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유휴 공간을 창고로 활용하면 배송 빨라지고 탄소 배출 감소…“소비자 데이터 축적도 가능”
#제품 할인보다 배송 효율
온라인 주문도 오프라인을 떼어 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소비는 온라인에서 이뤄지지만 배송은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온라인 주문 상품은 모두 배달과 배송이라는 물리적 이동과 오프라인 공간을 거치게 된다.
이 때문에 최근 물류 시스템에도 변화의 기류가 보이고 있다. 배송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치는 점점 높아지면서 무료배송을 넘어 ‘언제, 어디서나, 더 빨리, 더 신선한’ 배송을 요구하게 됐다. 이커머스업계 관계자는 “최근엔 소비자가 제품 할인보다 배송의 효율과 편리에 더 높은 호감도를 보이면서 쿠팡의 로켓배송과 마켓컬리의 샛별배송이 물류 시스템의 차별화로 성공했다”고 설명하며 “기존 유통구조 역시 변하고 있다”고 전했다.
단순히 물건을 파는 데 집중했던 유통업계와 물건을 전달해주는 데 그쳤던 물류업계가 혼용되며 물류망이 곧 유통망이 됐다는 것. 배송 전쟁이 시작되면서 이마트와 롯데마트 등 기존의 거대 유통 시스템들조차 한발 늦게 배송 전쟁에 뛰어들며 자사 물류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애쓰고 있다.
여기에 최근 등장한 개념이 '마이크로 물류'다. 마이크로 물류란 말 그대로 물류 시스템을 잘게 쪼갠다는 뜻이다. 기존의 도시 외곽 거대 물류창고에서 여러 개의 지역 창고를 거쳐 목적지에 도착하던 물건이 도심의 빈 공간을 활용해 여러 창고를 거치지 않고 최소화된 경로로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온라인에서 생필품을 주문하면 기존에는 도시 외곽, 서울이라면 경기도 용인이나 김포 등의 대형 물류 창고에 입고된 물건이 큰 단위 창고에서 작은 단위 창고로 최소 2~3개의 지역 창고를 거쳐 소비자의 손에 들어왔다. 반면 마이크로 물류는 도심의 상점이나 비어 있는 건물 등의 유휴 공간이 소규모 지역 물류 창고 역할을 하게 된다. 상품은 대형 물류 창고와 몇 개의 지역 창고를 차례로 거치지 않고도 상품별로 나뉘어 바로 지역의 소규모 유휴공간에 보관되었다가 소비자의 손에 다이렉트로 전달된다.
실시간으로 상점의 유휴공간을 중개하는 플랫폼도 생겼다. 국내에선 처음 시도되는 플랫폼이다. 유휴 공간 중개 플랫폼 ‘럭스테이(LugStay)’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블루웨일컴퍼니는 전국에 2000여 개의 상점과 빌딩 유휴공간을 중개한다. 규모가 작은 일반 상점들에는 소비자 물품 보관과 제품 픽업을 위한 공간을 고객과 연결해준다. 코로나19로 영업이 어려운 소상공인들은 상점의 빈 공간을 이용해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공실을 걱정하는 임대업자도 부가 수익을 노릴 수 있다.
공간이 큰 경우엔 공간을 중심으로 판매자와 배송기사를 연결해 도심 속 마이크로 물류 거점으로 활용한다. 주문이 발생하면 판매자는 럭스테이를 통해 유휴 공간에 물건을 맡기고 배송기사는 가장 효율적인 배송 루트를 택한다. 마이크로 물류를 활용하면 물건을 분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택배 기사들의 시간 외 노동과 그로 인한 잦은 과로사 등을 비롯해 명절이면 떠오르는 물류대란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어 보인다.
이 외에도 교환·환불 서비스 등 고객의 요구에 대한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고, 대규모 물류센터 구축에 따른 막대한 투자비용 절감 등 다양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럭스테이 플랫폼을 운영하는 오상혁 블루웨일컴퍼니 대표는 “소비자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유휴공간을 물류의 거점으로 활용하면 고객은 더 빠르게 배송 받을 수 있고 물류에도 혁신적인 동선효율화가 가능해진다. 자연스레 운행 거리가 감소하고 유류비도 줄어든다. 물류 최적화가 가능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탄소 발자국은 줄이고, 소비자 데이터는 쌓고
마이크로 물류가 가능해지면 장거리를 이동하던 택배 차량은 운행을 최소화하게 되고 그로 인해 유해 배출가스도 감소해 탄소배출을 줄이게 된다. 마이크로 물류가 저탄소배송을 가능하게 하는 셈이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액센추어가 발표한 ‘마이크로 물류 도입 확산에 따른 라스트마일 생태계 분석 보고서’는 온라인 주문건수의 절반 정도를 마이크로 물류로 처리할 경우 배송 차량의 운행이 크게 감소하면서 유해가스 배출도 16~26%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로 인해 배송 차량에서 배출되는 유해가스인 이산화탄소, 질소산화물, 미세먼지 등이 크게 줄어든다.
결국 마이크로 물류는 제품의 '탄소발자국'을 직접적으로 줄이는 역할을 한다. 탄소발자국이란 제품 및 서비스의 원료채취, 생산, 수송·유통, 사용, 폐기 등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가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계량적으로 나타낸 지표를 말한다.
마이크로 물류는 라스트마일의 효율을 위해 탄생했다. 라스트마일이란 물류 시스템의 여러 배송 단계 중 소비자와 만나는 최종 단계를 말한다. 라스트마일은 배송 단계 중 가장 비효율적인 구간으로 알려져 있다. 교통 체증과 배송 시 주차 문제, 높은 공차율 등으로 인한 비용 증가와 함께 물품 파손과 분실의 위험도 따른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라스트마일에 소요되는 비용이 물류 전체 과정 중 53%에 달한다. 상품 집화와 분류, 물류터미널 간 배송 비용을 넘어선다”며 “제조사로부터의 물건을 집화하는 과정인 퍼스트마일과 물류터미널 간의 이동인 미들마일과는 달리 라스트마일은 택배 하나하나가 각각의 소비자까지 가는 과정이라 예상치 못한 변수가 많다”고 말했다.
판매자와 배송기사를 연결해주는 스타트업 ‘히얼위고’는 상품을 최종 소비자에게 배송하는 라스트마일 업체다. 한태민 히얼위고 대표는 “라스트마일의 최적화를 위해 마이크로 물류가 필요하고 도심 유휴 공간을 활용하면 마이크로 물류 허브를 쉽게 구축할 수 있다. 마이크로 물류는 환경과 효율을 동시에 챙길 수 있는 배송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이커머스 관계자는 “기존에는 물류의 비효율 요소였던 라스트마일이 최근에는 이를 활용해 소비자 거주지를 비롯해 소비자 성향 및 소비 트렌드 등 소비자 데이터 축적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며 “소비자 정보를 활용해 소비자가 원하는 배송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는 만큼 라스트마일과 이를 원활하게 하는 마이크로 물류가 유통‧물류업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