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예술가’ 리토 ADHD 탓 힘겨운 직장생활…세밀함 요구하는 작업에서 특유의 집중력 빛 발해
화창한 5월 어느 날. 도쿄역 근처 전시장에는 개점 전부터 많은 관람객이 줄을 서 있었다. 도쿄에서 첫 전시회를 여는 나뭇잎 아티스트, 리토 씨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다. 코로나19 방역 수칙에 따라 관람객들은 번호표를 뽑고, 한 명씩 입장했다. 1번 번호표를 뽑은 여성이 구입한 것은 30개의 작품 중 최고가인 15만 엔(약 150만 원)짜리 작품이었다.
“지금은 나뭇잎 아티스트라 불리지만, 본래 미술이 특기였던 것은 아니다. 여러 길을 모색한 끝에 여기에 도달하게 됐다.” 리토 씨는 “대학을 나와 푸드서비스 관련 회사에서 7년간 근무했다”며 “줄곧 야단만 맞는 직원이었다”고 밝혔다. 본인은 성실하게 일한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런 리토 씨를 답답해 했다는 것.
가령 선배가 “참치를 잘라놓으라”고 해서 열심히 집중하면 “언제까지 자르고 있을 거냐”며 혼이 났다. “적당히 알아서 하라”는 선배의 말을 따르면, 이번에는 “좀 더 제대로 못 하냐”며 불호령이 떨어졌다.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요령이 없는 아이’라는 말을 간혹 들었지만, 학창 시절을 큰 문제 없이 보냈기에 도대체 어디가 잘못됐고, 자신이 왜 겉도는지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그러다 병원에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라는 진단을 받았다. 리토 씨는 “충격보다는 오히려 원인을 알아 안도감을 느꼈다”고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보통 사람들과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이후 사표를 제출했다. 그렇지만 벌써 30대. 새로운 기술을 익히자니 시간이 너무 걸리고, 자금 또한 없다. 고심 끝에 리토 씨는 ‘처음부터 지니고 태어난 것으로 승부를 보자’고 결심한다.
ADHD는 ‘과잉 집중력’과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특징이 있다. 콤플렉스를 강점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 그때 떠오른 분야가 예술 활동이었다. 리토 씨는 어떤 일에 집중하다보면 주변 말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몰입하곤 했다. 협동이 중요한 회사원으로서는 분명 ‘약점’이지만, 혼자 하는 예술이라면 ‘강점’으로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러스트부터 스크래치아트, 점토공예 등 여러 분야에 도전해봤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세밀함이 요구되는 ‘기리에(페이퍼 커팅의 일종)’가 적성과 잘 맞았다. 정교한 작업이 동반되어야 하는데, 몇 시간이고 계속 몰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물도 제법 괜찮았다. 하지만 SNS에 작품 사진을 올리고서야 깨달았다. 기리에는 이미 높은 수준의 아티스트들이 넘쳐났고, 경쟁이 매우 치열한 ‘레드오션’이었다. 열심히 작업해도 SNS에서는 눈 깜짝할 사이에 파묻혀 전혀 주목을 끌지 못했다.
‘통장 잔고는 20만 원뿐. 이쯤해서 포기해야 할까….’ 궁지에 몰린 리토 씨의 눈에 띈 것은 스페인 아티스트의 나뭇잎 아트였다. 종이가 아닌, 나뭇잎 위에 섬세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거다!’ 정신이 번쩍 든 리토 씨는 근처 공원에서 나뭇잎을 주워왔고, 정성껏 칼로 조각해 첫 번째 작품을 SNS에 올렸다.
그로부터 1년 반. 지금까지 리토 씨가 선보인 작품 수는 400개가 넘는다. 올 1월에는 후쿠오카 백화점의 제안으로 첫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물론 처음부터 일이 술술 풀린 것은 아니다. 리토 씨에 의하면 “최초 작품 사진을 올렸을 땐 그다지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세세한 솜씨를 칭찬받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이 착오였다. 또한 “자신이 좋아하는 공룡이나 캐릭터 위주로 작품을 만든 것도 실패의 원인”이라고 그는 분석한다.
한번은 극한의 정교함을 추구해 작품을 선보인 적이 있다. ‘굉장하다는 선플이 달리겠지’ 예상했으나 반응은 미지근했다. 리토 씨는 “단순히 기술을 뽐내려고 할 것이 아니라, 보는 이들이 행복해지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기술이라면 나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들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다른 곳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당시 ‘가능한 매일 한 작품씩 SNS에 올리자’고 다짐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뭇잎부터 찾으러 돌아다녔고, 밑그림을 그리고, 2~4시간에 걸쳐 자르기 작업을 한다. 이 과정을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해왔다. 아울러 제목 붙이기에도 많은 공을 들인다. 가급적 설명조의 제목을 피하고, 보는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든 작품을 SNS에 게시하면, 팬들은 각자 소감이랄지 스토리를 더해 댓글로 올려준다. 리토 씨는 “앞으로도 보는 사람이 완성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전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