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찾아온 황새 향해 “우~ 우~”
▲ 포항 황선홍 감독은 지난해 결별했던 부산과의 원정경기에서 상대팀의 거친 수비와 서포터스들의 야유에 시달려야 했다. 사진제공=포항스틸러스 |
구미를 확 잡아끄는 요소다. 초록 그라운드에 새로운 스토리가 나타났다. 때 아닌 ‘유다논쟁’이 펼쳐지고 있다. 바로 포항 스틸러스 황선홍 감독의 ‘벤치 갈아타기’에 대한 얘기다. 아름다운 퇴장이었다면 좋았겠지만 사실 황 감독이 지난 시즌까지 머물렀던 부산 아이파크와의 결별 과정은 솔직히 훈훈하지 못했다. 2010남아공월드컵이 열렸던 작년 여름을 기점으로 황 감독이 부산 지휘봉을 놓을 것이란 소문은 축구계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물론 진상이야 당사자들만이 알겠지만 이 과정에서 황 감독과 특정 에이전트의 연루설, 부산 구단의 선수 스카우트 과정에서의 외압 등 실체 없는 별별 이야기들이 나돌면서 양측의 결별이 기정사실화됐을 때 이미 부산 구단과 황 감독은 서로 ‘루비콘 강’을 건넌,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돼 있었다.
그리고 예정된 수순대로 부산 구단과 황 감독은 결별했고, 각자 갈 길을 찾았다. 황 감독은 현역 시절, 자신을 전설로 만들었던 포항으로 떠났고 부산 역시 기다렸다는 듯 서울에서 수석코치로 활동하며 넬로 빙가다 전 감독을 보좌했던 안익수 감독을 선임했다.
최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렸던 K리그 부산과 포항의 승부는 그래서 더욱 열기가 끓었다. 여기에 황 감독이 모 스포츠지와 인터뷰에서 “부산 시절에는 선수들의 전술 이해도가 낮아 원하는 축구, 원하는 색채를 낼 수 없었다”고 코멘트를 했다는 루머까지 퍼지면서 부산 선수단 사이에선 “옛 스승에게 본때를 보여주자”는 차가운 기류가 감지되기도 했다.
부산 안익수 감독은 이때 선수들을 향해 “이번 경기는 축구가 아닌, 전쟁처럼 치르자”고 주문했던 것으로 알려졌고, 황 감독의 애제자 한상운도 “골을 넣으면 반드시 상대 벤치 앞에서 세리머니를 하겠다”며 이를 갈았으니 부연 설명이 필요 없다.
포항은 결국 부산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고, 부산 서포터스는 황 감독에게 따스한 갈채 대신 평소 볼 수 없던 야유로 포항 벤치의 혼을 빼놨다.
경기가 종료된 후 황 감독은 “부산이 수비할 때 보니까 전쟁 같았다”며 조금은 냉소 섞인 평가를 남겨 여운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벤치가 아닌, 선수들에게도 비슷한 스토리가 탄생했다. 울산 현대 골게터 설기현이 그 주인공. 해외 무대에서 K리그로 돌아온 설기현을 처음 받아줬던 팀은 포항이었다. 하지만 올 시즌 설기현은 울산에 새 둥지를 틀었다.
물론 남다른 사연이 있었다. 새로 부임한 황 감독이 설기현을 1군이 아닌, 2군에서 훈련을 시켰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던 것. 설기현이 몸담은 울산과 포항의 대결도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설기현이 공을 잡을 때마다 포항 서포터스는 정상 경기력을 발휘할 수 없게끔 했다.
이보다 더 불운한 사나이가 또 있을까. 한때 한국 축구의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어갈 것이라 기대를 모았던 제주 유나이티드 신영록이 쓰러졌다. 신영록은 대구와 홈 경기를 치르다 갑작스레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실려 갔다. 아무런 충돌 과정이 없었다는 사실이 더욱 의아했고, 놀라웠다.
신영록 사건을 계기로 K리그 동료들이 동업자 정신을 발휘했다. 특히 멜버른 빅토리(호주)와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제주의 캡틴 김은중이 유니폼 속에 받쳐입은 셔츠에 쓰인 문구는 팬들을 뭉클하게 했다. ‘일어나라! 영록아!’ 같은 팀 소속은 아니지만 국내외에서 신영록을 향한 격려의 메시지는 계속됐다. 국내뿐 아니라 구자철(볼프스부르크)과 기성용(셀틱) 등 해외파는 자신의 트위터에 신영록의 쾌유를 기원하는 글을 남기며 뜨거운 감동을 줬다.
이밖에 벤치에서 펼쳐지는 입심 대결도 남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더 이상 축구에 일방통행식 리더십은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걸 몸소 실천하는 선두주자가 있으니, 다름 아닌 서울의 최용수 감독대행이다. 최 감독대행의 화려한 언변에 축구계가 깜짝 놀라고 있다. 6년 넘게 그를 지켜봤던 서울 구단 프런트도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최용수가 맞느냐”는 분위기다.
구수한 경상도 토박이 사투리 속에 뼈가 묻어 나온다. 기자들을 만날 때마다 “이런 자리가 얼마나 불편한지 모르겠다”고 둘러대지만 벌써 스포츠 미디어는 최용수의 어록을 만들어 낼 정도로 관심이 대단하다. “(코치로서)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을 보냈지만 장님은 아니었다”는 게 최 감독대행의 의미심장한 설명.
당연히 서울 선수들도 ‘큰형’ ‘삼촌’같은 최 감독대행을 유독 잘 따른다. 공식 인터뷰 석상에서 스스럼없이 고참급부터 젊은 피들과도 농담을 주고받는 장면은 요즘 서울이 얼마나 ‘잘될 집안’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잘되는 집안’이었다면 지금의 최 감독대행의 벤치행도 미뤄졌겠지만 말이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