코(40). 수십 년간 자신을 학대한 남편을 총으로 쏴 살해한 혐의로 법정에 선 바코는 “나와 내 아이들을 위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며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지난 21일(현지 시간)부터 일주일간 열렸던 이번 공판에 프랑스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됐던 이유는 그동안 프랑스 내 만연해 있던 가정폭력 때문이기도 했다. 해마다 가정폭력으로 목숨을 잃는 여성이 끊이지 않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선 시민단체는 “더 이상 이 문제를 방관해선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의 샬롱쉬르사온에서 열린 재판에서 살인 혐의로 기소된 바코는 만일 유죄가 선고될 경우 종신형에 처해질 전망이다. 쟁점은 그가 저지른 살인이 계획범죄인지, 아니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행한 정당방위였는지에 있다.
검찰 측은 바코가 철저히 계획 하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는가 하면, 변호인 측은 자기 방어를 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주장하면서 팽팽히 맞서고 있다. 바코의 변호인 가운데 한 명인 재닌 보낙기운타는 ‘가디언’ 인터뷰에서 “이 여성은 평생 동안 폭력을 당해온 여성이었다”면서 “그 남자는 바코의 모든 것을 통제했고, 그를 죽이는 것이 바코가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주장했다.
바코의 충격적인 사연이 알려지자 현재 프랑스에서는 가정폭력을 둘러싼 논쟁에 불이 붙은 상태다. 프랑스 전역에서 바코의 무죄를 주장하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미 6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바코를 석방하라는 온라인 탄원서에 서명했다.
바코의 이야기가 널리 알려진 이유는 지난 5월 출간된 회고록 때문이기도 했다.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가 된 ‘모두 알고 있었다’라는 회고록에서 바코는 지난 24년간 처음에는 계부였다가 훗날 남편이 된 다니엘 폴레트(61)에게 어떻게 유린당했는지를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
바코의 악몽이 시작된 것은 어머니가 당시 사귀고 있던 트럭 운전사인 폴레트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오면서였다. 처음에는 딸을 아끼는 계부 시늉을 했던 폴레트는 얼마 안 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처음 성폭행을 당했을 때 바코의 나이는 12세에 불과했다. 욕실에서 머리를 감고 있다가 갑자기 변을 당했던 바코의 비극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날부터 폴레트는 바코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거의 매일 성폭행을 저질렀다. 재단사였던 어머니는 일을 하러 나갔기 때문에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바코는 책에서 “그가 나에게 ‘위층에 가 있어’라고 말하면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또한 “한번은 거실 카펫 위에서 성폭행을 당하면서 몸부림을 쳤기 때문에 살갗에 화상을 입기도 했다”고 말하면서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며 비참함을 토로했다.
폴레트의 이런 학대는 바코가 경찰에 신고하기 전까지 2년간 지속됐다. 마침내 폴레트가 미성년 성폭행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수감되자 바코의 악몽은 끝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2년 6개월 만에 가석방으로 풀려난 폴레트는 어머니의 허락 하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불행히도 어머니는 늘 바코의 편이 아니었다. 바코의 비극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어머니는 폴레트가 수감된 후에도 그와 연락을 끊지 않았으며, 심지어 바코를 데리고 면회를 가기도 했었다. 바코는 이에 대해 책에서 “폴레트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우리와 함께 살기 위해 돌아온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심지어 어머니가 폴레트에게 “나는 그 아이가 임신하지 않는 한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을 우연히 듣기도 했다.
폴레트의 만행은 곧 다시 시작됐다. 바코는 “그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어머니에게 약속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고 말했다. 종종 도망칠 생각을 했지만 갈 곳이 없었다. 조부모는 그럴 때마다 바코를 집으로 돌려보냈고, 친아버지는 딸을 멀리하려고만 했다.
그리고 17세 때 결국 바코는 폴레트의 아이를 임신하고 말았다. 이에 알코올중독자였던 어머니는 분개해서 바코와 폴레트를 모두 집에서 내쫓아 버렸다. 그렇게 바코의 불행은 또 다시 시작됐다. 하는 수 없이 폴레트와 함께 살기 시작했던 바코는 법정에서 도망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나는 뱃속의 아이를 지키고 싶었다. 나에게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어디로 갈 수 있었겠는가”라고 항변했다.
강제로 결혼까지 하게 됐던 바코는 아들을 낳았고, 8년 동안 함께 살면서 세 명의 아이를 더 출산했다. 임신을 하지 않기 위해 피임약을 먹거나 낙태를 시도했지만 병원에 가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손쓸 도리가 없었다.
더 심각했던 문제는 폴레트의 육체적, 정신적 학대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는 데 있었다. 처음에는 장난감을 제대로 치우지 않았다며 휘두르기 시작한 폭력은 빠르게 일상화되어 갔다. 커피를 늦게 가져와서, 혹은 커피가 너무 뜨거워서, 아니면 너무 차가워서 화를 낸 폴레트는 모든 구실을 갖다 붙여가면서 폭행을 일삼았다.
찰싹 때리던 폭력은 곧 주먹질이 됐고, 발로 차거나 목을 조르기도 했다. 심하게 맞아 코가 부러진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점차 둔기까지 사용하면서 폭력을 휘두른 폴레트는 심지어 망치로 머리를 가격하기도 했으며, 틈날 때마다 권총으로 죽여버리겠다며 협박하기도 했다. 바코는 책에서 자신의 이런 삶에 대해서 “끔찍한 지옥과도 같았다”라고 묘사했다.
바코가 다른 여성과 성관계를 맺는 모습을 지켜보길 좋아했던 폴레트는 레즈비언과 연락을 하도록 강요했으며, 만약 이를 거부하면 머리에 권총을 겨누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엔 운이 좋은 줄 알아. 탄창이 비어 있으니까. 하지만 다음번엔 진짜가 될 거야.”
폴레트는 바코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도 했다. 시장을 보거나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는 것 외에는 외출을 금지했으며, 외출 후 집에 오면 거짓말을 하지 않은지 확인하기 위해 영수증을 검사하곤 했다. 본인이 감시할 수 없을 때는 친구를 데려와 대신 감시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대해 바코는 “나는 집에서 마치 죄수처럼 살았다. 누구와도 말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계속된 폭력으로 공포에 떨고 있었다”고 말했다.
트럭 운전사였던 폴레트가 일을 그만두자 바코에게는 또 다른 악몽이 찾아왔다. 생활비를 벌어 오라면서 바코에게 성매매를 강요한 폴레트는 자신의 밴 뒷좌석을 업소로 꾸며 성매매를 시키는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 앞유리에는 판지 스크린을 붙여 놓고, 뒷좌석에는 매트리스를 설치해 놓았다. 또한 성행위를 감시하기 위해 구멍을 뚫어 놓아 몰래 훔쳐보는 짓까지 저질렀으며, 이어폰을 통해 일일이 행동을 지시하기도 했다.
매춘 상대는 트럭 운전사들이었다. 오가는 트럭 운전사들에게 ‘아델린’이라는 이름의 매춘녀가 있다고 홍보한 폴레트는 이들을 상대로 20~50유로(약 2만 7000~6만 7000원)를 받았다. 어떤 날 밤에는 무려 열다섯 명의 남성이 줄을 지어 기다리기도 했다.
다만 폴레트는 손님들에게 바코가 자신의 소유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바코의 음부 근처에 자신의 이니셜을 문신으로 새겨 놓았다. 바코는 이에 대해 회고록에서 “그는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고, 내가 그의 소유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다”고 적었다.
바코가 어쩔 수 없이 그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었다. 폴레트는 바코가 명령을 거부할 때마다 “네가 나를 떠나면 너는 물론이고 애들도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아이들이 바코를 대신해서 두 번 경찰에 신고했지만, 그때마다 경찰은 어머니가 경찰서에 직접 와야 한다고 말하면서 돌려보냈다.
바코가 극단적인 결심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딸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막내딸인 칼린이 14세가 되자 점점 음흉한 모습을 드러내는 폴레트가 영 불안했던 것이다. 폴레트는 칼린에게 성적인 발언을 하거나, 침대에 같이 누워 몸을 쓰다듬기도 했으며, 팬티를 입고 있는지 묻기도 했다. 어떤 날은 칼린이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빤히 지켜보기도 했다.
이를 알게 된 바코는 초조해졌다. 회고록에서 바코는 폴레트가 딸을 성폭행할까봐 두려웠다고 말하면서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적었다. 딸이 자신과 같은 운명을 겪지 않기를 원했던 바코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2016년 3월, 남편이 데려온 한 포악한 남성과 강제로 성관계를 맺은 후 인내심에 한계가 도달했던 바코는 커피에 수면제를 타서 폴레트에게 마시게 한 후 차 안에서 권총을 이용해 폴레트의 목 뒤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시신은 두 아들과 딸의 남자친구의 도움을 받아 인근 숲에 매장했다.
하지만 1년 후 딸의 남자친구가 모든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바코는 체포됐고, 바코를 도왔던 아이들은 6개월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프랑스 법무장관 에릭 뒤퐁 모레티에 따르면, 올해에만 이미 프랑스에서는 43명의 여성이 연인이나 남편의 손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는 90명이 같은 이유로 사망했으며, 2019년에는 무려 146명이 가정폭력으로 희생당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