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주요 외신 지적↑…글로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인종차별 국가” 비난 이어져
MBC는 2020 도쿄 올림픽 개막식을 중계하는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선수단 입장 소개문에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사진을 삽입했다.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는 1986년 폭발 사고가 발생한 곳으로 원전 사고 가운데 '사상 최악의 사고' 중 하나로 꼽힌다. 30년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도 비극적인 참사로 기억되는 사건을 그 나라를 소개할 대표적인 이미지로 사용하는 무례를 저지른 셈이다.
이어 아이티를 소개하면서는 '대통령 암살로 정국은 안갯속'이라는 문구와 함께 아이티 내전 사진을 삽입하고, 마셜 제도에 대해서는 '한때 미국의 핵실험장'이라는 문구로 질타를 받았다. 또 엘살바도르는 비트코인 사진을, 이스라엘과 끊임없는 국경분쟁을 이어가고 있는 팔레스타인은 그 분쟁의 상징이나 다름 없는 분리장벽을 대표 사진으로 썼다. 엘살바도르의 경우는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 통화로 인정한 국가이기 때문에 해당 사진을 사용했을 수도 있지만, 문제는 그 정책이 수립되기까지 제대로 된 국민의 동의를 받지 않아 해당 국가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더 높았다는 것. 단순히 소개 용도로만 사용하기엔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일은 이유다.
해외에서도 이 사태를 당일인 7월 23일부터 SNS를 통해 알게 됐다. 실시간으로 방송 화면 캡처 사진이 퍼지면서 SNS는 MBC와 동시에 한국의 인종차별을 성토하는 장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후 러시아, 중국, 미국, 캐나다, 일본, 호주, 말레이시아 등 각국 외신과 로이터, AFP 등 주요 외국 통신사에서도 보도를 이어가면서 상황은 더욱 심각해지는 분위기였다.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방송인 일리야는 특히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진을 넣은 것을 지적하며 "이 자막 만들면서 '오? 괜찮은데?'라고 생각했을 담당자, 대한민국 선수들이 입장했을 때 세월호 사진 넣지, 왜 안 넣었어? 미국은 911 테러 사진도 넣고? 도대체 얼마나 무식하고 무지해야 폭발한 핵 발전소 사진을 넣어?"라며 분노하기도 했다.
미국 최대 커뮤니티인 레딧과 9gag 등 글로벌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관련 글이 게시되면서 MBC의 태도와 함께 한국의 인종차별을 비판하는 토론의 장이 형성됐다. 폴란드인으로 추정되는 한 네티즌이 "MBC가 폴란드를 소개할 땐 뭘 썼어?"라고 묻자 "다행히 아우슈비츠는 안 썼더라"며 비꼬는 댓글이 달리는가 하면 "한국은 아시아 국가 중 가장 인종차별적인 국가" "그러면서 욱일기를 쓴 유명인에게 사과를 요구하나"라며 비판의 수위를 높여갔다.
국내 네티즌들도 이 문제를 가볍게 넘어가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지난 7월 24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MBC 올림픽 개막식 중계에 대한 조사 부탁드립니다'라며 제작진 뿐 아니라 MBC 경영진까지 엄벌에 처해 달라는 청원글이 올라오는가 하면, 방송통신위원회에 민원을 넣는 집단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이에 MBC 측은 지난 7월 24일 "해당 국가 국민과 시청자 여러분께 정중히 사과 드린다"는 보도자료를 내고 "문제의 영상과 자막은 개회식에 국가별로 입장하는 선수단을 짧은 시간에 쉽게 소개하려는 의도로 준비했지만 당사국에 대한 배려와 고민이 크게 부족했고 검수 과정도 부실했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올림픽 중계에서 발생한 이번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영상 자료 선별과 자막 정리 및 검수 과정 전반에 대해 철저히 조사한 뒤 그 결과에 따라 엄정한 후속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MBC의 이번 사태가 첫 실수가 아니라는 것. MBC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아프리카의 국가인 가나를 '예수가 기적을 행한' 이스라엘의 가나로 착각해 설명했을 뿐 아니라, 케이멘 제도 선수단을 설명하는 자막으로는 '역외펀드를 설립하는 조세회피지로 유명'이라는 부적절한 문구를 달았다. 또 차드에 대해서는 '아프리카의 죽은 심장' 등 비하 표현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행정제재가 동반되는 '주의' 처분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13년 만에 더 큰 사고를 친 만큼 MBC 측이 제작진에 대해 어떤 징계 조치를 취할 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