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올인하면 곤란해
차화정의 유래는 간단하다. 올 증시에서 이 세 업종만 주가가 올랐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경우 엔화 강세와 대지진의 여파로 일본 자동차에 대한 한국 자동차의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란 기대감이 이유다.
석유화학과 정유는 원자재 가격 상승의 수혜와 글로벌 공급부족의 수혜가 겹친 게 주가상승의 동력이었다. 화학제품은 모든 산업의 기초로 두루 쓰이고, 화학공장의 경우 짓는 데만 한참이 걸리기 때문이다. 제품가격은 계속 올라가고, 가동률도 높아지면서 이익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란 기대가 컸다.
지난해에도 차화정만큼이나 자주 회자되던 말이 있었다. 바로 ‘칠(7)공주’다. 지난해 증시를 휩쓸었던 투자자문사가 선호하는 일곱 종목, 즉 LG화학 하이닉스 기아차 삼성전기 삼성SDI 삼성테크윈 제일모직을 가리키던 말이다. 이들 종목은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이익이 크게 늘어나면서 주가상승 가능성이 높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실제 이들 종목은 수십~수백 퍼센트의 주가상승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7공주와 차화정 사이에 ‘4대천왕’도 있었다. OCI 고려아연 현대제철 한진해운 네 종목을 가리키는 말로 7공주에 이어 투자자문사들이 선호했던 종목들이다.
그런데 7공주에서 4대천왕을 거쳐 차화정까지 살펴보면 2009년 이후 우리 증시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7공주 구성 업종은 자동차 석유화학 전기전자(IT)였다. 4대천왕은 에너지 금속 해운이다. 에너지도 큰 틀에서는 화학에 속한다는 점에서 2011년은 2010년보다 더욱 주도업종 쏠림 현상이 심한 편이다.
금융위기 이후에는 이처럼 개별 업종이나 종목 등 직접투자와 관련된 별칭들이 많지만 금융위기 이전에는 펀드열풍 속에서 펀드와 관련된 별칭들이 많았다. 2005~2007년 펀드 전성시대 동안을 보면 처음에는 ‘부자, ○억 만들기’ 같은 단어가 유행처럼 사용됐다.
2006~2007년에는 ‘미차솔’, ‘봉차’ 같은 말이 많이 사용됐는데 이는 각각 당시 최고의 인기와 수익률을 자랑하던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미래에셋차이나솔로몬 펀드’와 신한BNP파리바운용의 ‘봉주르차이나 펀드’를 줄여 부르던 이름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인사이트 펀드는 일명 ‘박현주 펀드’로도 알려졌는데, 박 회장이 직접 글로벌 유망 자산에 투자할 것이란 투자자들의 생각 때문이었다. 마치 삼성전자가 야심작으로 내놓은 휴대폰을 이건희 회장이 사용하자 ‘이건희 폰’이란 별칭이 붙는 것과 같은 원리다.
흥미로운 것은 7공주나 4대천왕 차화정 같은 말이 만들어진 시기는 이들 테마에 해당하는 종목의 주가가 상당히 많이 오른 다음이라는 점이다. 즉 유행의 결과에 대한 해석이라는 점에서 투자정보로서의 가치는 제한적이다. 유망 종목이 이처럼 별칭으로 만들어질 정도면 해당 업종이나 종목 주가는 상당히 오른 뒤이기 때문이다. 달리 얘기하면 주식시장에서 유행어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차익 실현의 때가 가깝다는 뜻이다.
국내에서의 증권 관련 별칭이 현상에 대한 결과라면, 해외에서는 미래에 대한 예측인 경우가 많다. 가장 널리 알려진 단어가 바로 ‘브릭스’(BRICs)인데 북미와 유럽 일본의 기존 3대 경제 축에 이어 새롭게 부상하는 신흥시장 4개국, 브라질(B) 러시아(R) 인도(I) 차이나(C)를 함께 일컫는 말이다. 골드만삭스자산운용의 짐 오닐 회장이 처음으로 만들어 널리 알려졌다.
브릭스로 전 세계적인 신흥국 투자열풍을 일으키며 재미를 톡톡히 본 골드만삭스는 최근 들어서 ‘NEXT11’, ‘MIKT’ 등의 별칭도 내놓았다. NEXT11은 방글라데시 이집트 인도네시아 이란 멕시코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필리핀 한국 터키 베트남, 11개국으로 향후 세계경제를 이끌어갈 유망 국가 11개국을 가리키는 말이다.
MIKT는 멕시코(M) 인도네시아(I) 한국(K) 터키(T)를 뜻하는 말로 NEXT11보다 좀 더 유망국가를 압축시킨 별칭이다. 하지만 NEXT11과 MIKT는 아직 브릭스만큼의 호응을 얻고 있지 못하다. 어찌 보면 NEXT11이 잘 안 통하자 이를 압축시킨 MIKT를 내놓은 듯도 보인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