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 이용 게임방 3분당 1만원…법원 “태블릿 PC는 사행성 유기기구 아냐” 잇단 무죄
‘어플방’이란 앱 마켓에서 모바일게임을 태블릿 PC 등의 기기에 설치하고 게임제공업소용 게임물 형태로 운영하는 곳을 말한다. ‘바다이야기’와 같은 일반적인 사행성 게임장에는 특정 게임 프로그램이 입력된 아케이드형 게임기가 설치돼 있는 반면, 어플방은 앱으로 개발된 게임을 태블릿 PC에 다운받아 이를 더 큰 화면이나 게임기계와 연결해 게임을 제공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주로 제공하는 게임은 경마, 릴 회전류, 슬롯머신류 등 사행성모사 게임물이다. 과거 ‘바다이야기’와 같은 형태의 불법 아케이드 게임장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뒤, 게임장 영업이 어려워지자 현행법을 피하기 위해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어플방의 경우 PC방과 마찬가지로 ‘인터넷컴퓨터게임시설제공업’으로 분류돼 ‘게임장업’에 대한 관리 감독을 받지 않는 까닭이다. 이에 게임물관리위원회는 2013년부터 최근까지 경찰과 불법 어플방에 대한 합동 단속을 벌이고 있다.
진짜 문제는 그 이후다. 어플방에 설치된 태블릿 PC가 불법 사행성 게임을 하는데 이용됐다고 해도 정작 재판에서는 사행성 유기기구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까닭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사행성 유기기구’란 기계식 구슬치기 기구와 사행성 전자식 유기기구 등 사행심을 유발할 우려가 있는 기계·기구 등이다.
그러나 일요신문이 2015년부터 지난 7월까지의 어플방 관련 판례를 분석한 결과, 어플방 영업에 이용된 태블릿 PC를 사행성 유기기구로 판단한 사례는 많지 않았다. 2015년 4월 법원은 불법 어플장 업주 A 씨의 사행규제법 위반 행위에 대해서 최종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A 씨는 릴 회전류 및 경마게임 등 등급분류를 받지 않은 게임물을 태블릿 PC에 다운받아 아케이드 게임기 형태의 기기에 연결해 제공했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1심은 A 씨가 청소년이용불가게임물을 제공하면서 사전등급분류를 별도로 받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는 게임산업법 위반으로 인정했으나 사행행위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릴 회전류 및 경마 등의 게임물 자체는 청소년이용불가게임물로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사전 등급분류를 받아야 한다”면서도 게임물 다운로드와 재생에 이용된 태블릿 PC 등은 사행성유기기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기계’, ‘기구’ 등의 사전적 의미에 비추어 볼 때 태블릿 PC에 설치된 게임물과 게임에 이용된 태블릿 PC 모두 사행성 유기기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업체 운영에 쓰인 태블릿 PC 역시 사행성 유기기구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검사 측은 “업체가 다양한 앱 서비스가 아닌 사행행위를 목적으로 태블릿 PC를 설치했으며 해당 태블릿 PC로는 게임만 할 수 있었다는 점, 또 ‘사행기구’의 정의에 비추어 보면 사행성 유기기구에도 컴퓨터 프로그램이 포함된다”고 항소했다.
2심 재판부는 “태블릿 PC는 어느 특정한 게임만을 주된 기능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며 프로그램은 기계나 기구로 보기 어렵다”고 원심을 유지했다. 대법원도 원심의 판단을 받아들여 게임등급미필에 관해서만 유죄, 사행성유기기구에 대해서는 무죄 판단을 내렸다.
이에 대해 업계 전문가와 IT 전문변호사들은 ‘사행심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은 기기의 이용목적과 방법 형태, 이용결과에 따라 금전 또는 환전 가능한 경품을 지급하는지 여부, 그리고 정도와 규모 등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게임물관리위원회 법무담당관 성수민 변호사는 7월 14일 열린 ‘게임 제도 개선 위한 2차 토론회’에서 “대법이 2020년 3월에는 등급분류 받은 내용과 다른 내용의 게임물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일체화된 게임제공업소용 게임물로 바꿔 제공한 것에 대해 사행성 전자식 유기기구로 판단한 바 있다”며 “사행성 유기기구 판단 여부는 기구의 본래적 용법만이 아닌 이용목적, 방법과 형태, 결과에 따른 환전성, 규모, 위법한 영업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어플방에서 제공하는 게임물의 경우 사행성 전자식 유기기구로 판단할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뿐만 아니다. 법원은 PC방으로 영업신고를 하고 어플방을 운영하는 등 게임산업진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또 다른 업주 B 씨에 대해서도 7월 21일 최종 무죄를 선고했다. B 씨는 무료 모바일 게임물로 등급분류를 받은 게임을 태블릿 PC에 설치한 후 대형 모니터, 지폐투입기, I/O보드 등을 연결하여 아케이드 게임기 형태로 만들어 게임을 제공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기 이용료는 3분당 1만 원(1시간 20만 원)이었다.
그러나 1·2심 재판부는 태블릿 PC를 이용해 게임이 제공된 것에 대해 “모바일 기기를 둘러싸고 있는 외관이 아케이드 형태로 구성되어 있기는 하나 기기의 외관을 변형한 것만으로 아케이드형 게임이라고 볼 수는 없고 해당 게임장은 ‘게임제공업’이 아닌 ‘인터넷컴퓨터게임시설공업’이므로 PC방에서 PC 사용료를 징수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역시 원심을 받아들였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게임과 관련한 법원 판례 중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것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사행성 모사 게임의 형태와 제공 방법이 나날이 다양해지고 있는 데 반해 이를 단죄해야 할 법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디지털 법률 전문 변호사는 “국내에 어플방이 들어오기 시작한 시점이 ‘바다이야기’ 사태 이후 관련법과 규제가 강화된 2013~2014년”이라며 “PC방이나 멀티방으로 신고를 하고 게임장을 운영하면 불법 행위가 있어도 단속대상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합법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영업 과정에서 환전과 경품지급 등 사행적 이용행위를 하는 곳도 적지 않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행성게임이나 아케이드게임 제공 방법이 날로 다양해지기 때문에 법을 우회하여 운영되는 영업장에 대해서는 엄격한 사후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