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솔루션 질산 사업 진출시 알짜 휴켐스 타격 예상…연이은 휴켐스 매각설에 태광실업 “사실무근”
휴켐스를 둘러싼 논란은 고 박연차 회장의 부재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박연차 회장은 2019년 위독해지기 직전까지도 회사 주요 현안을 직접 결정하는 등 지배력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연차 회장이 2020년 1월 갑작스럽게 타계하면서 현안은 모두 아들 박주환 회장에게 넘어갔다. 박주환 회장에겐 회사 본업을 지키는 것은 물론 신규 먹거리 창출, 상속세 자금 마련까지 다양한 숙제가 남았다.
#16만 톤 사주던 한화솔루션, 홀로서기 선언
나이키 협력업체이자 신발 제조업체인 태광실업은 매출이 2조 원 이상이고, 영업이익은 1000억 원이 넘는다. 매출 대부분이 나이키에서 발생하며 나이키 전체 물량의 12%를 책임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중견기업으로 분류되지만 남베트남에선 7만 명을 고용하고 있어 삼성, LG 등 대기업 못지않은 인지도를 자랑한다. 다만 신발 제조 기업이다 보니 성장성에는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2020년 영업이익은 코로나19 영향으로 2019년(2115억 원)의 절반에 불과한 1177억 원에 그쳤다. 올해 1분기 영업이익도 코로나 영향이 있었던 지난해 1분기 대비해 6% 감소한 429억 원에 그쳤다.
반면 정밀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휴켐스는 고공행진 중이다. 국내 질산 시장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질산은 폭발, 독성 위험 때문에 신규 진출이 쉽지 않고 수입도 어렵다. 대부분 대기업이 질산 시장에 직접 진출하지 않고, 휴켐스로부터 물량을 공급받았던 이유다. 질산은 디스플레이와 반도체의 세정제로 쓰인다. 휴켐스는 또 질산을 원료로 우레탄(인조가죽, 보냉재)의 핵심 원료 DNT(Di-Nitro Toluene)와 MNB(Mono-Nitro Benzene)를 만들고 있다.
휴켐스는 국내 대표적인 탄소배출권 확보 기업이기도 하다. 휴켐스는 단일기업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인 연간 160만 톤(t)의 탄소배출권을 보유하고 있다. 질산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이고자 비교적 이른 시점인 2000년대 중반부터 저감 시설을 구축한 결과다.
휴켐스의 2020년 매출은 5000억 원대지만 2023년에 7000억 원대로 올라설 것으로 예상되고, 영업이익은 올해 1000억 원을 회복한 후 고속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현재 탄소배출권으로 인한 이익 비중은 약 40%지만 유럽연합(EU)이 탄소국경조정세 법안을 제출할 계획이기 때문에 배출권 가격이 다시 한 번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휴켐스의 전망이 좋다는 방증은 지분 구조에서도 드러난다. 박연차 회장은 2016년만 해도 휴켐스 지분 10% 이상을 따로 보유하고 있었다. 다만 지분은 조금씩 줄어 2019년에는 5.79%로 감소했고, 박연차 회장 사망 후 유족은 이 지분을 최대주주 태광실업에 매각하고 현금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분 매각 대금은 상속세 납부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
탄탄대로를 걸을 것만 같았던 휴켐스가 암초를 만난 것은 지난 3월이다. 휴켐스로부터 DNT를 매입하던 한화솔루션이 독자 노선을 걷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말 한화솔루션은 1600억 원을 들여 DNT 18만t, 질산 40만t을 내재화할 것이라고 공시했다.
한화는 휴켐스 인수 혹은 조인트벤처(JV) 설립 등을 고민하다가 아예 직접 뛰어드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업계 전문가들은 휴켐스가 비협조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휴켐스는 약 21만t의 DNT를 생산하는데, 한화솔루션이 16만t을 사들이는 것으로 안다”면서 “대형 거래처가 직접 시장에 뛰어들도록 했다는 것은 휴켐스 경영진이 심각한 오판을 내렸다고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안나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주요 고객사의 내재화 이슈라 휴켐스는 본업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다”면서 “최악의 시나리오로 휴켐스가 다른 고객처를 구하지 못하면 2024년부터 DNT는 유휴 공장이 될 것이고 이로 인해 고정비 200억 원 정도가 실적에 반영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화솔루션은 휴켐스와 2032년까지 DNT를 공급받기로 계약했다. 만약 2024년부터 관계를 끊는다면 100억 원 정도의 위약금을 지불해야 한다. 그럼에도 한화솔루션은 위약금을 내고 거래 관계를 청산할 방침으로 전해진다. 다만 한화솔루션 관계자는 “휴켐스와의 계약 관련해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전했다.
#탄소배출권 노리고 매각설을?
박주환 회장을 더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휴켐스 매각설이다. 회사 측은 계획이 없다고 하지만 박연차 회장 사망 이후 매각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화그룹 등 일부 대기업이 휴켐스 매각 의사를 타진한 적이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러나 (주)한화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휴켐스 인수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최근 다시 매각설이 나오는 것은 탄소배출권 때문이다. 지난 5월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더 올려달라”고 편지를 썼듯 국내 제조 기업들은 지금보다 많은 탄소배출권이 필요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 다수의 기업이 휴켐스를 잠재적으로 인수 후보군에 올려놓는 이유다.
재계 한 관계자는 “휴켐스가 매력적인 매물이고, 오너가 젊으니 이곳저곳에서 찔러대기 식으로 인수설을 흘리고 있다”면서 “IB업계도 혹시나 대형 딜을 따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소문을 키우는 것 같은데 태광실업은 휴켐스를 매각할 의사가 전혀 없다면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소문을 진압해야 한다. 매각설에 휘말리면 임직원들이 뒤숭숭해서 조직 분위기가 흐트러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주환 회장 입장에서는 알짜 회사인 휴켐스를 팔 계획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상속세 때문에 팔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매각보다는 태광실업 지분 일부 매각 가능성이 더 크다. 박 회장은 부친 지분을 상속받으면서 49.53%의 태광실업 지분을 보유하게 됐다. 이 중 10~20%는 팔아도 지배력은 유지할 수 있을 전망이다. 문제는 태광실업이 비상장회사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박연차 회장 생전엔 기업공개(IPO)가 추진됐었는데 사망으로 유야무야됐다. 태광실업 상장 작업이 재개될지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 휴켐스 관계자는 “한화와의 계약은 2032년까지이고, 계약 변경과 관련한 공식적인 통보는 없었다”며 “현재로서는 계약이 이행되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공식적으로 통보가 발생하면 방안에 대해 검토할 것”이라고 전했다. 휴켐스 매각설과 관련해서는 “사실무근”이라고 선을 그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