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화 가능성 일축하며 운신의 폭 좁혀…양당 대선후보 확정되면 역할 생길 수도
김동연 전 부총리는 8월 20일 고향인 충북 음성읍 행정복지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거대 양당이 아닌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출마한 것처럼 소박하게 고향인 음성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하는 것”이라며 “최선을 다해 제 길을 뚜벅뚜벅 가겠다”고 밝혔다.
김동연 전 부총리 등장으로 정치권에서는 차기 대선판의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김 전 부총리의 독자 행보, 김 전 부총리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이 참여하는 제3지대 세력, 김 전 부총리와 국민의힘 최종 후보 간 단일화 등이다. 더 나아가 더불어민주당 최종 후보와 김 전 부총리의 단일화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김동연 전 부총리는 여의도 정치와는 확실한 선을 긋는 모양새다. 김 전 부총리는 앞서 기자간담회에서 “민생이 매우 어렵지만 정치권은 기득권 유지를 위한 싸움만 한다”며 “기존 정치권에 숟가락 얹지 않고 완주하겠다”고 강조했다. 8월 2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서도 단일화 시나리오에 대해 “지금 단일화를 생각하면 우스운 이야기”라며 “끝까지 완주한다”고 다짐했다.
제3지대 구축을 위한 안철수 대표와의 만남 가능성에 대해서도 “그럴 계획이 없다”며 “세 유불리나 정치공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맞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대신 김 전 부총리는 지금의 양당 정치 구조를 벗어난 변화를 추구한다고 설명한다. 김 전 부총리는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디지털이나 메타버스, 블록체인을 이용한 정치 플랫폼을 만들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직접 민주주의에 가까운 아래로부터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여건이 성숙돼 있다”며 “우선은 정치 플랫폼을 만들어서 많은 분들과 소통하고 참여하는 모습으로 하면서 창당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나가보고 싶다”고 밝혔다.
이러한 김동연 전 부총리 행보를 놓고 정가에선 의문부호가 달린다. 먼저 김동연 전 부총리 대선주자 여론조사 지지율은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다. TBS 의뢰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8월 27일부터 28일까지 이틀간 실시한 ‘범보수권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김동연 전 부총리는 1.9%를 기록했다. 원희룡 하태경 황교안 등 약세 후보들과 오차범위 내로 큰 차이는 없지만, 열거된 후보들 중 가장 낮은 수치였다(여론조사 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OBS 경인TV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8월 25일부터 26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대통령 후보 적합도에서 김동연 전 부총리는 0.9% 지지율을 나타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김 전 부총리를 여론조사 후보군에 포함도 하지 않고 있었다.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국민들 앞에 나서 비전을 제시하는 빈도를 높여야 하는데, 대선 출마 선언 이후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한 관계자는 “정당에 입당하거나 캠프에 정치인이 있으면 후보 본인이 직접 방송 인터뷰 등에 등장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대신 출연해 후보를 알리는 효과를 볼 수 있다”며 “그런데 김동연 전 부총리 캠프에는 정치인이 없다보니, 인터뷰에 나설 관계자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존재감은 점점 사라져가는 것”이라고 전했다.
국민의힘 한 후보 캠프의 관계자 역시 “한국 정치사에서 ‘제3지대’가 홀로 성공한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제3지대가 그 자리에서 새로운 정치 실험을 하고 영향을 발휘하려면 일정 부분 이상 지지율이 견고하게 받쳐줘야 한다”며 “그런데 김 전 부총리의 현재 지지율은 기대 이하다. 다른 후보들에 비해 출마 선언도 늦었고, 잠행을 보이고 있다. 혼자서는 지지율을 끌어올려 돌파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동연 전 부총리는 계속해서 부인하고 있지만, 정치권에서 막판 여야 모두 단일화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김동연 전 부총리는 범야권 후보로 분류된다. 국민의힘 인사들도 김 전 부총리에 러브콜을 끊임없이 보내고 있다. 반면 민주당에서는 문재인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를 지낸 ‘우리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전부터 민주당에서는 ‘김 전 부총리를 모셔올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 정치권과 선을 긋는 김 전 부총리 행보가 향후 단일화 과정에서 ‘몸값 높이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추후 ‘말 바꾸기’로 비판 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김 전 부총리가 정치 신인으로 아직 정치인의 언어를 제대로 익히지 않은 것 같다”며 “향후 여지를 남겨둘 필요가 있었는데 단일화 가능성에 대해서도 절대 없다고 확답을 하고 있다. 그럼 나중에 지금의 답변이 입장 바꾸기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정치적 운신의 폭을 스스로 좁히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전망이 나왔던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손을 잡을 가능성도 현재로서는 요원해 보인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지난 7월 “김동연 전 부총리가 ‘정권교체보다 정치세력 교체가 더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며 “일반 국민들의 삶이 피폐해지기 시작하면 ‘역시 경제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게임 체인저’로서 기대감을 표했다.
하지만 김 전 비대위원장은 지난 8월 17일 CBS라디오 ‘한판승부’에 출연해서는 김 전 부총리에 대해 “별의 순간을 잡지 못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답답한 상황이 돼버렸다”고 평가했다. 이어 “늦어도 작년 연말쯤 나와서 시도했으면 어느 세력에 붙을 수 있고 했는데, 시기가 너무 늦었다”며 “자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정도까지 갈 수 있겠나. 금방 결론이 나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 전 부총리 완주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피력한 셈이다.
그럼에도 김동연 전 부총리의 역할은 거대 양당의 최종 대선후보가 확정되는 11월 이후 생길 수 있다는 관측이다.
과거 대선 캠프에서 활동한 정치권 관계자는 “2002년 대선을 생각해보면 정몽준 당시 후보가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대선을 4개월여 앞둔 시점이었다. 노무현 당시 후보가 민주당 후보로 선출됐지만 당 안팎에서 흔들기 시작했을 때였다”며 “이번에도 양당의 최종 대선후보가 확정됐는데 지지율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김동연 전 부총리의 자리가 생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결국 김동연 전 부총리는 이번 대선에서 스스로 역할을 만들 수는 없고, 반사체로서 역할로 한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