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직보 권한 무용지물, 상부 영향력 여전…“민간법원서 재판 받을 권리 보장해야”
하지만 법조계의 시선은 냉랭하다. 지금까지 군이 보여준 사건 처리 결과와 현재 군의 특임검사 제도 구조상 한계가 명백하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군 검찰 및 법원의 영역 중 일부를 민간에 넘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당에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되는 등, 군 검찰·법원 개혁 가능성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
#군 사상 첫 특임 도입 배경은?
공군 소속 피해자 이 아무개 중사는 3월 2일 선임 부사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이에 곧바로 보고를 했지만, 동료와 선임 등으로부터 회유와 압박 등 2차 피해를 당한 끝에 지난 5월 21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 사건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고 논란은 커졌다. 이 중사를 보호해야 하는 국선 변호사(중위)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았고, 성추행 피해 사건을 수사했던 공군 제20전투비행단 군 검찰의 늦은 대응도 도마 위에 올랐다. 공군 검찰 등을 총괄하는 전익수 공군본부 법무실장도 초동 부실수사의 최종 책임자로 지목됐다. 뒤늦게 서욱 국방부 장관이 나섰지만, 합동수사 38일 만에 내놓은 중간수사결과는 대부분 언론이나 유족 측 주장으로 제기된 성추행과 2차 가해 사건의 실체를 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
결국 국방부는 창군 이래 처음으로 특임검사 제도를 도입했다. 군 검찰 내부 시스템이 상부의 개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독립된 수사를 보장하기 위함이었다. 사상 첫 특임검사로 임명된 고민숙 대령은 국방부검찰단에 소속되어 임무를 수행하지만, 수사 목적상 필요하면 검찰단장을 거치지 않고 국방부 장관에게 직보하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수사를 위한 장치다. 고 대령은 “엄정한 수사로 피해자와 유가족을 위로하고 장병과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특임검사가 입증해야 할 부분은 전익수 공군 법무실장의 직무유기 혐의를 비롯, 아직 해소되지 않은 부실 초동수사와 이에 대한 공군 법무실 등의 책임 소재 규명 등이다.
#냉랭한 법조계 시선 왜?
하지만 군 사법 시스템을 아는 법조인들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민간 영역의 검찰·법원에 비해 군 내 사법 시스템이 ‘상관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점을 지적한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군에서 검사로 복무했던 한 법조인은 “군사법원은 심판관 제도에 따라 비법조인인 군 지휘관이 3명의 재판관 가운데 상석에 앉아 결정을 하기 때문에 법에 대해 가장 무지한 군 지휘관의 목소리가 제일 크게 반영되는 곳”이라며 “애초 군 검사와 판사라고 하더라도 보직을 돌아가면서 맡고, 승진 등 인사도 군 지휘관에 달려 있어 제대로 된 독립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실제 군사재판은 ‘심판관 제도’에 따라 운영되는데, 군 지휘관이 재판관 역할을 담당하는 구조다. 감경의 권한도 있다. 죄를 지은 소속 부대 군인에게 판사처럼 형벌을 결정하는데, 재판관이 된 군 지휘관의 재량으로 군 법원 판결 후 임의 감경도 가능하다.
게다가 군사법원과 검찰부, 또 육군과 공군, 해군 및 국방부의 법무실을 서로 이동해 가면서 역할을 맡는다. 형사 사법체계 시스템의 근간인 수사와 재판의 독립성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이번 특임 도입에도 나오는 이유다.
군 관련 수사 경험이 있는 검사는 “특임을 도입한다고 해도 결국 승진을 위해, 또 군 내에서 남은 보직을 위해 검찰단장에게 보고를 하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고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 많은 목소리들이 들어올 것”이라며 “국방부는 자체적으로 경찰과 검찰 그리고 법원까지 사법 시스템을 갖춘 작은 나라라고 보면 되는데, 검사든 판사든 그 안에서 계속 살아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법조인이라고 하더라도 그 전에 군인일 수밖에 없다. 인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조직이다”고 지적했다.
#“평시 군사법원 폐지 필요”
그러다 보니 법조계에서는 군사법원을 평시에는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법원에서 군 관련 사건을 다뤄본 경험이 많은 한 판사는 “군사기밀 유출이나 항명, 근무지 이탈처럼 군에서만 존재하는 특수한 범죄 혐의는 군 검찰·법원을 존치시켜 처리하더라도, 성추행이나 폭행과 같은 사건은 민간 법원에서 담당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근본적으로는 군인만을 위한 군사법원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실제 통계에 따르면 군사기밀 유출이나 근무지 이탈·항명 같은 군의 특수성과 관련된 범죄, 이른바 순정범죄는 군내 형사 사건의 13%에 불과하고, 나머지 87% 사건은 성폭행과 교통사고·폭행처럼 군사 기밀과는 무관한 일반 범죄다.
앞선 판사는 “실제 군에서 이뤄지는 1·2심 판결문과 관련 자료를 대법원에서 살펴보면, 전문 군인보다는 곧 시민이 될 일반 병사들 사건도 많고, 전역 후 아예 민간인이 된 케이스도 적지 않다”며 “군 관련 특수성이 있는 사건 외에는 ‘일반 시민들의 사건’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 출신인 소병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입법 발의에 나섰다. 평시에 군인들도 민간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고, 보고를 받은 상관이 즉시 신고하도록 하고 신고를 받은 군 수사기관은 지체 없이 수사를 개시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개정안을 발의한 것이다.
소 의원의 군사법원법 개정안에 따르면,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하거나 계엄 시에만 군사법원이 재판권을 갖는 것으로 명시했고, 평시에는 군인들도 민간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했다. 또,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개정안에는 군내 가혹행위나 성범죄 사실에 관하여 보고 받은 상관은 즉시 군 수사기관에 신고하도록 하고, 신고를 받은 군 수사기관은 지체 없이 수사를 개시하도록 했다.
하지만 군 내에는 지휘관 재량을 포기 못하는 군 지휘관들이 상당하다. 외부에서 늘 문제가 제기되더라도 △징병제로 군 성격이 다른 점 △군 지휘관 사기진작 △군사법 관련 특수성 및 기밀 유지 등을 이유로 현재의 군 사법시스템을 고수해왔다. 국방부 근무 경험이 있는 한 전직 장교는 “이번에 특임을 도입하고 ‘창군 이래 처음’이라고 언론에 알린 것도 지금의 사법시스템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