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커머스·배달앱 등 출혈경쟁이 발목…9월 보호예수 해제도 주가 악영향
쿠팡은 지난 3월 11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49.25달러로 상장했다. 공모가 35달러 대비 41% 오른 주가로 성공적으로 상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쿠팡의 주가는 하락하기 시작했고, 지난 8월 25일(현지시간) 30.86달러까지 떨어졌다. 3월 11일 고점(69달러) 대비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공모가에도 못 미친다.
쿠팡의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진 시점은 지난 8월 12일, 쿠팡의 2분기 실적이 발표된 날이다. 전날인 11일 37.2달러이던 쿠팡의 주가는 12일 34.13달러로 떨어졌고, 이후 30~31달러를 오르내리고 있다. 2분기 실적에 대한 투자자들의 실망감이 주가 하락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쿠팡의 올해 2분기 매출은 44억 7811만 달러(약 5조 2281억 원)로 지난해 2분기 대비 71% 늘었다. 하지만 순손실은 5억 1860만 달러(6054억 원)로 지난해 2분기(1억 205만 달러, 1191억 원) 대비 약 5배 증가했다.
여기에는 6월 경기 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로 인한 손실(총 2억 9600만 달러, 3455억 원)이 반영됐다. 다만 이 중 상당액은 보험금을 받으며 이익으로 환입될 것으로 보인다. 화재로 인한 영향을 제외하면 2분기 순손실은 전년 동기 대비 2억 2310만 달러(2604억 원)로 119% 증가했다. 1분기 순손실이 전년 동기 대비 180%까지 증가했던 점을 고려하면 손실 증가폭은 줄어든 셈이다. 그러나 뉴욕 증시 상장으로 5조 원을 확보한 쿠팡이 2분기에 흑자전환할 것이라는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관련 업계에서는 쿠팡 적자의 고질적인 원인으로 유통사업 부문을 꼽는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기 위해 손실을 감수하고 있는데, 최근 이커머스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출혈이 오히려 심해진다는 것이다.
이커머스업계 한 관계자는 “시장에서 투자금을 끌어온 뒤 최저가로 상품을 소비자들에게 공급하고, 새로운 소비자들을 끌어오기 위해 무료배송 쿠폰을 뿌리기를 반복한다”며 “이 방법도 일종의 투자이고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좋지만, 남는 장사가 안된다는 게 문제”라고 분석했다.
실제 쿠팡은 지난 4월 2일부터 5월 31일까지 ‘로켓배송상품 무조건 무료배송’ 캠페인을 진행했다. 배송비 없이 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신규 고객을 끌어오기 위한 마케팅 일환이다. 규모의 경제에 이를 때까지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으로 읽히지만, 창사 이래 적자를 면하지 못한 만큼 무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 게 사실이다.
쿠팡은 다른 사업에 대한 투자도 확대하고 있다.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쿠팡이츠’와 신선식품 새벽배송 서비스 ‘쿠팡프레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쿠팡플레이’ 등 지난해 시작한 서비스의 외형을 키우기 위해 마케팅과 홍보, 판관비 등에 상당한 투자금을 쏟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쿠팡이츠의 상반기 매출은 지난해 하반기 대비 3배 이상 증가, 쿠팡프레시의 2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사업들의 적자는 여전하지만 외형적으로는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의 경쟁이 이미 치열한 만큼 빠른 수익 실현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배달 앱 시장에는 지난해 매출 1조 원에 달하는 ‘배달의민족’이 1위를 지키고 ‘새벽 배송 3사’로 불리는 마켓컬리와 쓱닷컴, 오아시스는 내년 중 상장을 준비하며 혈투를 예고하고 있다. 게다가 쿠팡플레이의 경쟁자는 해외 거대 자본을 등에 업은 넷플릭스, 그리고 올해 가을 국내 상륙을 예고한 디즈니플러스다.
앞의 이커머스업계 관계자는 “미국 아마존은 월마트가 유일한 경쟁자이고 이들은 각자 엇갈리는 전략을 취해왔기 때문에 큰 출혈 전쟁은 없었지만 우리나라는 워낙 경쟁자가 많아 치열하게 부딪히는 상황”이라며 “국내 대기업들이 이커머스 사업에 뛰어든 만큼 쿠팡이 빠른 시일 내에 수익을 내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쿠팡이 일본과 대만에서 글로벌 사업을 준비하고 쿠팡이츠가 생필품과 신선식품을 배달하는 ‘퀵커머스’ 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지속적인 추가 투자로 인한 부담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쿠팡의 주가가 부진한 이유는 또 있다. 보호예수 해제다. 오는 9월, 쿠팡 전체 주식 중 86%에 달하는 물량에 대한 보호예수가 해제된다. 투자자들이 투자금 회수에 나서면 주가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커머스업계 다른 관계자는 “외부 투자자를 비롯한 쿠팡 직원들이 보유하고 있던 쿠팡 주식을 매도할 가능성이 커서 시장에서 우려가 나온다”고 밝혔다.
쿠팡을 둘러싼 국내 이슈들로 인해 쿠팡의 주가는 더 요동칠 수 있다. 최근 쿠팡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자신들의 ‘최저가 보장’ 정책으로 인한 손실을 줄이기 위해 납품업체에 갑질을 일삼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밖에 물류센터 화재 사건에서도 내부 화재안전시설이 미비하다는 지적을 받았고 물류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 환경에 대한 비판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사회적 책임을 더 요구하는 미국에서 쿠팡을 둘러싼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공기업정책학과 교수는 “미국 투자시장은 기관투자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데, 이들은 기업과 소비자‧협력사‧노동자의 관계를 중요하게 바라본다”며 “ESG(친환경‧사회적 책임‧지배구조)를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만큼 쿠팡의 국내 이슈가 미국 투자자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