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일가 앞으로! 후계구도 보인다 보여
삼성그룹-이부진 세력 급부상
지난 3월 18일 열린 호텔신라 주총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장녀 이부진 사장이 등기이사로 신규 선임됐다. 지난 연말 삼성에버랜드 전략담당 사장 겸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한 이부진 사장은 이번 주총을 통해 호텔신라는 물론 그룹 전체를 대표하는 오너 경영인으로 공식 인정받게 된 셈이다.
이부진 사장과 더불어 김정수 운영총괄 부사장과 허병훈 경영지원실장 상무도 호텔신라 등기이사로 신규 선임됐다. 두 사람은 지난 연말 인사를 통해 이부진 사장이 고문을 맡은 삼성물산 상사부문에서 요직을 두루 거친 인사들이다. 김정수 부사장은 삼성물산에서 전자재료본부 본부장, 전자산업본부 본부장, 화학본부 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허병훈 상무는 삼성물산에서 경영지원실 재무담당, 미주총괄담당을 거쳐 경영지원실장까지 지냈다.
삼성물산 상사부문 출신 인사들이 이부진 사장의 호텔신라 경영 핵심에 서게 되면서 호텔신라 수뇌부가 삼성물산 상사부문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한다. 이번 등기이사 선임이 계열분리 관측을 낳고 있는 이부진 사장의 삼성물산 상사부문 접수를 위한 전초과정일 거라 보는 시선도 많다.
이부진 사장의 입지 확대는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3월 18일 삼성전자 주총에서 등기이사에 오르지 못한 점과 맞물려 여러 해석을 낳기도 한다. 당초 주총을 앞두고 지난 연말 사장으로 승진한 이재용 사장이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오를 것이란 관측이 대두되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지난 2월 22일 공시한 주주총회 소집결의 내역엔 결국 새 등기이사 선임에 관한 내용이 실리지 않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건희 회장이 이재용 사장을 삼성전자 전면에 내세워 공식적인 경영책임을 지게 하는 것을 시기상조라 판단했을 것”이란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반면 이부진 사장은 대표이사 겸 등기임원이 된 만큼 회사 수익 등 책임까지 떠안게 됐다. 삼성전자 대표이사는 아니지만 사실상 경영을 주관하는 이재용 사장보다 더 혹독한 공개 시험대에 오른 것일 수도 있다. 향후 호텔신라나 삼성물산 상사부문 실적에 따라 이부진 사장과 오빠 이재용 사장의 경쟁구도가 본격화될 수도 있는 셈이다.
현대차그룹-건설과 시너지 기대
오는 3월 31일 주총 예정인 현대건설은 3월 16일 주주총회 소집결의 공시를 통해 김창희 현대엠코 대표이사 부회장과 이정대 현대자동차그룹 경영기획담당 부회장을 새 등기이사로 선출할 것이라 알렸다. 현대차그룹의 현대건설 인수과정에서 인수단장을 맡았던 김창희 부회장이 김중겸 현 현대건설 사장과 함께 현대건설을 이끌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김창희 부회장이 단독 대표이사가 될지, 김창희-김중겸 공동 대표이사 체제가 될지는 주총 후 이사회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이정대 부회장에겐 현대건설 재무회계 감독 보직이 주어질 전망이다. 현대건설을 이끌게 된 김창희 부회장은 지난 2005년부터 건설 계열사 현대엠코 대표이사를 맡아왔다. 현대엠코는 정몽구 회장의 아들 정의선 부회장이 지분 25.06%를 보유해 최대주주로 있는 회사다.
현대차그룹과 현대건설 인수 경쟁을 벌였던 현대그룹은 인수전 당시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경영권 승계 도구로 사용할 것’이란 내용을 암시하는 TV광고를 내보낸 바 있다. 비상장사인 현대엠코를 현대건설과 합병시켜 우회상장할 경우 정의선 부회장이 거액의 상장차익을 얻어 이를 승계용 지분 매입 실탄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몽구 회장의 신임이 두터운 김창희 부회장이 현대건설로 가게 되면서 ‘현대건설 물량을 통한 현대엠코 키워주기’가 행해질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한편 현대건설은 이번 주총에서 이승재 전 중부지방국세청장과 박상옥 전 서울북부지방검찰청장, 신현윤 연세대 법학과 교수, 서치호 건국대 건축공학부 교수 등 4명을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경영 외적인 면에 치중한 사외이사 선임은 다른 계열사에서도 엿볼 수 있다. 현대차는 지난 3월 11일 주총에서 오세빈 전 서울고등법원장을, 기아차는 지난 3월 18일 주총에서 공정거래위원회 시장감시본부장을 지낸 김원준 김앤장법률사무소 고문을 각각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이 같은 사외이사 영입은 안정적 승계를 염두에 둔 사전작업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정의선 부회장이 향후 승계를 위해 글로비스 지분이나 현대엠코의 최대주주 지위를 활용할 경우 직면할 비판 여론이나 법적 논란에 대비해 사외이사 교체를 통한 외연 넓히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SK그룹-사촌 간 분가 신경전
지난 3월 11일 SK네트웍스는 주총을 통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친동생 최재원 그룹 수석부회장을 새 등기이사로 선임했다. 최 부회장은 SK㈜와 SK텔레콤에 이어 SK네트웍스의 등기이사직까지 차지해 최태원 회장 다음 가는 그룹 내 입지를 공고히 했다.
그런데 최 부회장을 새 등기이사로 맞이한 SK네트웍스는 최태원 회장 사촌형 최신원 SKC 회장이 계열분리 대상으로 요구한 회사로 알려져 있다. 최신원 회장이 눈독 들여온 회사의 경영 중심에 최태원 회장이 친동생 최재원 부회장을 버젓이 앉힌 셈이다. 지난 11일 SK네트웍스 주총장에서 최신원 회장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한편 최신원 회장의 친동생인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은 3월 18일 주총을 통해 SK가스 대표이사 겸 등기이사로 선임됐다. 지난 연말 SK㈜가 갖고 있던 SK가스 주식 45.5% 전량을 SK케미칼에 매각하면서 SK가스가 최창원 부회장 계열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최신원 회장의 SKC 지분율은 3월 18일 현재 3.37%로 42.50%의 SK㈜를 넘어서기가 어려워 보인다. 반면 SK케미칼의 최대주주로서 독립 여건을 갖추고 있는 최창원 부회장은 SK가스까지 손에 넣으면서 분가 선언에 한 걸음 다가선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일각에선 최태원 회장이 SK건설을 ‘온전히’ 갖기 위해 SK가스를 넘긴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되기도 한다. 현재 SK건설의 최대주주는 최태원 회장 계열의 SK㈜로서 지분율은 40%에 이른다. 2대주주는 지분율 25.4%의 SK케미칼이며 최창원 부회장도 개인 최대주주로서 지분 7.4%를 갖고 있다. 지분상으로 SK건설은 최태원 회장 계열이지만 SK건설 부회장을 겸하고 있는 최창원 부회장이 사실상 경영을 주관하고 있다.
SK가스의 최근 분위기가 썩 좋지 않다는 점 또한 여러 해석을 낳게 한다. SK가스는 지난 2009년 액화석유가스(LPG) 가격담합 적발에 따른 과징금 부과에 이어 지난해에도 시민단체와 택시업계로부터 LPG 가격담합 피해 청구소송을 당했다. 이런 가운데 최창원 부회장이 SK가스를 인수하게 되자 “최창원 부회장이 최태원 회장으로부터 애물단지를 넘겨받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돌기도 했다.
LG그룹-구본준 vs 견제세력
이번 주총 시즌 동안 LG그룹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름은 LG전자 등기이사직에 오른 구본준 부회장일 것이다. 구본무 회장의 친동생인 구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LG전자 대표이사직에 올랐으며 3월 18일 LG전자 주총을 통해 대표이사 겸 등기이사로 선임됐다. 2003년 구자홍 현 LS그룹 회장이 LG전자 대표직을 김쌍수 부회장(현 한전 사장)에게 물려준 이후 7년 만에 오너 경영인이 LG전자 대표 자리를 꿰찬 것이다.
지주사인 ㈜LG 지분 7.63%를 보유한 구 부회장은 구본무 회장(10.72%)에 이은 2대주주로 LG가 4세 장자인 구 회장 양아들 구광모 씨(4.72%)에 지분율에서 크게 앞서 있다. 구광모 씨가 최근 과장에서 차장으로 승진했지만 아직 33세에 불과한 만큼 4세 승계를 논하기도 이르다는 점에서 구 부회장의 입지 강화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그런데 강유식 ㈜LG 부회장이 이번 주총에서 LG전자 등기이사로 재선임돼 눈길을 끈다. 강 부회장은 그동안 명실상부한 그룹 내 2인자로 자리매김해온 인물이다. 한때 LG 내 일부 노신그룹이 오너 경영인의 LG전자행에 회의적이었다는 이야기가 나돌면서 구 부회장과 강 부회장의 관계가 주목받기도 했다. 구본무 회장의 신흥 측근으로 주목받고 있는 조준호 ㈜LG 사장도 3월 25일 ㈜LG 주총에서 등기이사로 재선임될 예정이다. 구본준 부회장의 약진과 구본무 회장 측근세력의 성장이 LG가 후계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재계 인사들의 궁금증을 사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