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희 삼성 회장 | ||
요즘 재계의 최대 핫 이슈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을 맡을 것인지 하는 부분이다. 사실 이 회장의 전경련 회장 추대움직임은 지난 99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전경련을 떠날 때부터 끊임없이 제기됐다.
특히 DJ정부 출범 이후 재계의 본산으로 재벌그룹의 입장을 대변해오던 전경련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실세 재벌총수의 회장직 추대론이 강하게 일었다. 당시 전경련은 이건희 회장과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중 한 사람을 회장으로 추대해 흩어진 재계의 구심점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다.
그러나 전경련은 그때마다 번번이 이 회장의 영입에 실패했다. 결국 전경련은 재계원로 모시기로 방향을 선회했고, 이에 따라 김각중 경방 회장과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을 영입하는 선에서 명맥을 유지했다.
이 회장 영입문제는 지난 2003년 김각중 회장이 전경련을 고사한 뒤 본격적으로 논의됐으나 다시 한번 이 회장의 강력한 고사에 밀려 후퇴했다. 당시 이 회장은 “아직 그룹(삼성)의 일을 챙기기에 바쁘다”는 이유로 완곡하게 전경련의 요청을 뿌리쳤다. 특히 이 회장은 “수술(암) 5년 뒤에나 생각해보겠다”고 고사이유를 설명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이번만큼은 사정이 달라보인다. 강신호 현 회장은 최근 송년기자간담회를 통해 “대기업의 단합이라는 측면에서 무게가 있는 분이 맡아야 한다는 게 현 전경련 수뇌부의 중론”이라며 이건희 회장 추대를 강력히 시사했다. 이미 (이 회장의) 건강문제도 어느 정도 해소됐고, 이제는 분위기상 이 회장이 맡을 때도 되었다는 게 전경련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 회장 영입문제는 12월 초부터 전경련 회장단 내부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연말까지 이 회장을 설득해 최종확답을 들은 뒤 오는 2월 정기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추대하는 시나리오를 썼던 것.
그러나 현재 삼성과 이건희 회장의 입장은 전경련 회장을 맡을 수 없다는 쪽에 무게가 실려 있다. 삼성측은 전경련 회장단에 이 회장 영입에 대한 논의 자체를 중단해달라고 공식 요청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또다시 전경련은 이 회장의 영입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모습이다.
그러면 왜 전경련은 이 회장 영입에 매달리는 것일까. 또 이 회장은 왜 재계의 강력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전경련 회장직을 끝내 고사하는 것일까.
이 회장의 고사 이유에 대해 재계 전문가들은 한마디로 “분위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현실적으로 보면 재계의 총본산격인 전경련 회장으로 이건희 회장이 맡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다. 게다가 전경련은 이 회장의 부친인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5·16군사쿠데타 직후 만든 단체이고, 초대 회장도 맡았던 단체다. 따라서 삼성이나 이 회장으로선 전경련이 선대의 유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그런데도 이 회장이 굳이 이 단체를 외면하는 것은 현재 정치, 경제적 분위기가 이 회장이 맡기에 적절치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2000년 당시 이 회장이 고사한 이유였던 건강문제도 지금은 모두 해소된 상황이다. 더욱이나 이 회장은 IOC 위원으로 뽑혀 국제적인 활동도 활발하게 하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이 회장은 국내 분위기상 전경련 회장을 맡기에는 부담스런 부분이 많다.
첫째는 전경련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없지 않은 점이다. 전경련은 70~8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 경제발전의 주역인 대기업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특히 97년 DJ정부 출범 이후 빅딜 등 충격적인 경제정책이 단행되는 과정에 제 목소리를 잃어버린 데다가, 기업에 대한 사회 전반의 부정적 시각이 쏟아져 전경련의 입지가 크게 위축됐다.
이런 상황에서 이 회장이 회장직을 맡게 될 경우 재계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이 회장으로선 자칫 개인에게는 물론 회사(삼성그룹)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둘째는 이 회장의 건강문제가 완전히 해소되긴 했지만 60대(1942년생)인 그로선 이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지난 99년 암수술을 받은 이후 이 회장의 건강은 완전히 회복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그룹 경영과 외부활동이 많은 편이어서 전경련 회장직까지 맡을 경우 과로가 겹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결국 이 회장으로선 재계, 특히 전경련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수용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향후에도 이 회장의 특별한 결심이 없는 한 전경련 회장을 맡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삼성그룹 관계자는 조심스럽게 전했다.
이 회장과 삼성측은 이 같은 입장을 고수하고 있긴 하지만, 최근 이 회장의 처남이자 중앙일보 회장인 홍석현 회장이 주미대사를 맡은 부분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처남인 홍 회장이 주미대사를 맡아 외교무대에 등장한 마당에 이 회장도 재계를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없지 않은 상황이다. 물론 삼성측은 이 부분에 대해 “설득력이 없는 분석”이라고 일축하고는 있다.
아무튼 이건희 회장의 전경련 회장 추대 문제는 연말연초 재계를 뜨겁게 달굴 핫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재계랭킹 1위 기업의 총수인 그가 재계발전을 위해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명분론과 지금 상황은 아니다는 실리론 사이에서 이 회장이 어떤 결단을 내릴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