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측 지분 99% 호텔롯데 가치 끌어올려 ‘한국화’ 작업 추진…신동빈 지분율 감소 우려 ‘원톱체제 산 넘어 산’
눈길을 끄는 것은 먼저 상장을 추진하는 업체들에 대한 호텔롯데의 지분이 높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렌터카 사업을 하는 롯데렌탈의 최대주주는 지분율 42.04%의 호텔롯데다. 호텔롯데는 일본 롯데홀딩스와 광윤사, L투자회사 등이 지분 99%를 갖고 있다. 롯데GRS도 호텔롯데와 L투자회사, 부산롯데호텔 등이 45.56%의 지분을 갖고 있다.
호텔롯데가 지분을 보유한 회사들이 상장하면 결국 호텔롯데의 기업가치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직접적으로 호텔롯데를 지배하지 않고 있어 호텔롯데의 몸값 상승이 반갑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호텔롯데의 가치를 올려야 한국 투자자 유치가 가능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호텔롯데의 기업가치를 높이는 작업을 추진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호텔롯데 ‘제값’ 받아야 하는 이유
롯데그룹은 고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의 장기 집권과 형제간 경영권 분쟁, 한일 양국에 얽힌 복잡한 지분 구조 등으로 인해 신동빈 회장이 취임한 지 9년째인 현재까지도 지배구조가 정리되지 않았다.
신동빈 회장은 2017년 롯데그룹 지주사인 롯데지주를 설립했지만 당시만 해도 주력 계열사인 호텔롯데와 롯데케미칼이 일본 롯데홀딩스 산하에 있어 ‘절반의 지주회사’라는 평가가 나왔다. 롯데케미칼은 2018년 10월 롯데지주 자회사로 편입됐지만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으로 꼽히는 호텔롯데 상장은 난항을 거듭 중이다. 2019년 상장 예정이었던 호텔롯데는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과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을 연타로 맞으며 조 단위 손실을 기록 중이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4년 연속 적자를 거뒀다.
신동빈 회장 개인의 입장만 놓고 보면 호텔롯데가 고전하는 상황이 그룹 지배력 강화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롯데지주와 호텔롯데가 합병해 통합 롯데지주 구조로 지배구조를 개편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신 회장은 롯데지주 최대주주지만 보유하고 있는 호텔롯데 지분이 없다. 이 때문에 호텔롯데가 저렴할 때 합병하는 것이 낫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롯데렌탈 IPO 후 2022년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호텔롯데 IPO를 추진할 것으로 전망한다”며 “호텔롯데 IPO는 롯데지주와의 합병을 포함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의 출발점으로 판단한다”고 분석했다.
호텔롯데는 2015년 상장 추진 당시 주관사들이 예상 시가총액으로 11조~15조 원을 제시했다.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예전처럼 중국인 고객이 몰리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적지 않다. 따라서 지금 당장 기업가치를 계산하면 과거에 비해 낮은 가치가 책정될 가능성이 높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신 회장 입장만 놓고 보면 차라리 지금 (호텔롯데를) 상장시키는 것이 나을 수 있다”면서 “가장 안 좋을 때 상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포스트 코로나19’를 기대하는 투자자들이 의외로 많이 몰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호텔롯데는 몸값부터 끌어올리는 것으로 목표를 잡았다. 호텔롯데는 지난 4월 롯데월드타워, 롯데월드몰의 건물과 부지 등을 롯데물산에 5542억 원을 받고 매각했다. 이는 자산 현금화를 통한 기업가치 인정받기의 일환으로 증권가는 해석하고 있다. 호텔롯데는 이외에도 롯데푸드 지분 등 계열사 지분을 꾸준히 매각 중이다.
이를 두고 롯데그룹은 호텔롯데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려야 호텔롯데의 ‘한국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와 관련, 롯데그룹 한 관계자는 “호텔롯데는 현재 일본 측 지분이 99% 이상인데 IPO 과정에서 절반 이하로 낮추는 것이 목표”라며 “호텔롯데의 한국 지분율이 절반을 넘으면 이제 더 이상 일본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붙이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한국인 투자자를 대거 유치해야 하기 때문에 매력적인 가치를 인정받아야만 한다”고 말했다.
다른 측면에서 호텔롯데의 일본인 주주들이 만족할 만한 기업가치를 인정받아야 상장에 동의할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지금 상장하면 일본인 주주 입장에서는 헐값에 지분을 넘기는 꼴이 된다”며 “호텔롯데 모회사인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 53%를 일본인 주주들이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뜻을 거스르면서 상장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호텔롯데가 좋은 평가를 받고 증시에 입성해야 그나마 순탄하게 신동빈 원톱 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신동빈 원톱 체제를 위한 넘어야 할 산은 남았다. 현재 롯데지주는 시가총액이 4조 원을 밑돌고 있다. 호텔롯데도 이 정도 몸값을 받을 것이라고 단순 계산하면 양사 합병 시 신동빈 회장의 지분율은 6~7%로 감소한다. 다음 승계는 불가능할 뿐더러 신 회장 개인의 지배력도 그만큼 약해진다. 롯데지주 입장에서는 어떻게 오너의 지배력을 끌어올릴지 고민해야 한다.
#상장과 합병, 그 이후는?
롯데지주와 호텔롯데 합병 법인이 출범하면 일본의 남은 계열사들은 누구 몫이 되는지도 관전 포인트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지난 6월 말 주주총회에서 지난해 사업연도(2020년 4월~2021년 3월) 매출이 전년 대비 19.7% 감소한 5조 498억 엔(약 53조 원), 당기순손실은 1012억 엔(약 1조 600억 원)이라고 밝혔다.
일본 롯데홀딩스가 조 단위 손실을 낸 것은 주요 계열사인 호텔롯데의 실적 악화 때문이다. 호텔롯데가 상장을 통해 일본 롯데홀딩스로부터 독립하면 일본 롯데홀딩스의 자회사는 일본의 (주)롯데만 남게 된다. (주)롯데는 제과회사인 일본 롯데, 판매 유통사인 일본 롯데상사, 빙과업체 롯데아이스 등으로 이뤄진 회사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재 신동빈 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의 대표이사 회장인데 추후 호텔롯데가 빠져나가도 신 회장이 경영하게 될지는 미지수”라며 “형인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이나 일본인 주주들이 어떻게 행동할지도 지켜볼 만한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 롯데그룹 관계자는 “롯데컬처웍스는 코로나19 때문에 상장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롯데렌탈 등은 시장에서 적정하게 평가받고 있어서 상장을 진행하는 것이지 호텔롯데 자회사라고 상장을 먼저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호텔롯데를 상장하겠다는 대원칙은 유지하고 있지만 시장 상황이 안 좋은 상태에서 진행할 수는 없다보니 지켜보는 중이고, (롯데지주와 호텔롯데 합병은) 호텔롯데 상장 후의 일이기 때문에 아직 뭐라고 말을 하기가 어렵다”라고 전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