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자구계획 이행 완료에 빠른 정상화, 매각 철회 가능성도…두산건설 “투자 유치 진행 단계”
앞서 두산그룹은 KDB산업은행과 맺은 3조 원 규모의 자구계획을 이행 완료했다. 두산건설을 매각하지는 않았지만 두산타워와 (주)두산 내 모트롤BG(유압기 사업부), 두산솔루스, 클럽모우CC, 두산인프라코어 등을 매각해 자금난에서 빠져나왔다. 두산그룹이 “두산건설은 팔지 않을 수도 있다”고 강하게 나올 수 있는 배경이다.
일각에서는 두산그룹이 두산건설에 대한 오랜 미련 때문에 재무위기를 겪었고, 부동산 경기가 재차 꺾이면 두산그룹에 미치는 악영향이 커질 수 있는 만큼 지금이 매각 적기라고 분석한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두산건설에 애착을 갖고 있어 두산건설을 팔지 못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두산에 짐 됐던 두산건설…박정원 회장이 대표 지내
두산건설은 대규모 미분양 사태가 벌어진 2010년 이후 여러 차례 매각 후보군에 올랐다. 하지만 마땅한 인수 후보자가 등장하지 않고, 두산의 반응도 뜨뜻미지근해 결국 모회사인 두산중공업이 자금을 지원해주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2010년 이후 두산중공업이 두산건설에 직접 지원해준 자금만 2조 원에 달한다.
두산그룹은 지난해 자구계획 발표 당시 “이번에는 두산건설을 팔겠다”고 밝혔다. 당시 내놓은 대책은 물적분할이다. 두산건설을 굿 컴퍼니와 배드 컴퍼니로 나눈 후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굿 컴퍼니를 팔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등장한 것이 악성 사업장만 품고 있는 자회사 ‘밸류그로스’다. 밸류그로스는 △경기 일산 위브더제니스스퀘어 상가 분양사업 △경기 포천 칸리조트 개발사업 △인천 학익 두산위브 분양사업 △충남 공주 신관동 주상복합 개발사업 등 기존 두산건설의 부실 자산을 가지고 분할됐다.
문제는 분할 후에도 두산건설이 사실상 밸류그로스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두산건설의 밸류그로스 지분율은 69.5%이다. 나머지 30.5%(우선주)는 두산큐벡스(옛 두산건설 레저사업부)가 보유하고 있다. 두산큐벡스는 밸류그로스 지분을 두산건설에 되팔 수 있는 권리인 풋옵션을 보유하고 있다. 두산큐벡스는 두산그룹 차원에서 두산건설을 버리지 않는 이상 마음 놓고 밸류그로스 지분을 보유할 수 있는 상황이다. 밸류그로스의 부실이 더 커진다 해도 그 부담은 오로지 두산건설만 짊어지는 셈이다.
지난해 대우산업개발이 두산건설을 인수하려고 시도했지만 무산된 바 있다. 일각에서는 밸류그로스에 대한 시선 차이로 인해 거래에 실패했다고 분석한다. 당시 두산그룹은 최소 3000억 원은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대우산업개발은 2000억 원 이하의 인수가격을 제시했다.
한 회계 전문가는 “두산건설을 진짜 팔 것이었다면 밸류그로스 지분은 두산중공업이나 다른 회사가 보유하는 것이 맞다”며 “사실상 100% 자회사로 두고 있었던 만큼 시장에서는 ‘두산그룹이 진짜 두산건설을 팔지 모르겠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실제 두산그룹은 두산건설에 대한 미련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건설은 1960년 설립된 동산토건(이후 두산건설로 사명 변경)과 범 현대그룹 계열사였던 고려산업개발이 합병돼 탄생한 회사다. 두산그룹이 2004년 현대그룹 계열사 고려산업개발을 인수해 두산건설과 합병시킨 것.
현재 두산그룹을 이끌고 있는 박정원 회장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두산건설 대표이사 회장으로 근무했다. 당시에도 차기 회장으로 주목받았던 박 회장이 사실상 두산건설에서 경영 능력을 평가받은 셈이다. 그만큼 애착이 강할 수밖에 없다.
두산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박 회장이 두산건설에 애정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박 회장이 수년간 일했던 곳이니만큼 꼭 지켜내야 한다는 기류가 임원진 사이에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두산건설을 10년 넘게 품은 배경엔 이런 복잡한 사정이 있다”고 설명했다.
#두산건설의 부활 가능성 없지 않아
최근 들어 두산건설이 부실을 대폭 털어낸 만큼 빠른 속도로 정상화돼 두산중공업에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란 낙관론이 나오고 있다.
모회사 두산중공업의 도움 덕분이기는 하지만 최근 두산건설의 차입금이 대폭 줄었다. 한때 2조 4000억 원이 넘던 차입금은 2500억 원대로 감소했다. 건축과 토목 사업은 정상 국면이고, 향후 시장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업황이 급격하게 꺾이지 않는 이상 자생이 가능한 상황이다. 특히 FI들로부터 자금을 유치한다면 완전히 깨끗해진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다른 건설사들과 경쟁할 수 있다.
무엇보다 배드컴퍼니인 밸류그로스의 실적이 바닥을 찍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밸류그로스는 이미 대부분 자산에 대해 대손충당을 설정했다. 공사 미수금 1879억 원 중 996억 원, 미수금 677억 원 중 561억 원, 단기대여금 345억 원 중 122억 원, 장기대여금 2826억 원 중 1414억 원을 대손충당 처리했다. 혹시나 미수금 및 대여금 중 일부가 회수된다면 실적에 긍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
두산그룹 내에서는 밸류그로스의 실적 턴어라운드를 기대하면서 “지금 시장에서 거론되는 매각가로 팔기는 너무 아깝지 않으냐”는 반응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두산그룹 채권은행 사이에서는 “오랜 기간 두산건설 때문에 고생하면서 매번 알짜 자산만 팔아놓고 (건설에) 저렇게 목을 매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한편 밸류그로스는 지난 1분기에도 46억 8700만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두산건설의 밸류그로스 최초 취득가는 2660억 8000만 원으로 기재됐지만 1분기 기준 장부가는 1860억 4700만 원이다. 1년도 채 되지 않아 800억 원의 부실이 새로 반영된 셈이다.
이와 관련, 두산건설 관계자는 “투자 유치를 진행하려 투자자들을 모으고 있는 단계”라며 “밸류그로스의 경우 전문성을 확보한 두산큐벡스가 관리하고, 두산건설 입장에서는 투자를 받은 것”이라고 전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