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상품 판매하며 설명 불충분, 미지급분 보험금 지급해야”
2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부장판사 이관용)는 즉시연금 가입자 57명이 삼성생명을 상대로 낸 보험금 지급 공동소송에서 삼성생명이 원고들에게 5억 9800여 만원을 지급하도록 하는 원고 전부 승소 판결했다. 이는 금융소비자연맹 주도로 2018년 10월 가입자들이 소송을 제기한 지 2년 9개월 여 만에 내려진 판결이다.
이날 1심 재판부는 삼성생명이 연금월액 산출 방법에 대한 사항을 가입자들에게 충분히 고지하는 설명·명시 의무를 다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약관법에 의하면 중요한 내용은 사업자로 하여금 고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적립액이 공제되도록 설계됐다는 점은 약관에 명시돼 있지 않으며, 보통사람의 평균적인 이해도를 기준으로 봤을 때도 바로 해석될 수 있는 내용이 전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삼성생명이 이와 같은 설명·명시 의무를 다 하지 않음으로써 가입자들이 보험 가입시 '공시이율보다 낮은 이율로 월 생존연금을 받는다'고 확정적으로 인식하지 못한 채 즉시연금에 가입했던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만기시 환급되는 보험료 상당액을 다 지급 받기 위해 일부 떼어 놓는 적립액이 있다는 것을 명시해야 설명 의무를 다 했다고 볼 수 있다. 약관에 제대로 명시하지 않을 경우 고객에게 가장 유리하게 해석돼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고 덧붙였다.
즉시연금 보험은 가입할 때 한 번에 보험료 전액을 납입한 뒤, 그 다음달부터 보험료 운용 수익 일부를 매달 생활연금으로 주는 상품이다. 가입자들이 지적한 것은 즉시연금 중에서도 일정기간 연금 수령 후 만기에 도달하면 보험료 원금을 환급받는 '상속만기형' 상품이다.
삼성생명이 만기환급금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손보험료에 공시이율을 적용한 금액에서 일부를 공제해 연금을 지급하자 상품 가입자가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했다. 당초 설계서에서 제시된 금액보다 적은 금액을 받게된 가입자는 연금액에서 만기보험금을 마련하기 위한 사업비 등 일정 금액을 제한다는 공제 내용이 약관에 기재되지 않았고, 이와 관련한 보험사의 구체적인 설명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는 2017년 이 민원과 관련해 삼성생명이 연금을 과소 지급했다고 판단했다. 연금액 산정 방법이 약관에 명시돼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며 책임준비금으로 제했던 돈을 계산해 모두 연금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권고였다.
이 조정이 생명보험사 업계 전체로 영향을 끼치면서 유사 상품을 판매한 보험사와 금감원 간 갈등이 불거졌다. 2018년 기준으로 추정된 즉시연금 미지급 규모는 최대 1조원 상당으로 즉시연금 판매 생명보험사 중 삼성생명이 보험금 4300억 원, 가입자 5만 5000명으로 가장 규모가 컸다.
즉시연금 과소지급 연금액에 대한 구제 권고를 수용하지 않은 보험사들은 삼성생명과 마찬가지로 법원의 판단을 받기로 했다. 현재 1심에서 패소한 미래에셋, 동양, 교보, 삼성생명 외에도 한화, AIA, 흥국, DGB, KB, KDB생명의 재판이 진행 중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삼성생명 측은 "판결문을 받아 내용을 면밀히 살펴 본 후 항소 여부 등 공식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