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부터 SK가스 규제 대상, 계열분리 안하면 사업 지장 가능성…관계사들 “거래 모니터링, 계열분리 없다”
일감 몰아주기 문제를 해결하려면 계열분리를 통해 최태원 SK그룹 회장 측과의 특수관계를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SK디스커버리 측은 “계열분리는 없다”고 강조하지만 계열분리를 하지 않으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로 인해 향후 사업에 지장이 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SK그룹 계열분리 안 하나 못 하나
SK그룹의 계열분리설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최태원 회장의 사촌형이자 최창원 부회장의 친형인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은 2004년 6월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시간을 갖고 형제들과 그룹의 분가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최신원 회장은 2011년에도 “적합한 계열분리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최신원 회장의 부족한 지분 때문에 계열분리를 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가 현재 보유 중인 지분은 SK(주) 0.04%, SK네트웍스 0.83% 정도밖에 없다. 그룹 내 발언권도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2009년 당시 SKC 대표이사를 맡았던 최신원 회장은 SKC 자회사 SK텔레시스를 통해 휴대폰 단말기 사업에 진출했다. 그러나 SK텔레시스의 피처폰 ‘W’와 스마트폰 ‘리액션폰’은 모두 시장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SK텔레시스는 적자를 거듭하면서 완전자본잠식에 빠졌다. 최신원 회장은 사업 부진에 책임을 지고 2015년 SKC 대표이사에서 사퇴한 후 2016년 SK네트웍스로 적을 옮겼다.
최창원 부회장의 상황은 다르다. 최창원 부회장은 SK디스커버리 지분 40.18%를 가진 최대주주다. 최태원 회장은 SK디스커버리 지분 0.11%를 보유 중이고, SK(주)와 SK디스커버리 간 지분 관계는 없다. 최태원 회장이 SK디스커버리 지분을 매각하면 바로 공정위에 계열분리를 신청할 수 있다.
최창원 부회장은 경영 능력도 인정받고 있다. SK디스커버리는 SK케미칼, SK가스, SK플라즈마 등을 자회사로, SK바이오사이언스를 손자회사로 두고 있다. 최 부회장은 SK디스커버리 대표이사, SK가스 사내이사 등을 맡으면서 직접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아스트라제네카(AZ)의 코로나19 백신을 위탁생산하고, 최근에는 자체 개발한 백신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임상 3상 승인을 받는 등 바이오 업계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올해 상반기에만 매출 2573억 원, 영업이익 1199억 원을 기록했다. 혈액제제 전문 회사인 SK플라즈마도 지난해 처음으로 매출 1000억 원을 돌파했으며 내부적으로 기업공개(IPO·상장)를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신원 회장과 달리 최창원 부회장은 계열분리 관련 입장을 내비친 적이 없다. 재계 한 관계자는 “최창원 부회장은 이미 SK디스커버리를 독자적으로 경영하고 있어 계열분리를 해도 실익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는 것 같다”며 “계열분리를 단행하면 로고 등을 변경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고, 영업에 있어서도 SK 계열사로 남는 것이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SK디스커버리 관계자도 “계열분리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SK가스의 미래는?
SK디스커버리의 자회사 SK가스는 올 연말부터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오는 12월 30일 시행 예정인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에는 ‘총수 일가 보유 지분이 20% 이상인 회사가 지분을 50% 초과해 보유한 회사’를 규제 대상에 포함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현재 SK디스커버리는 SK가스 지분 72.20%를 갖고 있다.
현행법은 합리적 고려나 비교 없이 계열사 간 상당한 규모의 거래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여기서 ‘상당한 규모’는 연간 내부거래 금액이 200억 원 이상이거나 내부거래 비중이 연 매출 12%가 넘는 경우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SK가스의 2020년 매출 3조 6318억 원 중 26.34%에 해당하는 9566억 원이 내부거래로 발생해 ‘상당한 규모’에 해당한다.
공정위는 내부 규정에 따라 일감 몰아주기를 한 업체에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때로는 검찰 고발도 할 수 있다. SK그룹 계열사는 앞으로 SK가스와 거래할 때 ‘합리적 고려나 비교’를 철저히 해야 공정위의 칼날을 피할 수 있다. SK가스와의 계약 조건도 타 업체와 최소한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야 한다. SK가스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최창원 부회장이 일감 몰아주기 제재를 피하기 위해서는 SK가스의 내부거래액을 줄이거나 SK가스를 매각해야 한다. 그러나 당장 1조 원에 달하는 내부거래액을 포기하기는 어렵고, 매출 3조 원이 넘는 회사를 쉽게 매각할 수도 없다. 오히려 SK디스커버리는 올해 3월 SK가스 지분율을 67.93%에서 72.93%로 늘렸다.
최창원 부회장의 계열분리설이 나도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SK디스커버리가 SK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를 단행하면 SK(주) 지배 아래 있는 계열사와 특수관계가 해소된다. SK가스의 지난해 내부거래는 SK케미칼(내부거래액 53억 원)과 SK가스의 싱가포르 자회사 SK가스인터내셔널(2972억 원)을 제외하면 모두 SK(주) 산하 계열사들과 이뤄졌다. 최 부회장이 계열분리를 진행한 후 SK가스인터내셔널과의 거래만 조절하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물론 계열분리가 된다 해도 끝은 아니다. 총수의 6촌 이내 친족이나 4촌 이내 인척이 운영하는 회사가 계열분리하면, 해당 회사는 분리 후 3년 동안 과거 속했던 대기업집단과의 거래내역을 공정위에 제출해야 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부당 지원 조항에 해당한다면 계열분리 후에도 제재를 받을 수 있다”면서도 “일감 몰아주기 제재는 각 회사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하고, SK가스 개별 회사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하기가 어렵다”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공정위에 자료를 제출하는 3년 동안 내부거래액을 지나치게 늘리지만 않으면 처벌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정기관 한 관계자는 “계열분리 후 거래 현황을 제출 받는 것은 일종의 점검 차원으로 계열분리 후 일감 몰아주기로 처벌한 사례는 거의 없다”면서도 “SK디스커버리가 사익편취로 문제된 적은 없어 마음만 먹으면 공정위의 계열분리 허가를 받을 듯하지만 SK가스가 규제 대상에 포함된 후에는 공정위 심사에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SK가스 관계자는 “기존에도 정상적인 가격을 측정하는 등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해당하는지 모니터링하면서 거래를 해왔기 때문에 당장 일감 물량의 큰 변화는 없을 것 같다”면서도 “공정위 규정에 따라 거래처 다변화 등을 통해 점진적으로 내부거래 비중을 낮출 것”이라고 밝혔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