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정·재계 관계자들은 MBC가 이날 밤 보도한 뉴스에 시선을 집중했다. 보도내용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중국 베이징 극비 방문’이라는 것이었다.
김 전 회장의 동향에 대한 보도는 사실 새삼스런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각종 언론매체에서는 이런저런 추측에 근거한 보도를 해왔다. 얼마전에는 귀국설이 나왔고, 항간에는 그가 베트남을 자주 왕래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김 전 회장 동향에 대한 이번 보도 역시 대수롭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김 전 회장의 중국 방문 보도에는 유독 눈길이 모아졌다.
특히 이번 보도에 대해 김 전 회장측이 ‘사실이 아니다’며 이례적으로 방문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나서는 등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여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지난달 21일부터 23일까지 사흘간 중국 베이징의 차오양구 캠펜스키호텔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그는 체류기간 동안 조남기 전 중국 인민해방군 장군 등 요인들과 만났다고 MBC는 보도했다.
보도 자체만으로 보면 그의 중국 방문은 사실인 듯했다. 왜냐면 구체적으로 김 전 회장이 체류한 날짜와 투숙했던 호텔 등이 거론됐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적인 부분은 조작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중국 당국이 확인할 경우 진실 여부가 가려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보도가 나간 뒤 김 전 회장측 인사들은 ‘사실이 아니다’며 보도 내용을 강하게 부인하고 나섰다.
김 전 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B씨는 <일요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김 전 회장은 그 기간 동안 중국을 방문하지 않았으며, MBC의 보도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강한 어조로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김 전 회장이 그 기간동안 어디에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이 보도가 나간 뒤 중국 정부는 “김 전 회장이 베이징에 체류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더욱이 호텔측도 고객의 비밀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투숙여부를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 김 전 회장의 가장 최근 사진으로, 지난 2002년 말 동남아 어느 도시의 교외 저택에서 <문화일보> 김용옥 기자와 만났다. | ||
이번 보도에 대한 정·재계의 관심은 김 전 회장의 중국방문 사실보다는 그 배경에 쏠려 있다. 사실상 백수나 다름없는 그의 중국 방문은 의미가 특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왜 갑자기 이 같은 내용이 보도됐느냐는 점이다. 김 전 회장측 인사들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배경과도 연관되는 대목이다.
김 전 회장측은 이번 보도의 배경에 대해 두 가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첫째는 최근 옛 대우그룹 계열사들의 경영이 그룹침몰 5년 후인 지금 호전되면서 김 전 회장의 공과에 대한 재평가론이 일고 있다는 점이며, 둘째는 김 전 회장의 재기설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지난 99년 침몰한 이후 대우그룹 계열사 중 상당수는 시간이 흐르면서 경영상태가 매우 좋아졌다. 대표적으로 경영권이 채권단으로 넘어간 대우인터내셔널, 대우건설, 대우종합기계, 대우해양조선 등 세칭 ‘대우4인방’기업은 초우량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헐값에 회사를 넘겨받은 자산공사나 금융기관들은 이들 회사의 경영호전으로 돈방석에 앉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쯤되니 김 전 회장의 경영능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야 한다는 여론이 일 조짐이 커졌다. 특히 김 전 회장의 미래경영에 대한 재평가작업이 재계 일각에서 일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대우그룹 출신 임직원들이 모여 김 전 회장에 대한 사회적 재평가작업을 추진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이 부분은 자연스럽게 5년 동안 해외를 떠돌고 있는 김 전 회장의 재기설로 번지고 있으며, 실제로 대우그룹의 침몰이 기획된 시나리오에 의한 것이 아니었느냐는 억측까지 새삼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분위기는 대우 침몰 당시 이를 주도했던 세력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상황. 실제 대우 침몰 당시 이를 주도했던 인사들이 현재 주요 경제정책의 핵심 포스트를 장악하고 있다.
따라서 김 전 회장측은 이번에 김 전 회장의 동정이 뉴스로 등장하게 된 이면에는 최근 나돌고 있는 여러 가지 억측과 관련해 ‘김우중 재기바람’을 잠재우기 위한 공세라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