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로 KGC에서 새 시즌 준비 “올림픽은 꿈의 무대, 매 경기가 결승…가수 정은지와 만남은 최고의 선물”
2020 도쿄올림픽 세르비아와의 동메달결정전을 마친 이소영(27·KGC 인삼공사)은 자신의 SNS에 성공적으로 올림픽을 마친 소감을 전했다. 자신의 첫 올림픽 무대였고, 경기 도중 교체 투입될 때마다 측면 공격수로 제 역할을 했던 이소영으로선 어느 국제 대회보다 이번 도쿄올림픽이 잊지 못할 대회로 남았을 것이다. 항상 믿고 의지했던 김연경을 비롯해 후배들을 진심으로 챙기고 아꼈던 선배들을 따르며 ‘소영 선배’ 대신 ‘소영 후배’로 동고동락했던 올림픽 여정은 배구선수 이소영을 한층 성숙시켜준 계기가 됐다.
짧은 휴가를 마치고 소속팀 KGC인삼공사로 복귀한 이소영을 만났다. 19일 대전광역시 신탄진에 위치한 KGC 인삼공사 배구단에서 마주한 이소영은 어느새 올림픽의 여운보다 새로운 팀에서 새 시즌을 맞이하는 각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번 도쿄올림픽은 이소영 선수한테 여러 가지의 의미를 부여했을 것 같다. 대회를 마치고 돌아온 소감이 궁금하다.
“도쿄올림픽 전까지만 해도 나와 대표팀은 별다른 인연이 없는 것만 같았다. 리그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도 대표팀에 가면 내가 갖고 있는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돌아와 항상 속상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대표팀 합류 전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컸다. 그런데 의문과 걱정 대신 오히려 박수 받으며 올림픽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처음부터 끝까지 대표팀 선수들과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선배들에게 정말 고마웠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일본에서 귀국 후 여러 방송에 출연해 인터뷰를 가졌다. 그중 이소영 선수가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인 에이핑크 정은지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는데 기분이 어떠했나.
“와,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은지 언니랑은 이전부터 문자로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였는데 직접 얼굴 본 건 라디오 출연할 때가 처음이었다. 언니를 만나러 방송국으로 향할 때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이라고나 할까.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과 같이 방송도 하고, 방송 후 식사도 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여러 연예인들 중 정은지의 팬이 된 계기가 궁금하다.
“언니가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마야의 ‘나를 외치다’란 노래를 부른 적이 있었다. 당시 내가 여러 가지 일들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언니가 마치 내게 힘을 내라고 불러주는 듯 감정이입이 되더라. 그 노래를 통해 위안을 받았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은지 언니를 좋아했다.”
―올림픽 이후 받은 선물 중 최고의 선물이었겠다.
“당연하다. 정말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다시 대표팀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이번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대표팀이 구성됐을 때 이전보다 전력이 약해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선수들은 그런 반응들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나로선 대표팀 전력이나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내 것만 하기에도 너무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표팀에 가면 자존감이 낮아진 터라 자신감을 갖고 훈련을 이어가는 게 중요했다.”
―대표팀 합류 후 자존감이 낮아진 이유가 무엇인가.
“딱 한 가지만의 이유는 아니다. 사람들은 즐기면서 하라고 조언하지만 마음처럼 잘 안 됐다. 나보다 배구 잘하는 선수들 틈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더라.”
―혹시 신장(176cm) 때문인가. 국제 대회에선 신장이 작은 편이라 유럽 및 중남미 선수들과의 경기에선 출전 시간이 많지 않았다.
“국제대회 나가면 상대팀 리베로 선수랑 내 키가 거의 비슷했다. 우스갯소리로 ‘이거 반칙 아니냐’고 말한 적도 있는데 그만큼 유럽 선수들 키가 큰 편이다. 그들의 블로킹을 뚫고 가려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풀리면서 위축된 부분도 있었다.”
―그런 점들이 노출되면서 ‘이소영은 국내용’이라는 지적이 뒤따랐다.
“적잖은 상처를 받았다. 나도 보여줄 수 있는데, 보여주고 싶은 게 많은데 잘 안 되니까 마음을 다치게 되고, 절망하는 일들의 반복이었다. 선배들 하는 거 보면서 자신감을 되찾으려 해도 코트에 들어서는 순간 자존감이 무너진다. 상대와 싸우기 전에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게 우선이었다. 돌이켜보면 스스로 싸우고 이겨내야 하는 일들이 정말 많았다.”
―이번 도쿄올림픽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대회라고 할 수 있겠나.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조금은 변화된 것 같다. 특히 (김)연경 언니의 존재감, 대단함을 가까이서 보고 느끼며 배운 게 정말 많았다. 사람들이 말하길 ‘김연경은 김연경이다’라고 말하는데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알겠더라. 연경 언니는 배구 선수 이전에 사람으로서도 정말 멋진 분이다.”
―예선 4차전에서 일본을 세트 스코어 3-2로 꺾고 8강 진출을 확정 지은 후 김연경 선수와 체육관을 빠져 나가는 모습이 배구협회 공식 SNS를 통해 공개됐다. 친한 선후배의 다정한 모습이 그대로 노출된 듯했다.
“한·일전 마치고 모두 감정이 격해진 상태였다. 우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눈물은 흘리지 않아도 먹먹한 감정을 보인 선수들도 있었다. 연경 언니랑 라커룸을 빠져 나오는데 언니가 내게 ‘소영이 운다’라고 말해 내가 ‘언니도 촉촉?’이라고 물었는데 ‘눈물은 흘러야 눈물’이라는 언니의 대답이 참 멋있었다. 이전에는 큰 산처럼 느껴졌던 연경 언니가 이번 올림픽 동안에는 서로 장난도 치면서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다.”
―김연경 선수가 도쿄올림픽을 끝으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그로 인해 ‘포스트 김연경’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이소영 선수의 역할론이 부각되고 있는데.
“사실 대표팀에 연경 언니가 없다는 걸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여전히 실감도 나지 않고. 어느 누구도 연경 언니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포스트 김연경’만큼 부담스런 타이틀이 또 있을까 싶다. 지금은 아예 그런 부분은 생각조차 안 하고 있다. 나는 거기에 오를 만한 레벨이 아니기 때문이다.”
―올림픽 한·일전은 성격상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정말 스트레스가 심했다. 특히 일본은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정교한 플레이를 구사하는 팀이라 우린 더 철저히 준비해야 했다. 중간 중간 교체 투입되면서 조금은 팀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대표팀에 빚진 마음을 조금은 덜 수 있었다. 일본전에서도 중간에 교체돼 들어갔을 때 연경 언니의 지시대로 움직였고, 그게 잘 맞아 떨어져 득점으로 이어졌다. 너무 기쁜 나머지 언니한테 가서 안겼을 정도다. 모든 선수들이 한·일전만큼은 이기고 싶어 혼신의 힘을 다해 뛰었다. 돌이켜보면 올림픽 기간 동안 치른 모든 경기들이 결승전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말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스테파니 라바리니 감독 관련 이소영 선수의 유명한 ‘짤’이 있다. 코트에서 지시하는 감독의 이야기를 잘 못 알아듣겠다며 ‘뭐라고 하는 거야?’라며 묻는 표정이 재미를 안겨주기도 했다.
“감독님 말씀을 이해하고 싶은데 잘 못 알아들을 때 답답해서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 ‘짤’로 돌아다니더라. 외국인 감독님의 장점도 있지만 소통면에선 어려운 부분도 존재했다. 의사소통 문제로 한두 번 감독님한테 혼나기도 했다. 감독님이 지시한 내용과 다른 플레이를 할 때 지적받았다. 그럴 땐 ‘쿨’하게 ‘미안하다’고 말씀드렸다.”
―2020 도쿄올림픽은 배구선수 이소영한테 어떤 스토리로 남을 것 같나.
“선수라면 올림픽은 꿈의 무대다. 그 꿈을 이룰 수 있었던 대회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2016 리우올림픽 때 예선전까지 뛰고 최종 멤버에 탈락하면서 본선에 나가지 못한 터라 특히 이번 올림픽이 큰 추억을 안겨줬다. 팀에선 고참급인 내가 대표팀 막내 라인에서 언니들과 울고 웃으며 대회를 치를 수 있어 더 큰 감동을 안겨줬다. 정말 재미있게 배구 했던 시간들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2012-2013시즌 GS칼텍스 입단 후 9년간 원 클럽 플레이어로 활약한 이소영은 2020-2021시즌에 트레블(컵대회, 정규시즌 및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뤄낸 후 FA(자유계약)를 통해 KGC 인삼공사로 이적했다(연봉과 옵션 합쳐 연간 최대 6억 5000만 원에 3년 계약). GS칼텍스의 심장으로까지 불린 그가 팀을 옮기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는 FA 과정을 떠올리며 “다 말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았다”고 말한다. KGC 인삼공사의 이영택 감독은 이소영을 영입하기 위해 육고초려(六顧草廬)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소영 선배’ 이소영의 배구 인생 2막이 새롭게 시작되고 있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