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도쿄도·조직위 책임 떠넘기고 일부 후원사 ‘대회 연기’ 슬쩍 제안…빠져나갈 구멍 만들기?
최근 영국 매체 ‘파이낸셜타임스’는 인터넷 기사를 통해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을 후원하는 일부 기업들이 대회를 9~10월로 연기하는 방안을 물밑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가을로 가면 백신 접종 효과도 나오고, 일본 국민들의 반대 여론도 누그러지지 않겠냐”며 “두 달가량의 연기를 제안했다”는 설명이다.
한 후원 기업 간부는 “주최자가 이미 결정을 해놓은 상황이어서 이 제안이 일정 변경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자세를 낮췄다. 이와 관련, 대회 조직위는 “도쿄올림픽 연기 계획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애당초 재연기가 어렵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다.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을 후원하는 일본 스폰서 기업은 도요타자동차, 파나소닉, 브리지스톤 등 월드와이드 올림픽 파트너 3곳을 포함해 총 71개 기업이다. 과연, 후원사들은 진짜로 ‘올림픽 개최가 2~3개월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을까. 이에 대해 일본 매체 ‘일간겐다이’는 “진심으로 제안한 것이 아니라, 도망갈 구석을 마련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 대회 관계자는 “이대로 올림픽 개최를 강행해 결과적으로 감염 확산을 초래하는 등 큰 실패로 끝날 경우 자칫 후원 기업에까지 비판이 미칠 수 있다”고 전했다. 가령 ‘저 기업이 올림픽 강행에 힘을 실어줬다’고 공격받을 우려가 있으며, 주주로부터의 압력도 거세질 것이다.
이 관계자는 “늦기 전에 ‘연기’를 제안해두면, 나중에 ‘우리는 제대로 주최 측에 요구했다’고 당당해질 수 있다”면서 “요컨대 ‘알리바이’ 만들기와 비슷하다”고 덧붙였다. 무리인 줄 알고는 있지만, 지금 제안을 해두지 않으면 자칫 훗날에 ‘욕받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본 매체 ‘주간포스트’가 71개 올림픽 후원사들을 대상으로 “올림픽이 올 7~8월 예정대로 개최하는 것에 찬성하는지”를 묻는 설문조사를 했다. 결과에 따르면, 찬성 입장을 명확히 밝힌 기업은 ANA홀딩스(항공사), 동일본여객철도, 도쿄메트로 등 6곳에 불과했다. 전체의 8.5%에 그친 수치다. 나머지 기업들은 “코멘트하지 않겠다” “모르겠다”는 식으로 직답을 회피하거나 무응답으로 대응했다.
주간포스트는 “일본 국민 대다수가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 올림픽을 여는 것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고, 의료계를 중심으로 올림픽 취소 목소리가 커지는 등 올림픽 개최를 둘러싼 부정적인 분위기가 강해진 현실이 반영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후원 기업들은 마이너스 이미지가 생길 것을 우려해, 드러내놓고 올림픽 개최를 옹호하지도 못하고 있다”고 매체는 덧붙였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가장 낮은 등급인 스폰서 기업도 15억 엔(약 150억 원) 이상을 후원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거액의 돈을 쏟아 부으며 올림픽 특수를 노렸건만, 광고 효과는커녕 기업 이미지 실추를 걱정해야 할 지경에 몰린 셈이다.
최근 행태를 보면, 스폰서뿐 아니라 대회 조직위도 거의 ‘책임 포기’ 상태에 가깝다. 6월 4일 기자회견에서 하시모토 세이코 조직위 회장은 올림픽 개최 시비를 둘러싸고 “IOC나 정부, 도쿄도가 어렵다고 판단을 내리면 그것은 그것으로 응해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언급, 묘한 뉘앙스를 풍겼다. 아울러 그는 “조직위는 대회 개최를 위해 위탁을 받은 단체”라면서 ‘단지 프로모터(기획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 일간겐다이는 “확실히 조직위에 결정권이 없다고는 해도, 거명한 3곳에 책임을 떠넘기려는 궁리”라며 일침을 가했다. “전날 하시모토 회장이 영국 BBC 측에 ‘도쿄올림픽은 100% 개최’라고 장담한 터라 더욱 무책임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는 지적이다.
도쿄올림픽에 관한 저서를 출간한 논픽션 작가 혼마 류는 이렇게 말한다. “대회가 코앞인데 어떤 식으로 개최할지 결정도 안 됐으니, 스폰서와 조직위가 책임을 회피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본래라면 개최도시의 수장인 고이케 유리코 도지사나 개최국의 수장인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코로나 대책 결과 안전·안심을 보장한다’ ‘그러니 책임을 지고 개최하겠다’ 등의 발언을 해야 할 시기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입을 다물고 있어 불안감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IOC 현역위원 중 최고참인 딕 파운드 위원은 일본 ‘주간문춘’ 인터뷰에서 “만일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중지를 요청한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에 불과하다”며 “대회는 열린다”고 강조했다. 한 술 더 떠서 존 코츠 IOC 부위원장은 “일본이 긴급사태 중이라도 올림픽은 예정대로 열릴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IOC가 코로나 대유행 속에서도 올림픽 개최를 고집하는 것은 중계권료 계약 등 막대한 이득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만일 올림픽이 취소될 경우 IOC가 중계권료를 물어줘야 하며, 일본 정부 역시 올림픽 취소를 먼저 제안할 경우 IOC로부터 거액의 소송을 당할 우려가 있다. 이런 상황을 빗대어 일간겐다이는 “돈 문제를 둘러싸고 IOC와 일본 정부, 도쿄도가 폭탄 돌리기를 하는 형국”이라고 빗대었다. 그러면서 매체는 “스가 총리는 ‘결정권이 IOC에 있다’고 말할 뿐이다. 과연 일본이 ‘주권국가’라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황당한 것은 올림픽을 강행하려는 기관만 있고, 안전을 책임지는 곳은 없다는 점이다. 일례로 “IOC 최고운영책임자(COO)인 라나 하다드는 ‘도쿄올림픽 기간 중 선수가 코로나19에 걸릴 경우 선수 본인 책임’이라는 동의서에 서명을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아사히신문은 “주최 측은 면책되며 선수만의 책임이라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해외 언론들도 도쿄올림픽 강행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프랑스의 유력 일간 르몽드는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의 대제전이 될 것’이라고 혹평을 내놨다. 남독일신문 또한 “비정상적인 대회가 될 것”이라면서 “코로나 가속기로서의 스포츠축제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통렬히 비판했다.
조지워싱턴대학 의학대학원 조너선 라이너 교수는 CNN 방송에서 솔직한 소견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일본은 백신접종을 완료한 사람이 고작 3.6%에 불과하다. 스포츠 행사를 위해 그 많은 인력과 자원을 소비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자금과 물리적 자원을 더 많은 국민이 백신을 맞는 데 쓰는 것이 좋지 않을까.”
자국에서조차 ‘진흙배’ 취급을 받고 있는 도쿄올림픽. 중단 없이 예정대로 개최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