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7세에 대표팀 합류…처음 주장 나선 인천AG 금메달…준비 힘들었던 마지막 올림픽 값진 4강
지난 12일 김연경은 대한배구협회장과 면담 끝에 대표팀 은퇴를 결정했다. 2005년 만 17세 나이로 성인 대표팀 유니폼을 처음 입은 이후 17년 만이다.
첫 등장부터 심상치 않았다. 주니어 대표팀에서 주장을 맡아 팀을 이끌던 김연경은 고등학생 신분으로 대표팀에 합류했다. 팀 내 가장 어린 선수였지만 '주포'로 활약, 처음으로 참가한 성인 국제대회인 그랜드챔피언스컵에서 전체 득점 3위에 올라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고 프로 무대에 발을 내디딘 김연경은 거칠 것이 없었다. V리그 우승, MVP 등극 등 기세를 몰아갔고 대표팀에서도 꾸준히 주역으로 활약했다.
승승장구하던 김연경에게 제동이 걸린 것은 2007-2008시즌이 끝난 후. 3년간의 프로 생활 끝에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 수술대에 올랐다. 재활 기간이 필요했기에 대표팀의 올림픽 예선전에 참가할 수 없었다. 김연경을 포함해 주요 선수들이 부상으로 빠진 대표팀은 올림픽 진출 티켓을 따내지 못했다. 이전까지 여자배구 대표팀은 1996 애틀랜타올림픽부터 3개 대회 연속 본선에 나섰다. 2008년 본선 진출 무산은 16년 만의 일이었다. 그렇게 성인 대표팀 합류 이후 첫 올림픽을 김연경은 멀리서 지켜만 봐야 했다.
김연경이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종합대회에서 첫 성과를 거둔 것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이었다. 이 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앞서 대표팀 2년차였던 2006년 도하 대회에서 5위를 기록한 부진을 털어냈다. 다만 결승전 중국과 일전에서 5세트까지 가는 접전을 펼치고 듀스 끝에 당한 패배는 짙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2012년은 김연경이 고대하던 올림픽(런던)이 열리는 해였다. 4년 전 프로 3년차에 불과했던 김연경은 4년이 흐르는 동안 일본, 터키 무대를 밟았고 유럽배구연맹(CEV) 챔피언스리그까지 우승하며 세계 최고 선수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 올림픽에 앞서 열린 예선전에서는 한일전 22연패 기록을 끊어내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막을 올린 올림픽 본선 무대, CEV 챔피언스리그 MVP 김연경은 상대 팀을 맹폭하는 활약으로 팀을 4강에 이끌었다. 올림픽 4강은 여자배구 대표팀으로서 36년 만의 일이었다.
하지만 4강에선 미국에 패했고 동메달 결정전마저 일본에 패해 대표팀이 받아든 성적은 최종 4위였다. 비록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의미가 큰 대회였다. 김연경은 대회 최다득점자에 올랐고 FIVB가 선정한 올림픽 MVP로 뽑혔다. 미국, 브라질, 이탈리아, 세르비아 등 강호들과 대등하게 맞서며 우리나라 여자배구의 존재감을 더욱 알리는 계기가 됐다.
올림픽을 전후로 세계가 주목하는 선수 반열에 올랐지만 김연경 개인으로선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연이은 해외리그 생활 속에서 원 소속팀 흥국생명과 분쟁에 휘말린 것이다. '임대'라는 규정에 명시되지 않은 이적 형태를 놓고 선수와 구단 간 해석이 달라 갈등을 빚었다. 구단은 김연경의 임의탈퇴를 불사했고 김연경은 '국가대표 은퇴'까지 언급하며 해외활동 지속 의지를 보였다. 결국 FIVB에서 김연경의 손을 들어주면서 그의 터키 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선 김연경 커리어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연경이 대표팀 주장으로 나선 것도 이때부터다. 홈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대표팀에 20년 만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안겼다. 결승전에서 4년 전 아픔을 안겼던 중국을 상대로 3-0 완승을 거뒀기에 더욱 의미 있는 금메달이었다.
2016년 또 한 번의 올림픽(리우)에서 김연경은 좌절을 경험했다. 많은 기대 속에 메달 획득에 다시 도전했지만 8강에서 여정을 멈췄다. 팬들의 기대가 컸던 만큼 선수들에게 많은 질타가 쏟아졌다. 김연경은 대회에서 돌아와 후배 선수들을 보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 열린 2018년은 대표팀이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인 한 해였다. 김연경이 부상 여파로 온전한 컨디션을 보이지 못했고 팀의 성적도 저조했다. 기존 월드리그가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로 개편된 첫 대회에서 대표팀은 16개 팀 중 12위에 머물렀다. 김연경과 대표팀이 공을 들인 아시안게임에서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8년의 여파로 대표팀 사령탑은 사상 최초로 외국인 지도자가 맡게 됐다. 2020 도쿄 올림픽에 나선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이었다.
김연경은 대표팀 생활, 그 중에서도 올림픽이라는 대회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2017년 터키 생활을 마치고 돌연 중국리그로 향했던 그는 이 같은 행보에 대해 "대표팀 일정에 수월하게 참가하기 위해"라는 이유를 들었다.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가 배구계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쳤고, 올림픽마저 1년 연기가 확정되자 김연경은 국내 복귀를 결정했다. 이 역시 '올림픽 대비'라는 이유가 컸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이라고 천명했던 올림픽 준비 과정은 순탄치 못했다. 지속된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2021 VNL은 힘든 환경에서 치러졌다. 휴식기를 가질 수 있고 국내외를 오가는 이전 일정과 달리 5주간의 경기를 모두 이탈리아 한 곳에서 했다. 대회를 마치고 복귀해선 자가 격리 기간을 거쳐야 했다.
팀 내 악재도 터졌다. 대표팀 내 일부 선수들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며 전력에서 이탈했다. 김연경과 주요 베테랑들의 마지막 올림픽이지만 결과를 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따랐다.
그래도 기대감만큼은 어느 때보다 컸다. 김연경은 개인 통산 세 번째로 나서는 올림픽에서 배구 대표팀 내 주장뿐 아니라 대한민국 올림픽 여자선수단 주장을 맡았다. 개막식에서는 선수단 입장 기수로 나섰다.
막을 연 올림픽 본선에서는 우려를 딛고 케냐, 도미니카공화국, 일본 등을 연파하며 8강에 올랐다. 8강에서는 강호 터키를 꺾었다. 일본전과 터키전 모두 5세트 접전 끝에 극적인 승리였다. 특히 마지막 5세트 12-14의 벼랑끝 위기에서 연속 4득점하며 16-14로 역전승한 일본전은 백미였다. 대표팀은 객관적 전력이 앞서는 상대들에 거듭 승리를 거두며 팬들을 흥분시켰고 그 중심에는 주장 김연경이 있었다.
하지만 김연경과 대표팀은 결국 메달 목표를 이루지는 못했다. 4강과 동메달 결정전에서 브라질과 세르비아에 잇달아 0-3 완패를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에게는 4년 전 질타가 아닌 박수가 쏟아졌다. 김연경은 경기를 마친 후 만감이 교차하는 듯 눈물을 흘리면서도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도쿄올림픽을 마지막으로 김연경은 정든 대표팀을 떠난다. 그는 대표팀 은퇴를 발표하며 "서운한 마음이 든다"는 소감과 함께 "후배 선수들이 잘해줄 것이라 믿는다. 열심히 응원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