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파생상품…‘돈맛’ 난다고 ‘몰빵’ 안돼요
▲ 사진은 영화 <작전>의 한 장면.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 없음. |
최근 금값이 너무 많이 올라 금 투자 열기가 주춤하다. 그러나 금은 다른 원자재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차이가 있다. 화폐가치를 담보하는 ‘최후의 안전자산’이기 때문이다. 1929년 대공황을 벗어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반면,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회복세를 맞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1971년까지 금 본위제였기 때문에 달러를 마음대로 찍어낼 수 없었지만, 지금은 달러를 마음대로 찍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벤 버냉키 연방준비위원회(FRB) 의장이 ‘헬리콥터 벤’으로 불리는 것도 돈을 헬리콥터에서 뿌린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실제로 2007년까지 미국의 본원통화는 8300억 달러였으나, 2009년 말에는 2조 달러로 늘어났다(현대경제연구원 2010년 10월 보고서). 전 세계 달러보유액을 합한 글로벌 유동성을 보면 2005년 말 5조 2590억 달러에서 2010년 6월 말 10조 4845억 달러로 거의 2배가 늘어났다. 급속한 통화량의 증가를 통해 당장의 급한 불은 껐지만, 그 여파는 지금의 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이상기후까지 겹치면서 식량·광물·에너지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것이다. 통화량으로 보면 금융 위기 이전의 2배까지 가격 상승을 감내해야 할지도 모른다.
부자들이 금을 좋아하는 것은 본능적으로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부의 손실을 막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23일 연평도 포격 사건 직후 실물 금에 대한 수요가 일시적으로 급증한 적이 있다. 전쟁이 벌어지면 군비생산과 전후복구에 엄청난 돈을 찍어내야 하는 것이 그간의 전쟁에서 얻은 교훈이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수레 가득 지폐를 싣고 가게에 들어갔다 나왔더니, 돈은 쏟아 버리고 수레만 가져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923년 한 해 독일의 물가상승률은 1600만%였다. 1990년대 내전 당시 유고슬라비아 정부가 전비 조달을 위해 24시간 돈을 찍어내고 20차례의 화폐개혁을 한 결과 1993년의 물가상승률은 6000조%였다. 정말 지폐를 팽개치고 수레를 훔쳐갈 만하다.
금이 석유·광물과 다른 차이는 적은 무게와 부피로 보관과 이동이 편리하다는 점이다. 신한은행이 판매하는 금괴 1㎏의 가격은 약 6000만 원(부가가치세 포함)이다. 어른 손가락 두 개 정도 크기인 49×110×10㎜(가로×세로×두께) 사이즈가 이 정도 가격이니 세상이 무너져도 호주머니에 금괴 10개만 있으면 어디 가서 굶어 죽지는 않을 것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연평도 사건 이후 실물 금 판매가 크게 증가했고, 연말까지도 이어졌다. 연도별로 봐도 2009년에 비해 2010년 판매가 더 많다”고 전했다. 1㎏ 금괴는 가격이 상당하다 보니 판매가 드물고, 100g짜리(약 600만 원)가 많이 팔리는데, 강남 PB센터에 따르면 100g짜리는 주로 가족의 생일선물로 많이 구매한다고 한다. 부자가 아니라면 통장으로 거래하는 금 적립상품에 0.01g 단위(약 550원)로도 구매가 가능하다. 신한은행·국민은행·기업은행에서 금 관련 상품을 팔고 있다. 또 주식 거래하듯 ETF(상장지수펀드)를 사는 것도 가능한데, ‘KODEX골드선물(H)’ ‘HIT골드’ 두 종목이 있다.
최근 강남 부자들이 관심을 갖는 헤지펀드란 ‘소수의 고액자산가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1000%에 달하는 차입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펀드’로 선물·옵션·공매도 등의 다양한 파생전략을 쓸 수 있다. 1992년 파운드화 하락을 예상하고 무려 100억 달러어치의 파운드화를 공매도해 영국 금융당국을 무릎 꿇린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가 유명하다. 당시 퀀텀펀드가 낸 수익은 10억 달러에 이른다.
그러나 리스크가 워낙 크다 보니 국내에는 아직 법적으로 허용이 되지 않고 있다. 다만 해외의 헤지펀드를 편입한 재간접펀드를 사모펀드로 파는 것은 가능하다. 설 직후인 지난 2월 6일 김석동 금융감독위원장이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을 금융허브로 만들기 위해 IB(투자은행)를 키울 필요가 있다. 헤지펀드 허용도 해야 하지 않나”라고 말한 뒤 헤지펀드 관련 상품 판매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일반적으로 주식 또는 주식형 펀드는 주가가 올라야 수익을 낼 수 있다. 그러나 헤지펀드는 파생상품을 적극 활용하기 때문에 박스권 또는 하락장에서 수익을 추구할 수 있다. 순진한 일반인들이 펀드를 매입해 놓고 주가가 오르기만을 목 빼고 기다리는 사이, 부자들은 돈 벌 구멍을 찾아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다. 헤지펀드는 요즘과 같은 장세에서는 예금금리보다 높으면서 주식보다 안정적인 상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증시의 대세 상승기 때 랩 어카운트를 통해 돈맛을 본 부자들은 올해 장세가 그리 재미없다는 것을 알고 대거 파생상품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헤지펀드형 사모펀드는 거액자산가들 소수에게만 판매되고, 일반인 대상 판매(공모펀드)는 물론 대중매체를 통한 광고·홍보조차 금지돼 있다. ‘부자들만 돈 버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욕을 할 법도 하다. 그렇다면 이런 트렌드를 따라해 볼 방법이 없을까.
일반인들은 파생형 구조화상품인 ELS(주가연계증권)를 고려해볼 만하다. 현대증권에서 지난 2월 10일 판매종료된 ‘ELS KOSPI200 Range Digital 원금보장형’의 경우 6개월 뒤 만기일에 코스피200 지수가 판매 시점 대비 ‘105% 이상’이면 연 6%, ‘95% 이하’면 연 3%, ‘95% 초과~105% 미만’이면 수익률 0%(원금보장)다. 원금보장형이면서 상황에 따라 은행이자보다 높은 수익률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원금보장형이 아닐 경우 원금 100% 손실형도 있으니 초보자는 원금보장형으로 투자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ELS는 대부분의 증권사에서 구매가 가능하다.
주의할 점은 금 투자와 파생형 상품이 좋은 대안이더라도 ‘몰빵’은 금물이라는 것이다. 부자들이 관심을 가진다는 얘기는 전체 자산의 10~20% 정도를 대안상품에 투자한다는 뜻이다. 그들은 절대 모든 자산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다.
우종국 한경비즈니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