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1위 골프용품 업체 인수 화제
▲ 세계 1위 골프용품 업체 ‘아큐시네트’ 인수에 성공해 주목을 받은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 그의 성공신화는 어디까지 쓰여질까. 연합뉴스 |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 중 대부분은 “대단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아큐시네트가 워낙 유명한 회사였기 때문이다. 아큐시네트는 타이틀리스트(Titleist) 골프볼, 풋조이(Foot Joy) 골프화, 스카티 카메론(Scotty Cameron) 퍼터, 보키(Vokey) 웨지 등을 보유한 전 세계 1위 골프용품 회사다. 특히 타이틀리스트 골프볼과 풋조이 골프화는 전 세계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연 매출은 약 13억 달러에 달한다.
물론 휠라코리아와 미래에셋PEF 등이 한 회사를 인수할 수 있는 자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큐시네트가 워낙 잘나가는 회사였고 입찰에 참여한 아디다스, 나이키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회사를 따돌리고 휠라코리아가 인수에 성공했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감탄을 주었던 것이다.
한 증권사 M&A팀장은 “아큐시네트에 대한 인수 작업을 진행 중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며 “그래도 아디다스, 나이키 등을 물리칠 것이라고는 솔직히 믿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아큐시네트 인수 작업과 성공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중에서도 주인공 격인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66)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휠라코리아의 아큐시네트 인수는 마치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고 평가됐던, 지난 2007년 휠라코리아가 휠라 글로벌 본사를 최종 인수한 것을 연상케 했다(2005년 본사에서 독립한 후 2007년 휠라룩셈부르크 인수로써 글로벌 휠라 인수). 아큐시네트 인수 발표와 함께 윤 회장은 “이번 인수를 통해 휠라코리아도 세계적인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흐뭇해했다.
윤윤수 회장은 일제 억압에서 해방이 되던 해인 1945년 9월 9일 경기도 화성군 비봉면 쌍학리에서 2남5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윤 회장이 태어난 동네는 4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칠원 윤씨 집성촌이어서 윤 회장은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그는 태어난 지 백일도 되지 않아 어머니를 여읜 탓에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자연스레 형, 누나들에게 많이 의지했고 특히 아버지의 사랑과 기대를 크게 받았다. 어머니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윤 회장은 아내(이효숙 씨)에게서 많이 받았다고 한다. 윤 회장은 지금도 헌신과 내조에 공을 들인 아내에게 “존경한다”는 말을 내비친다.
윤 회장은 비봉초-수원중-서울고를 거쳐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그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73년 해운공사(현 한진해운)에 입사하면서다. 그 후 윤 회장은 1975년 JC 페니, 1981년 화승 수출이사 등을 거쳐 1985년 휠라에서 근무하며 1991년 마침내 휠라코리아 설립과 함께 CEO(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윤 회장은 지난 2003년 미국의 헤지펀드 케르베로스 캐피탈 매니지먼트과 함께 지주회사 SBI를 만들어 MBO(내부 경영자 인수 방식)를 통해 휠라 본사를 인수했다. 그러나 이때의 본사 인수는 단지 ‘본사’ 인수일 뿐 휠라 전체를 인수한 것은 아니었다. 글로벌 휠라 인수는 2007년에야 종지부를 찍는다. 그러므로 2003년 본사 인수는 윤 회장이 휠라 전체를 인수하는 출발점이었던 셈이다.
2003년 휠라 본사 인수 당시 SBI 지분이 3.5%에 불과했던 윤 회장은 2005년 한국인 경영진과 함께 SBI가 가진 휠라코리아 지분을 다 사들인다. 또 2007년에는 휠라코리아의 자회사인 GLBH홀딩스(회장 윤윤수)를 통해 휠라룩셈부르크를 인수하면서 비로소 전 세계 휠라 브랜드를 모두 관리하게 됐다. 어쨌든 윤 회장은 2005년 휠라코리아로 별도 독립하면서 휠라코리아 회장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그동안의 공을 인정받아 휠라의 발상지 이탈리아 비엘라시의 명예시민이 되기도 했다.
윤 회장이 무역업과 인연을 맺게 해준 가장 큰 원동력은 군대(카투사)에서 갈고 닦은 영어 실력이었다. 당시만 해도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이 드물어 영어 실력 하나만으로도 취업하기가 비교적 쉬웠다. 첫 직장인 해운공사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영어 실력의 영향이 컸다. 군대에서 기른 영어 실력과 해운공사에서 쌓은 다양한 해외 경험은 윤 회장이 무역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조건들이었다.
1981년 화승의 수출이사로 들어간 것은 윤 회장이 신발, 스포츠용품과 인연을 맺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윤 회장은 화승 재직 시절을 ‘성공과 실패의 경험’으로 기억하고 있다. 화승의 수출이사로서 한국 신발업계 사상 처음으로 신발 직수출이라는 쾌거를 이뤄냈고, ‘종합상사’ 분야에 진출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했다. 신발업계와 종합상사업계에서 윤 회장의 입지는 단숨에 넓어졌다. 특히 화승 내에서 ‘윤윤수 이사’에 대한 평가와 위치는 날이 갈수록 견고해졌다.
그러나 성공에는 주위 사람들의 시기가 따르게 마련. 50대 임원들 사이에서 젊은 윤윤수 이사에 대한 평가가 마냥 좋을 리 없었다. 그러던 차에 ‘대박’으로 생각하고 진행했던 ‘이티(ET)인형’ 제작, 유통, 판매 등 행위에 대해 미국 회사로부터 저작권 문제로 제소를 당하면서 윤 회장은 낙마하고 만다. 윤 회장은 그때 실패를 “ET인형 실패는 내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며 가장 뼈아픈 교훈으로 삼고 있다.
윤 회장의 기획으로 만든 ET인형은 결국 미국 수출 길에 오르지 못하고 헐값에 국내에 대량으로 풀렸다. “1983년 크리스마스 무렵 서울 곳곳에 등장한 ET인형을 가득 담은 리어카 행상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그 인형들이 나의 시행착오로 미국에 가지 못하고 헐값으로 팔린 인형들이다.” 윤 회장의 이 회고의 행간에는 쓰라린 기억이 듬뿍 묻어 있다.
하지만 화승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나온 것은 아니었다. 화승에서의 경험은 휠라와 인연을 맺는 데 바탕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또 휠라에서 신발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데에도 밑거름이 됐다. 어쩌면 윤윤수 회장이 휠라코리아 회장이 된 데는 화승에서의 경험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한 증권사 M&A팀장은 “무역업과 신발사업 등 다양한 경험이 지금의 윤 회장이 있게 한 힘이라고 생각한다”며 “게다가 윤 회장은 M&A 능력까지 겸비했다”고 평가했다.
윤윤수 회장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로 윤 회장이 ‘은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빼놓을 수 없다. 윤 회장에게 국내외 여러 ‘은인’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사람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다.
윤 회장이 화승을 나와서 작은 종합상사를 운영하던 시절, 자금 압박에 시달리던 그에게 박연차 당시 회장은 “재주가 많은 분인데 자금이 부족해 곤란을 겪고 있다고요. 아무런 조건 없이 주는 돈이니까 다른 오해는 마시고 사업에 보태 쓰십시오”라고 말하며 요즘 10억 원쯤에 해당하는 5000만 원을 선뜻 내주었다고 한다. 윤 회장은 그때 박연차 회장이 내준 돈이 어려움을 겪던 자신에게 힘이 되었고 이후 신발사업에 진출하는 데도 유용했다고 고백했다.
종합상사를 접은 윤 회장은 휠라 일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스포츠 의류 부문에만 치우쳐 있던 휠라 브랜드에서 신발사업의 가능성을 보고 그것에 매진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윤 회장이 시도한 휠라코리아의 신발사업은 휠라의 기존 주력 부문이던 의류사업 부문의 매출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탈리아의 휠라 본사에서도 윤 회장의 공을 인정, 1991년 정식으로 한국법인(휠라코리아)을 설립했고 윤 회장을 CEO로 임명했다.
윤 회장이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데는 CEO의 자질로 ‘3S’를 강조한 그의 마음가짐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윤 회장은 오래 전부터 CEO의 자질로 ‘스피드’(Speed), ‘강력’(Strong), ‘스마트’(Smart)를 강조해왔다. ‘언제 어디서나 경영 현황을 환히 꿰뚫어 보면서 신속히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 ‘신속한 결정을 위해서도 강한 덕목은 CEO에게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 ‘CEO는 도덕적으로 모범이 돼야 하고 고객과 임직원을 섬기며 부드럽게 열린 경영을 해야 한다’는 것이 윤 회장의 생각이다. 연봉이 18억 원이라고 떳떳이 밝힌 것도 “번 만큼 세금을 내야 한다”는 윤 회장의 신념에 기인한다. 특히 업종 특성상 현장을 중시하고 고객의 요구를 빨리 포착해 신속하게 결정하는 ‘스피드’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윤 회장의 생각이다.
이 같은 이유 덕분인지 휠라코리아의 매출은 매년 급성장했다. 휠라코리아 설립 초기만 해도 채 100억 원이 되지 못했던 연간 매출액이 해가 갈수록 껑충 뛰었다.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3000억 원을 넘어섰다. 2008년 3328억 원, 2009년 3574억 원, 2010년 4176억 원으로 계속 성장하고 있다. 올해에는 지난 1분기까지 매출액 1023억 원에 영업이익 98억 원, 당기순이익 51억 원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안정적인 수입원인 로열티를 받는다는 것이 휠라코리아의 큰 강점이다. 이는 당연히 2007년 글로벌 휠라를 모두 관리할 수 있게 된 데 기인한다. 2007년 4월 휠라코리아가 휠라룩셈부르크를 인수함으로써 글로벌 휠라의 주인공이 된 것을 두고 ‘새우가 고래를 먹었다’, ‘꼬리가 몸통을 삼켰다’는 등의 표현이 등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개 해외지사가 본사는 물론 전 세계 사용권을 모두 거두어들였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당시 윤 회장은 이미 ‘연봉 18억 원의 사나이’로 불릴 때였다”며 “그런 윤 회장이 전 세계 휠라의 주인이 됐을 때 개인적으로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즉 그럴 가능성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휠라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윤 회장과 휠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기에 윤 회장이 인수할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인수자금이었다. 2003년 휠라 본사를 인수할 때도 그랬지만 2007년에도 윤윤수 회장은 돈이 없었다. 윤 회장은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회사를 계속 성장시켜 “3년 내 세계 매출 10억 달러를 회복해 상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상장되면 투자자금을 모두 갚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투자자들에게 대박을 안겨줄 수도 있었다.
지난해 9월 결국 윤 회장은 약속을 지켰다. 공모가 3만 5000원인 휠라코리아 주식은 5월 27일 현재 7만 9000원이다. 공모가보다 2배 이상 오른 것이다. 동시에 윤 회장의 경영능력이 또 다시 입증된 셈이다. 또 휠라코리아의 지분 약 5%를 보유하고 있는 윤 회장 본인도 320억 원을 거머쥐었다.
휠라코리아 상장 후에도 윤윤수 회장은 멈추지 않았다. 그 결실이 바로 아큐시네트 인수로 나타난 것이다. 아큐시네트 인수 발표 직후 윤 회장은 “타이틀리스트 CEO를 맡아 직접 챙기겠다”고 말했다. 또 “다음주(5월 마지막 주) 중 미국으로 출국할 계획이다. 이번에 가면 꽤 오래 있을 것 같다”라며 아큐시네트 인수와 관련한 막바지 작업을 진행할 뜻을 내비쳤다.
이번 인수에 대해서는 긍정적·부정적 시각이 혼재한다. 무엇보다 12억 2500만 달러라는 인수 가격과 조달 가능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일단 인수 가격에 대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적절한 수준’인 것으로 보고 있다. 손효주 LIG투자증권 연구원은 “브랜드 인지도나 시장점유율 등을 비교하면 인수가는 적정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인수 가격이 적정가보다 워낙 높다고 평가되는 데다 사업 전망이 썩 밝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이 담보 없이 투자하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국민연금이다. 휠라코리아 지분 7.43%를 보유, 휠라코리아의 대주주 중 하나인 국민연금 측은 당초 컨소시엄에 참여했지만 “휠라코리아 최대주주인 윤 회장의 휠라 지분을 담보로 잡지 않고는 투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국민연금 자금을 투자받고 (중국 상장 등이)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윤 회장은 휠라를 내놓아야 할 것”이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 이유는 “국민연금은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고는 투자를 집행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휠라코리아와 미래에셋PEF는 “비록 국민연금이 최종 투자에 참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많은 투자자들이 투자하겠다는 요청을 하고 있어 별 문제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세계 4위의 공적 연기금인 국민연금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인수의향서(LOI)를 썼기에 인수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태다. 그러나 휠라코리아 측은 “지분 담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답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아큐시네트 인수 작업이 마무리되려면 7월 말까지 가야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윤윤수 회장에겐 투자자들을 어떻게 설득하느냐라는 큰 과제가 남아 있다. 조만간 있을 미국 출장길에서 윤 회장은 이 문제도 고민할 듯하다. 성공신화를 써온 윤 회장이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
임준표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