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석 부회장·허재명 대표 사업 성과 앞서거니 뒤서거니…일진그룹 “계열분리 결정된 바 없어”
1차전은 동생인 허재명 대표의 승리였다. 일진머티리얼즈는 국내 최초로 인쇄회로기판(PCB)용 동박(일렉포일)을 생산한 기업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2차전지용 동박 생산에 뛰어들었고, 전기차 수혜를 누리면서 초고속 성장 중이다. 일진머티리얼즈 시가총액은 현재 3조 4000억 원 수준으로 일진홀딩스 산하 계열사들보다 월등히 높다. 일진홀딩스(4540억 원)와 일진다이아(7470억 원), 일진전기(2300억 원) 등을 모두 합쳐도 일진머티리얼즈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경쟁은 끝나지 않았다. 허정석 부회장이 이끄는 수소탱크업체 일진하이솔루스가 상장하면서 허 부회장의 재역전이 예상된다. 일진하이솔루스는 9월 1일 공모가 3만 4300원, 시가총액 1조 2000억 원으로 상장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일진하이솔루스 주가가 9만 원까지 상승할 것으로 본다. 상장 후 주가 흐름이 예상대로 순항한다면 일진하이솔루스의 시가총액도 3조 원을 돌파하게 된다.
#수소탱크 탑재하고 허정석 부회장 역전극 쓰나
일진하이솔루스는 현대자동차그룹 수소차의 수소저장용기(연료탱크) 독점 공급업체다. 글로벌 시장에서 타입4 수소연료탱크 양산에 성공한 기업은 일진하이솔루스와 일본 도요타 두 회사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소차 시장은 전문가마다 전망이 크게 엇갈린다. 수소차는 친환경적이면서도 내연기관차 고용 인력을 그대로 승계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궁극적으로 수소차가 전체 자동차의 10%를 차지할 것으로 본다. 유진투자증권은 2020~2025년 수소차의 연평균 성장률을 87%로 전망했다. 하지만 전기차에 비해 효율이 낮아 가격 경쟁력이 낮고, 인프라 구축에 큰 비용이 든다는 점 때문에 수소차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도 적지 않다.
적어도 국내에서는 수소 충전소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정부 차원에서 수소차에 적지 않은 지원을 하고 있다. 글로벌 수소차 업계 1위 기업인 현대자동차도 매년 대규모 투자를 집행할 계획이다. 일진하이솔루스는 1세대 수소차 넥쏘의 차기 모델 공급 계약까지 완료한 상황이다.
일진하이솔루스는 지난 7월 2일 삼성중공업과 수소 선박 공동개발에 관한 양해각서(MOU)도 체결했다. 선박업계에서는 국제해사기구(IMO)의 온실가스 배출 규제로 수소 추진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진하이솔루스와 삼성중공업이 손잡고 수소 추진선 시장을 개척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최소 2025~2026년까지는 (수소차의) 성장성이 매우 높다”며 “경쟁업체가 등장하겠지만 수소차 시장이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어 중장기 성장성은 오랜 기간 유지될 것으로 본다”라고 분석했다.
일진하이솔루스의 전신은 1999년 설립된 한국복합재료연구소로 일진그룹이 2011년 인수했다. 이후 일진다이아가 2012년 단돈 85억 원에 설립한 일진복합소재(현 일진하이솔루스)로 한국복합재료연구소 경영권이 넘어갔다. 일진다이아는 2019년 일진하이솔루스 유상증자에 200억 원을 추가 투자하기는 했지만 현재 기업가치가 수조 원대로 평가받는 것에 비하면 투자금은 헐값 수준이다.
일진하이솔루스는 보수적인 경영으로 유명한 일진그룹이 2000년 이후 단행한 최초의 인수합병(M&A)이다. 인수 당시 허정석 부회장이 일진다이아 모회사 일진홀딩스 대표이사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공로도 허 부회장의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일진그룹은 눈에 띄는 활동은 거의 하지 않는 보수적인 그룹이지만 신사업만큼은 적극적으로 잘 준비하는 편”이라며 “단 한번의 M&A가 수소탱크업체였다는 점이 이채롭다”고 평가했다.
#허재명 대표의 일진머티리얼즈, 생산시설 증설에 박차
허재명 대표의 회사인 일진머티리얼즈도 사세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진머티리얼즈의 현재 동박 생산능력은 국내 공장 2만 톤(t), 말레이시아 2만t 수준이다. 여기에 더해 말레이시아에 2만t 생산설비 증설을 연내 마무리할 예정이다. 말레이시아 공장은 최대 생산능력 10만t까지 증설할 예정이고, 이 외에도 유럽 공장 신설을 위해 다수의 국가와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진머티리얼즈의 가장 큰 강점은 고객 다변화다. 하나금융투자는 일진머티리얼즈의 고객사 비중이 삼성SDI 45%, LG에너지솔루션 25%, 중국 CATL 10%일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 4월에는 스웨덴 배터리업체 노스볼트와 10년 동안 약 4000억 원(1만 7000t) 규모의 동박 공급 계약을 맺었다. 노스볼트는 독일 폴크스바겐과 배터리 내재화 사업 관련 협력 관계에 있다. 일진머티리얼즈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일감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2차전지 사업에 리스크 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진머티리얼즈를 비롯한 동박 업체들의 최대 위험 요인은 전고체 배터리 개발이다. 전고체 배터리는 배터리 양극과 음극 사이의 전해질이 고체로 된 2차전지로 에너지 밀도가 높아 대용량 구현이 가능하다. 문제는 전고체 배터리에 동박이 아닌 다른 소재로 대체될 가능성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전고체 배터리 내 리튬메탈 음극을 적용하면 고체 전해질이 동박을 부식시킬 우려가 있어 기존 동박을 그대로 사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동박을 다른 소재로 대체하거나 니켈도금층을 추가하는 형태로 변화할 것”이라고 전했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전고체 배터리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일진머티리얼즈 또한 고체 전해질을 개발 중”이라면서도 “수소차, 전기차 모두 위험 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자동차 부품회사가 내연기관차 중심이라 신사업을 찾지 못해 허덕이는 것에 비하면 일진그룹은 사정이 상당히 좋은 편”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일진그룹 관계자는 “일진머티리얼즈의 향후 사업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라며 “일진그룹 계열분리에 대해서도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라고 전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