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도로스의 기적’ 뒤엔 마당발 인맥
한 포항지역 향우회 소속 인사는 “그 전에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포항 출신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할 때쯤 주변에서 몇 번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을 들었다”면서도 “하지만 그가 포항 출신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항간에는 박지만 씨의 중학교 동창이란 말도 있지만 이마저도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과거 발자취에 대해서 어렴풋이나마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귀금속 유통업계를 통해서다. 기자가 만난 서울 종로 귀금속 유통업 관계자는 “신 명예회장이 20~30대 때 선원을 하면서 외국을 자주 드나든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금괴 유통과 관련한 일을 배우게 됐고 이를 바탕으로 귀금속 유통업과 금괴 수출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의 정설”이라고 말했다.
신 명예회장이 귀금속 도매업을 처음 시작한 것은 지난 1991년이다.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던 것은 1997년 외환위기를 즈음해서다. 당시 전 국민적인 ‘금 모으기’ 운동이 일어났다. 이때 신 명예회장은 금 수출업체인 ‘모나코’와 귀금속 유통업체인 ‘골든힐21’을 설립하면서 큰돈을 벌기 시작했다.
동대문 일대에서 주로 활동하던 그는 ‘스포츠 주얼리’라는 장신구 아이템으로 골든힐21을 연 매출액 4000억 원에 이르는 회사로 키워냈다. 스포츠 주얼리는 반지, 목걸이, 브로치, 건강 팔찌 등 귀금속 장신구 브랜드.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3년 11월 무역의 날에는 ‘1000만 불 수출탑’과 함께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신 명예회장이 실제로는 ‘금괴 밀수’를 통해 큰돈을 벌었다는 말도 나온다. <조선일보>는 최근 부산지역 한나라당 의원의 말을 빌려 “말이 금 수출업이지 금괴 밀수와 다름없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그는 2007년 수출입용 금괴를 변칙 유통한 뒤 254억 원의 부가가치세를 부정 환급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돼 지난해 집행유예 5년, 벌금 150억 원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세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세정당국이 수출용 금에 대해서는 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쓸모없는 금을 외국에 내다 팔았고, 국세청에는 마치 순도 높은 금을 수출한 것처럼 속여 수백억 원의 부가가치세를 환급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1998년 철강 수출업에도 잠깐 손을 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접기도 했다.
신 명예회장은 금 수출업 및 귀금속 유통업으로 큰돈을 벌 때부터 골프에 큰 관심을 보였다. 당시 골프계에서 그는 ‘세미프로’로 불릴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고, 특히 내기 골프를 좋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돈이 모이면서 방송사 골프대회의 메인 스폰서로 나서기도 했으며 각종 골프대회를 후원했다. 지난 2003년 골든힐21이 주최한 골프대회에서는 박세리 선수가 우승하기도 했다.
그가 금융권에 발을 들인 것은 지난 2004년 서울 강남과 신촌지역을 영업 근거지로 하는 삼화저축은행을 인수하면서부터다. 당시 신 명예회장은 자신이 최대주주이자 대표이사로 있는 ‘아비씨앤파트너스’를 통해 삼화저축은행 지분 100%를 인수했다. 인수 때만 해도 자산 6000억~7000억 원 수준이던 삼화저축은행은 올 1월 영업정지 직전까지 총자산 1조 3900억 원 규모로 급성장했다.
▲ 지난 1월 영업정지 명령을 받은 삼화저축은행이 가지급금을 찾으려는 예금자들로 북적이고 있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그중에서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동생인 박지만 씨나 코오롱그룹 이웅렬 회장과 절친한 사이였다는 것은 정·재계에 잘 알려진 얘기다. 세 사람은 청담동에 있는 ‘쿠다이닝’이라는 한정식집에서 자주 만남을 가졌다고 한다. 신 명예회장이 삼화저축은행에 대한 구명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는 것은 지난 1월 이 자리에 정진석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이나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참석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신 명예회장이 이 대통령에게 줄을 댈 수 있는 ‘라인’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삼화저축은행은 지난 2009년 자본금 5000만 원의 신생업체인 ‘나무이쿼티’가 ‘씨모텍’이라는 IT기업을 인수할 수 있도록 거액을 대출해 준 바 있다. 당시 나무이쿼티의 대표이사가 바로 이명박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전종화 씨였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현 정권과 어떤 식으로든 ‘접촉 루트’를 넓히려 했던 신 명예회장이 전 씨를 보고 거액을 선뜻 대출해 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신 명예회장은 자신의 출신이나 학력에 대한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인맥을 넓힐 수 있는 자리는 가리지 않고 찾아다녔다는 후문이다. 그가 정·재계 인사들과 주로 어울렸던 모임인 ‘58년 개띠 모임’도 네트워크를 넓히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신 명예회장이 포항 출신이란 얘기가 정치권에 떠돌았던 것도 그가 워낙 인적 네트워크 확장에 힘썼기 때문에 그 와중에 흘러나온 얘기일 수도 있다는 것이 정치권 관계자들의 추측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골프를 인맥 확장에 적극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명예회장은 삼화저축은행 인수 이듬해인 2005년에 골프단을 창설했다. 정치권에서는 그가 유력 인사들을 골프장으로 초청해 삼화저축은행 골프단 선수들과 동반 라운드를 하도록 주선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현재 신 명예회장과 친분이 있는 여당 의원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소개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인들이나 연예인들이 함께한 자리에 나타나 술값이나 식사비를 계산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고 한다. 검찰도 그가 유력 정치인이나 재벌기업 총수, 고위 공무원들의 술값 등을 주로 계산했거나, 정치인에게 법인카드를 빌려주기도 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신 명예회장의 알고 있는 인사들은 검찰 수사와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그의 ‘씀씀이’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술값을 내거나 카드를 빌려준 것이 아니라 원래 통이 큰 사람이었다는 것. 그래서 일각에서는 그를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 비유하기도 한다.
신 명예회장의 한 지인은 “그가 금괴 변칙 유통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을 당시 그를 조사하던 검찰 수사관이 있었는데 수사관과 피의자 신분으로 만나더니 나중에는 ‘형 동생’ 하는 사이가 됐다”며 “그렇다고 해서 수사관이 수사를 소홀히 했던 것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신 명예회장이 그 수사관의 배포에 깊은 감명을 받아 기소 후 그 수사관을 삼화저축은행의 전문 법무사로 영입했다”고 덧붙였다.
승승장구하던 신 명예회장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2007년 금괴 변칙 유통 사건으로 구속되면서부터다. 그는 법정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나오기는 했지만 230억 원의 세금을 체납해 한때 국세 체납자 순위 4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현재 상호저축은행법 위반 및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상태다. 검찰은 현재 신 명예회장의 구명로비 의혹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수사할지에 대해서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신 명예회장과 가까웠다는 정·관계 인사들이 신 명예회장보다는 박지만 씨를 보고 모여들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신 명예회장 자체가 어떤 정·관계 로비를 했을 정도의 ‘깜’은 되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관계 인사들을 만나 밥 먹고 골프 쳤다는 이유만으로 수사를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유력 대선주자의 이름이 거론되는 만큼 검찰에서도 섣불리 수사에 나서기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무차별적인 폭로전이 이어지면서 여론의 흐름을 주시하고 있다”며 “상황에 따라서는 신 명예회장의 구명로비 의혹에 대해 칼을 들이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공성진 한나라당 전 의원이나 임종석 민주당 전 의원의 경우처럼 매달 돈을 받은 혐의가 확인되면 여야를 막론하고 수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
신삼길-박지만-이웅렬 삼각커넥션 의혹
‘절친 3인방’ 그저 친하기만 했을까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이 ‘핫’한 인물로 떠오른 이유 중 하나는 그가 박지만 씨는 물론이고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과도 절친한 사이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박 씨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친동생이고, 이 회장은 코오롱그룹 사장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과 친밀한 관계다. 결국 신 명예회장은 현재 권력은 물론 유력한 ‘미래 권력’을 두루 아우르는 인적 네트워크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는 셈이다.
지난 1월 세 사람이 청담동 한식당집에서 만난 사실이 알려지자 정치권에 ‘신 명예회장이 구명로비에 나서고 있다’는 말이 회자된 것도 박 씨와 이 회장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신 명예회장은 어떤 계기를 통해 두 사람과 가까워지게 된 것일까. 그 연결고리는 박지만 씨라는 게 정치권의 정설이다. 신 명예회장과 이 회장이 박 씨의 소개로 알게 됐고 이후 자주 만나면서 친분을 쌓았다는 것.
박 씨와 이 회장의 오래된 친분 관계는 이미 정치권에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두 사람은 20대 때부터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내왔으며, 박 씨가 육군사관학교에 다니던 시절 영외에 나오면 이 회장의 집을 자주 찾아갔었다는 후문이다. 이 회장이 최전방으로 군대를 가게 된 계기도 박 씨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씨가 어떤 계기로 신 명예회장을 만났는지는 불분명하다. 한나라당 공성진 전 의원의 여동생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04년께 내가 신 명예회장에게 지만 씨를 소개시켰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두 사람이 이미 그 전부터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으며, 부부동반 모임을 가질 정도로 가까웠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박 씨의 부인인 서향희 변호사가 2009년부터 2년간 삼화저축은행의 법률자문을 맡았던 것도 두 사람의 관계가 멀지 않았다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박 씨와 이 회장 모두 신 명예회장과 가깝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번 사태의 불똥이 두 사람에게 튀게 될지 정·재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단 박 씨나 이 회장 모두 신 명예회장과 친분은 있지만, 부적절한 개입은 전혀 없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만약 박 씨가 삼화저축은행 사태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 박 전 대표는 대권가도에 적잖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회장의 경우에도 의문점이 발견될 경우 지난 2006년 ‘윤상림 게이트’에 연루되어 검찰 조사를 받은 이후 다시 한 번 검찰 포토라인에 서는 불미스러운 일을 당할 수도 있다.
‘절친 3인방’ 그저 친하기만 했을까
▲ 2009년 박정희 추도식에 참석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박지만 씨, 서향희 씨(오른쪽부터). 서 씨는 2009년부터 2년간 삼화저축은행 법률자문을 맡기도 했다. |
지난 1월 세 사람이 청담동 한식당집에서 만난 사실이 알려지자 정치권에 ‘신 명예회장이 구명로비에 나서고 있다’는 말이 회자된 것도 박 씨와 이 회장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신 명예회장은 어떤 계기를 통해 두 사람과 가까워지게 된 것일까. 그 연결고리는 박지만 씨라는 게 정치권의 정설이다. 신 명예회장과 이 회장이 박 씨의 소개로 알게 됐고 이후 자주 만나면서 친분을 쌓았다는 것.
박 씨와 이 회장의 오래된 친분 관계는 이미 정치권에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두 사람은 20대 때부터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내왔으며, 박 씨가 육군사관학교에 다니던 시절 영외에 나오면 이 회장의 집을 자주 찾아갔었다는 후문이다. 이 회장이 최전방으로 군대를 가게 된 계기도 박 씨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씨가 어떤 계기로 신 명예회장을 만났는지는 불분명하다. 한나라당 공성진 전 의원의 여동생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04년께 내가 신 명예회장에게 지만 씨를 소개시켰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두 사람이 이미 그 전부터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으며, 부부동반 모임을 가질 정도로 가까웠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박 씨의 부인인 서향희 변호사가 2009년부터 2년간 삼화저축은행의 법률자문을 맡았던 것도 두 사람의 관계가 멀지 않았다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박 씨와 이 회장 모두 신 명예회장과 가깝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번 사태의 불똥이 두 사람에게 튀게 될지 정·재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단 박 씨나 이 회장 모두 신 명예회장과 친분은 있지만, 부적절한 개입은 전혀 없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만약 박 씨가 삼화저축은행 사태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 박 전 대표는 대권가도에 적잖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회장의 경우에도 의문점이 발견될 경우 지난 2006년 ‘윤상림 게이트’에 연루되어 검찰 조사를 받은 이후 다시 한 번 검찰 포토라인에 서는 불미스러운 일을 당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