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매가도 상승? 금리가 ‘꾹꾹’
지난 8일 부산지방법원 경매법정. 감정가 1억 4000만 원짜리 부산 사상구 학장동 신구덕우성아파트 76㎡형(전용면적) 입찰에 무려 46명이 몰렸다. 이날 처음 매물로 나온 신건이면서 중대형인 이 아파트는 결국 1억 9219만 9990원에 주인을 찾았다.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은 자그마치 137.3%까지 치솟았다. 이처럼 올 들어 부산지역 부동산 경매 열기가 뜨겁다. 낙찰률(전체 경매건수 대비 낙찰건수)과 낙찰가율이 모두 사상 최고치로 급등했다. 응찰자 수도 폭증세다. 이런 이상 과열 현상은 봄바람을 타고 수도권까지 밀어닥치고 있다.
경매정보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 2월 부산지역 아파트 경매시장 평균 낙찰률은 87%, 낙찰가율은 111.2%를 기록했다. 이는 전국에서 가장 높고 해당 지역 사상 최고 기록이다. 부산에서 진행되는 아파트 경매 10건 중 9건이 낙찰되고 그 대부분이 감정가보다 10% 이상 높은 금액에 주인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다. 낙찰가가 감정가보다 50% 이상 비싼 경우도 나타났다. 지난 2월 부산지방법원 경매2계에서 감정가 1억 1000만 원인 사하구 신평동 한신아파트 85㎡형이 1억 6999만 원(낙찰가율 155%)에 낙찰됐다.
감정가는 경매에 나오기 4~5개월 전에 한국감정원 등 전문 감정기관이 매기는 가격이다. 당시 부동산 시세 등을 다각적으로 고려해 정해지는 것으로 통상 감정가의 80%선에서 낙찰을 받으면 시중의 급매물과 비교해 싸게 샀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감정가보다 50% 이상 비싸게 샀다는 것은 지나치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지지옥션 강은 팀장은 이에 대해 “부산은 매매시장에서도 워낙 매물이 없기 때문에 저가 매수의 수단으로의 경매는 의미가 없다”며 “매매시장에서 시세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경매시장은 흔히 매매시장의 선행지표로 여겨진다. 매매시장이 회복될 것으로 예상될 경우 낙찰가율은 높아지고 응찰자가 몰리며 낙찰도 많이 받는다.
주목할 것은 부산 경매시장의 이 같은 열기가 수도권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수도권에서도 중소형 주택(전용 85㎡ 이하)의 인기는 꾸준했다. 전세난이 심각해 저렴하게 주택을 사려는 사람들이 대거 경매에 몰렸다. 덕분에 소형 주택의 경우 지난 연말부터 감정가보다 비싸게 낙찰받는 고가 낙찰이 많았다.
예컨대 부동산 경기가 크게 위축됐던 지난해 4월에도 경기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 주공아파트 60㎡형은 감정가보다 10% 이상 비싼 1억 3400만 원(낙찰가율 112.4%)에 낙찰됐다. 입주량이 몰려 침체됐던 남양주의 진건읍 사능리 주공아파트 47㎡형도 낙찰가율 107%(낙찰가 1억 6000만 원)를 기록하며 팔렸다.
그러나 중대형(전용 85㎡ 초과)은 달랐다. 지난해 수도권에서 2회 이상 유찰된 물건은 대부분 중대형이었다. 특히 강남구 압구정 현대, 도곡동 타워팰리스, 송파구 신천동 롯데캐슬 등 강남권 주요 랜드마크도 매물로 나와 두 차례 유찰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중대형 아파트의 인기가 살아나고 있고, 9억 원 이상 고가주택까지 낙찰가율과 낙찰률이 상승하고 있다.
지난 3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 경매법정. 감정가 16억 원인 서초구 반포동 경남아파트 155㎡형 입찰에 9명이 몰려 15억 388만 원(낙찰가율 94%)에 낙찰됐다. 전날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진행됐던 용산구 서빙고동 신동아아파트 167㎡형 입찰에도 9명이 응찰해 역시 낙찰가율이 90%(낙찰가 15억 5500만 원)를 넘겼다.
지난 2월 서울·수도권 중대형 아파트의 평균 낙찰률은 44.7%를 기록했다. 지난해와 올해를 통틀어 가장 높은 월별 낙찰률이다. 경매시장에서 낙찰률이 40%를 넘으면 활기를 띠는 것으로 평가한다. 같은 시기 전세난에 인기가 높은 수도권 중소형 주택의 낙찰률도 중대형보다 낮은 44.2% 수준이다. 내집마련정보사 양지영 팀장은 “경매에서 중대형이 인기를 끄는 건 매매시장에서 중대형도 시세를 회복할 것이란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종합부동산세 과세 기준인 9억 원 이상 주택이 인기를 끄는 것은 눈길이 가는 부분. 고가주택은 부동산 시장 침체기엔 인기가 크게 떨어진다. 하지만 최근 자금력을 갖춘 사람들이 하나둘 매매에 나서면서 회복 분위기를 타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일 서울 중앙지방법원 경매법정에 나온 감정가 16억 원짜리 서초구 반포동 경남아파트 155㎡형 입찰이 대표적인 사례다. 9명이 몰려 15억 388만 원에 주인을 찾았다. 낙찰가율은 94% 수준까지 높아졌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 2월 수도권에서 9억 원 이상 아파트는 모두 117건이 경매에 부쳐졌다. 이중 48건이 주인을 찾아 41%의 낙찰률을 기록했다. 고가주택 10건 중 4건 이상이 주인을 찾은 셈이다. 전세난으로 인기가 높은 수도권 3억 원 이하 아파트의 낙찰률이 42.8%인 점을 염두에 두면 경매시장에서 자금력이 있는 수요층만 매입하는 고가주택이 얼마나 많이 팔리고 있는지 따져볼 수 있다.
그렇다고 싸게 팔리는 것도 아니다. 수도권 고가주택 낙찰가율은 지난 1월 81.5%를 기록했다. 지난해 고가주택의 낙찰가율은 보통 70%대 수준에 머물렀다. 수도권 고가주택의 평균 응찰자 수는 지난 2월 5.2명이었다. 수요자들이 꾸준히 몰려 응찰하고 있는 셈이다. 유앤알컨설팅 박상언 사장은 “고가주택 시장은 투자 수요가 많아 일부에서는 향후 시장이 본격적으로 회복되는 전조”라고 해석했다.
경매시장이 과열 조짐을 보이면서 주의할 점이 많다. 자칫 분위기에 휩쓸려 경매에서 일반 매매가보다 비싸게 살 수도 있다. 예컨대 지난 2월 24일 부산지방법원 경매5계에 매물로 나왔던 연제구 연산동 현대아파트 85㎡형은 1억 9311만 9000원(낙찰가율 113.6%)에 낙찰됐다. 그런데 국민은행 아파트 시세 기준으로 이 아파트의 일반 평균가는 1억 6400만 원이며 상위 평균가도 1억 7750만 원에 머문다. 경매시장에서 시세보다 훨씬 비싸게 낙찰 받은 셈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10일 기준금리를 다시 0.25%포인트 인상해 주택 매입에 부담이 커졌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이로써 지난 2008년 12월 이후 기준금리가 다시 3%대에 진입했다. 주택담보대출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어 주택시장 위축 가능성을 주목해야 한다. 과열된 경매시장에서 고가 낙찰을 받을 경우 자칫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법무법인 메리트 박미옥 본부장은 “금리 인상이 계속될 전망이고, 대출규제가 다시 강화될 전망이므로 매매시장이 다시 위축될 수 있다”라면서 “경매시장에서 고가 낙찰을 피하고 실수요 중심으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신한은행 이남수 부동산팀장도 “경매시장의 과열 분위기가 기존 매매시장의 시세를 더 끌어올리는 동력이 될지 아직 전망하기 이르다”라며 “불확실성이 여전한 만큼 분위기에 휩쓸리는 입찰은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일한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기자 jumpcu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