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생리대·유튜브 등 출산 정황 수두룩…바꿔치기·시신은닉 시도 ‘유죄’ 직접증거 없어 징역 8년 그쳐
사건의 1막이 내렸지만 자세한 내막은 여전히 미궁 속이다. 숨진 아이와 바꿔치기된, 그러니까 김 씨의 진짜 딸은 어디로 간 것인지 그 행방이 묘연하고 석 씨 역시 왜 자신의 딸을 손녀와 바꿔치기해야만 했는지 정확한 범행 동기와 수법 등이 밝혀지지 않아 수많은 추측을 낳고 있다.
‘구미 3세 여아 사망 사건’과 관련해 진행된 공판은 석 씨가 5번, 김 씨가 3번으로 총 8번이다. 일요신문은 8번의 공판에서 제시된 증거와 주장 등을 토대로 이번 사건을 총 정리했다.
#법원까지 속이진 못 한 구미 3세 여아의 친모
사건의 시작은 지난 2월 10일로 돌아간다. 피해 아동의 죽음을 처음 경찰에 신고한 것은 놀랍게도 석 씨 부부였다. 아이는 석 씨가 거주하던 경북 구미의 한 빌라 3층에서 미라화 된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아이의 친모로 알려졌던 김 씨는 2018년 3월 30일 아이를 출산해 약 2년 5개월 동안 키웠으나 현 남편과의 외도로 새로운 아이를 낳게 되자 2020년 8월 아이를 빌라에 홀로 방치해 사망하게 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는 세 살이 되던 2020년 여름, 배고픔에 홀로 아사했다. 주변 사람들은 아이가 김 씨와 함께 이사를 간 것으로 알고 있었다. 경찰에 붙잡힌 김 씨는 범행 사실을 인정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끔찍하고 안타깝지만 엽기적인 사건까진 아니었다.
며칠 뒤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숨진 아이의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김 씨가 아이의 친모가 아니라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유전자 검사 결과는 석 씨를 피해 아동의 친모로 지목했다. 당시 석 씨는 경찰 조사는 물론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을 아이의 외할머니라고 소개한 상태였다. 경찰과 검찰은 추가 수사 끝에 석 씨가 딸 김 씨와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했으며, 출산 뒤 김 씨의 딸과 자신의 딸을 바꿔치기했다는 정황을 발견해 재판에 넘겼다. 다만 아이의 친부와 바꿔치기 수법 등은 정확히 알아내지 못 했다. 이번 사건이 세간의 주목을 받은 동시에 경찰과 검찰 수사력의 한계라며 비판을 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석 씨는 사건 초기부터 “아이 낳은 적도, 바꾼 사실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진 공판에서 석 씨 측은 줄곧 “혼자서는 출산이 불가능하다” “아이의 크기 때문에 바꿔치기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모든 혐의를 부인해왔다. 실제로 5번의 공판이 진행되면서도 석 씨의 출산 자체에 대한 직접 증거는 누구도 찾아내지 못 했다. 그렇기 때문에 석 씨의 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석 씨가 피해 아동의 친모라는 점 △아이가 바꿔치기됐다는 점 △아이 바꿔치기 중심에 석 씨가 있을 것 등이 모두 밝혀져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직접 증거 없이 죄를 인정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재판부는 산부인과 간호사의 법정진술 등 증거 90여 개, 크게는 3가지 쟁점을 근거로 해 “석 씨가 피해 아동의 친모라고 넉넉히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첫 번째는 부정할 수 없는 유전자 검사 결과다. 수사기관은 국과수 본원, 부산연구소, 대구연구소, 대검 등 5차례에 걸쳐 유전자 검사를 실시했다.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석 씨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재검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매번 결과는 같았다. 5번이나 같은 결과가 나오자 석 씨 측도 받아들였다. 그러나 출산 자체를 인정하지는 않았다. 석 씨는 7월 13일 열린 4차 공판에서 준비해 온 종이를 꺼내들고 “DNA 결과를 인정한다고 했지만 출산한 적은 없다. 국과수의 노력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진실은 아무리 숨기려 해도 나온다”며 최후 진술을 하기도 했다.
유전자 검사가 나온 이후에는 ‘키메리즘’의 가능성에 기대 무죄를 주장했다. 키메리즘은 한 사람의 몸 안에 둘 또는 그 이상의 유전적으로 구분되는 세포를 가지는 현상이다. 즉, 석 씨에게 두 개 이상의 유전자가 있으므로 유전자 검사만으로는 친자관계를 입증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사실 석 씨의 변호인 역시 확신하지는 못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앞선 공판에서 재판부에 “희소하긴 하나 조금의 희망이라도 있다면”이라며 매스컴에 소개된 키메리즘 자료 등을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이는 주장이었지만 이를 확인하기 위한 여러 검증 절차가 이뤄졌다. 법원은 석 씨의 손톱, 구강, 머리카락 등에서 채취한 검체와 피해 아동의 치아와 대퇴부 연골 등에서 채취한 검체를 비교 분석했다. 결과는 ‘있을 수 없다’였다. 재판부는 “키메리즘은 실제 친자관계인데도 친자가 아닌 것으로 나올 때 설명할 수 있으나 친자관계가 아닌 것이 친자로 오인되는 경우는 설명할 수 없다”며 석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두 번째는 혈액형이다. ABO식 혈액형에 따르면 김 씨는 어떤 남성을 만나도 피해 아동을 출산할 수 없었다. 사망한 아이의 혈액형은 AO형이었는데 김 씨는 BB형이었던 것이다. 반면 석 씨는 BO형으로 AO형인 아동을 낳을 수 있었다. 결국 피해 아동은 어떤 식으로도 김 씨에게서는 태어날 수 없었으며 오직 석 씨에게서만 가능했다.
여기에 석 씨가 아이를 바꿔치기한 시점도 특정됐다. 법원은 김 씨가 아이를 출산한 다음날인 2018년 3월 31일 오후 5시 32분부터 4월 1일 오전 8시 17분 사이 아이가 바뀌었다고 봤다. 판결문에 따르면 김 씨는 2018년 3월 30일 경북 구미의 한 산부인과에서 3.485kg의 아이를 낳았다. 출산 직후 병원 관계자는 인적사항을 기재한 식별띠를 아이의 왼쪽 손목과 오른쪽 발목에 채웠다. 그런데 이틀 뒤인 4월 1일 이 식별띠가 떨어진 채 발견됐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뗀 흔적이었다. “새로 채우려 했으나 헐거워 되지 않았다”는 간호사의 증언도 나왔다.
이것만으로 아이가 바뀌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또 하나의 증거가 있었다. 갑작스럽게 바뀐 몸무게였다. 출생 당시 3.485kg이던 신생아는 3월 31일 3.46kg으로 감소하더니 4월 1일에는 3.23kg으로 무려 225g이나 급감했다. 그 다음날에는 3.21kg, 4월 3일에는 3.27kg으로 이날을 제외하면 평균 60g 이상 차이가 나지 않았다. 해당 병원의 간호사 역시 “신생아가 200g 이상 빠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취지의 법정 진술을 하기도 했다. 법원은 이 병원의 출입이 매우 자유로웠다는 증언 등을 토대로 3월 31일 밤부터 4월 1일 오전 사이에 아이가 바뀌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차고 넘치는 출산 정황
석 씨의 출산을 둘러싼 여러 개의 정황 증거들은 5차례의 공판을 통해 공개됐다. 석 씨는 2017년 8월 30일부터 다녔던 회사에 2018년 1월 27일 돌연 퇴사 의사를 밝혔다. 퇴사 사유는 밝히지 않았다. 회사 측에서는 “근무기간 1년을 채운 뒤 퇴직금을 받으라”고 권유했으나 석 씨는 해당 제안을 거부했다. 이후 1월 28일부터 2월 25일까지 약 1개월 동안 휴직한 뒤, 2월 26일 재입사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부는 2018년 2월 석 씨가 출산 준비를 위해 잠시 퇴사한 것으로 추정했다. 퇴사 당시 건강상의 문제도 없었고, 경제적인 이유로 퇴사를 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석 씨는 자신의 퇴사 사실을 숨기기 위해 경찰 조사에서 퇴사한 적이 없다며 거짓진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석 씨는 2018년 2월 26일 복직 당일 몸이 좋지 않다며 조퇴했고 다음날에는 결근을 했다. 이에 앞선 공판에서는 이 시기 통증을 느껴 조퇴 후 출산을 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또 2017년 9월부터 약 4차례에 걸쳐 출산 관련 영상을 시청한 기록도 있었다. 단순히 출산 관련 지식을 다룬 영상이 아니라 실제 출산의 순간을 촬영한 영상이었다. 직접 영상을 확인한 결과, 영상의 첫 화면에는 ‘임신 출산 분만실 실제상황 촬영현장’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법원과 수사기관에서는 이 무렵 석 씨가 임신 사실을 알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다만 석 씨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석 씨의 변호인은 영상 시청과 실제 출산은 무관하다는 변호를 했다.
이 밖에도 석 씨 명의의 휴대전화에 임신이나 태교, 육아일기 작성 등의 목적으로 임신부들이 주로 이용하는 애플리케이션(앱)이 설치됐다가 삭제된 흔적이 발견됐다. 또 그가 임신한 것으로 추정되는 기간 생리대 구입이 중단되었다가 출산 후 다시 구입한 사실도 발견됐다. 석 씨는 주로 한 이커머스를 통해 생리대를 구입하곤 했는데 유독 이 시기에만 구매가 끊겨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출산한 것으로 추정되는 2018년 2월부터 다시 온라인으로 생리대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석 씨 측은 이 시기 생리대를 오프라인으로 구매했다고 주장했다. 4차 공판 당시 생리대와 관련해 검사의 설명을 듣던 석 씨의 남편은 재판 도중 “내가 생리대 사다줬다고 하지 않았냐? 나랏일을 하는 사람이 이래도 되는 것이냐”며 소리를 지르다 퇴정을 당하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붓기 빠져서 그래”
한편, 석 씨는 딸 김 씨까지도 감쪽같이 속였다. 2018년 4월 2일 출산을 한 김 씨는 가족 단체 대화방에 아기의 사진을 전송했다. 사진을 받아본 가족 구성원 가운데 한 명이 “아이 얼굴이 달라보인다”고 하자 석 씨는 “(아이의) 붓기가 빠져서 그렇다”고 답했다. 4월 2일은 수사기관과 법원의 판단으로 이미 아이가 바뀐 시점이다. 아이가 달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일각에선 석 씨와 김 씨의 공모 의심도 나왔으나 법원은 김 씨 역시 석 씨의 출산 사실을 몰랐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김 씨가 종종 지인들에게 “아이가 아빠를 닮아 큰일이다”라고 말하거나 경찰 조사 당시 “엄마(석 씨)가 그 시기 살이 쪘었다”는 등의 진술을 했다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숨진 아이는 자신의 아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또, 석 씨의 딸 김 씨의 전남편 역시 과거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장모님(석 씨)이 살이 쪘던 시기가 있었으나 임신 사실은 전혀 몰랐다. 전 아내 역시 한때는 아이를 살뜰하게 챙기며 키웠다”고 말한 바 있다.
문제는 여전히 출산의 직접적인 증거와 구체적인 범행 방법 등은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건의 무게에 비해 8년이라는 다소 적은 형량이 나온 이유도 석 씨가 사체은닉미수와 미성년자 약취 혐의로만 기소됐기 때문이다. 사라진 아이의 행방을 찾기 전까지는 이에 대한 책임 역시 석 씨에게 물을 수 없다. 석 씨는 여전히 혐의 일체를 부인하고 범행 수법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석 씨의 죄를 인정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감추고 알려주지 않는 범행 전후의 연결고리를 빠짐없이 증명할 것을 요구한다면 실체적 진실의 발견을 통한 형벌권의 정당한 행사를 도외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사건의 경우 범행의 세부적 경위까지 밝혀내기 어렵다는 점을 법원이 인정한 셈이다. 범행 동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짐작했다.
“피고인은 2019년 1월 말까지 남편과 10년 넘게 성관계를 하지 않았는데, 갑작스러운 임신으로 인해 불륜 사실이 드러날 것이 두렵고 출산을 하더라도 정상적으로 양육할 수 없음을 염려해 아이를 바꿔치기했다고 볼 수 있다. 딸이 출산한 아이보다 자신이 출산한 아이를 더 가까이 두고 지켜보고 싶은 마음에 바꿔치기했다고도 볼 수 있다.”
가족은 물론 자기 자신마저 속인 3년이었다. 그는 자신의 딸과 친딸의 친딸을 바꿔치기한 것도 모자라 곁에 두고 외할머니 행세를 하는 등 비상식적인 행각을 벌여왔다. 그러나 석 씨가 속일 수 있는 건 거기까지였다. 법원은 17일 석 씨의 미성년자 약취와 사체은닉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석 씨는 1심 선고 하루 만에 항소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