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 만에 청와대 입장 발표 “엄중한 위기 상황, 반도체·백신 분야 역할 기대해 가석방 요구 국민 많다” “추가적 지원도 법무부가 법과 절차에 따라 할 것”
문재인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석방을 통해 찬성과 반대 의견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반대하는 국민의 의견도 옳은 말씀”이라며 “국익을 위한 선택으로 받아들인다. 국민들께서도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8월 13일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전했다.
문 대통령은 “한편으로는 엄중한 위기 상황 속에서, 특히 반도체와 백신 분야에서 역할을 기대하며 가석방을 요구하는 국민들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앞서 청와대는 이 부회장의 가석방이 결정된 지난 8월 9일 이후 전날까지도 “문 대통령이 의견 표명할 계획이 없다” “법무부 가석방심사위에서 결정한 일일 뿐”이라고 선을 그어왔다. 이에 문 대통령이 법무부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여권 일각과 정의당 등 진보진영에서는 이 부회장의 가석방이 ‘특혜’라고 반대했다.
그러자 반발을 조금이라도 잠재우기 위한 대응으로 문 대통령이 가석방 결정 나흘 만에 반도체·백신 분야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국익을 이유로 들며 “이해해달라” 입장을 밝혔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이날 입장 발표에 대해 “어느 시점에 (입장을) 말씀 드려야 하는지 종합적으로 청와대가 판단하고, 오늘 이 부회장이 실제로 가석방된 날 말씀을 드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구축과 백신 확보 역할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있고, 문 대통령이나 청와대 입장에서는 그에 부응할 수 있는 역할을 (이 부회장이) 해 주길 기대한다는 그런 수준”이라며 “다른 특별한 계획이 있어서 말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한 이 부회장이 가석방 상태기 때문에 경영 참여와 백신 확보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가석방의 결정 자체도 법무부가 법과 절차에 따라서 한 것이고, 그 이후에 (추가적인 지원) 부분에 대해서도 법과 절차에 따라서 법무부가 할 일”이라고 말을 아꼈다.
한편 이재용 부회장은 이날 오전 10시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가석방됐다. 지난 1월 파기환송심에서 법정구속으로 재수감된 지 207일 만이다.
체중이 10kg 이상 빠져 수척해진 이 부회장은 구치소 앞에 대기 중이던 취재진을 통해 “국민 여러분께 너무 큰 걱정을 끼쳐 정말 죄송하다”며 허리 숙여 사과했다. 그는 가석방 직후 삼성전자 서울 서초사옥으로 출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참여연대를 비롯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 1056개 시민·노동단체는 이날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적폐청산과 재벌개혁이란 대통령의 약속이 쓰레기통에 처박혔다”고 이 부회장의 가석방 조치를 맹비판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