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막 군에 입대하는 듯이 짧게 자른 머리가 다소 어색해 보였다. 하지만 표정만큼은 밝았다.
지난 2월21일 삼성화재와 LIG전이 끝난 뒤 만난 박철우(26)는 그동안 마음 고생이 심했다면서 이제야 현대캐피탈의 옷을 제대로 벗고 완전히 ‘삼성맨’으로 거듭난 것 같다고 말한다.
올시즌 FA(자유계약선수) 신분이 돼 현대에서 삼성으로 보금자리를 바꾼 후 힘든 시간들을 보냈던 박철우.
“시즌 초반에는 많이 움츠려 들었던 것 같아요. ‘난 잘 할 수 있다’ ‘난 삼성맨이다’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지만 경기에 나서면 선수들과의 호흡도 잘 맞지 않는 것 같고, 경기하는 내내 불안감이 더 컸었어요. 아마도 아시안게임 이후 체력이 많이 떨어진 부분이 심리적인 데 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봐요. 이젠 세터 유광우랑 호흡도 잘 맞고, 시즌 중인데도 연습량을 늘리면서 체력을 끌어올리려고 노력 많이 했어요. 그게 조금씩 빛을 발하는 것 같네요.”
박철우가 삼성화재로 둥지를 틀면서 사람들의 시선은 그의 여자친구 신혜인의 아버지 신치용 감독한테 관심이 쏠렸다. ‘예비 사위’나 마찬가지인 박철우를 ‘예비 장인’인 신 감독이 어떻게 조련시킬 지 궁금했던 것.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박철우는 신 감독한테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호된 가르침을 받아야만 했다.
“한동안 저한테만 뭐라고 야단치시더라고요. 준비 동작에 문제가 있다, 몸이 축 처져서 연습을 한다, 집중력이 떨어진다 등등 엄청 호통을 치시더라고요. 처음에는 왜 나한테만 뭐라고 하실까 하는 마음에 조금은 섭섭하기도 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감독님의 의중을 읽을 수 있게 됐어요. 오랫동안 몸에 벤 습관들을 과감히 버리라고 주문하셨던 건데 제가 잘 이해를 못했던 거죠.”
박철우의 요즘 하루는 새벽에 눈 뜰 때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 배구로 시작해서 배구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침에 새벽 운동하고 몸무게 잰 뒤 스트레칭을 하고 오전 운동하고 점심 식사 후 오후 운동을 마치면 팀 미팅 시간이 된다. 녹화해 둔 다른 팀 경기를 시청한 뒤 야간 훈련을 받고 마사지까지 마치면 하루의 모든 일과가 마무리된다는 것.
LIG전이 끝난 뒤 삼성화재 입단 후 처음으로 주관방송사에서 주는 ‘수훈선수상을 받았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던 박철우. 이전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을 ‘가벼운 상’임에도 삼성화재 유니폼을 입고 처음 받는 상이라 그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삼성화재가 창단 후 처음으로 꼴찌까지 내려가봤어요. 플레이오프는 고사하고 우승은 언감생심이었죠. 그러나 지금은 선수들 모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해 있어요. 포기하지 않고 달려왔기 때문에 3위에 올라간 거잖아요. 삼성화재가 왜 삼성화재인 지를 코트에서 꼭 보여드릴 겁니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