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추석 직전 부친 박정희 비판 기자회견 승부수…윤·홍 ‘고발 사주 의혹’ 놓고 대립각 세울듯
정치권에서는 시계를 거꾸로 되돌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추석 밥상 승부수’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9년 전 ‘박근혜의 추석’은 국민의힘 유력 후보들에게 명절 밥상의 위력을 가장 잘 설명하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 추석 직전 벼랑 끝 박근혜
2012년 추석 직전, 대세론을 형성해왔던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대선을 3개월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본인의 실언에다, 당 안팎 관계자들의 헛발질까지 겹치면서 경쟁 후보들에게 밀리는 상황까지 몰렸기 때문이다. 그해 추석은 9월 30일이었는데 추석을 코앞에 둔 9월 23일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박 후보 대세론이 무너져 내렸다는 수치가 나온 것이었다.
박근혜 후보 경쟁 상대는 제3지대 안철수, 그리고 1야당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였다. 양자대결에서는 안철수 후보가 모든 여론조사에서 박 후보를 앞섰고, 박 후보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도 2개 조사에서 추월을 허용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KBS와 미디어리서치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대 박근혜 양자대결 지지율은 49.9% 대 41.2%로 안 후보가 오차범위를 벗어난 8.7%포인트(p) 차로 앞섰다. 동아시아연구원과 한국리서치 조사에서도 50.6% 대 39.9%로 10%p 넘는 격차를 보였고, 국민일보와 월드리서치의 조사는 49.9% 대 45.1%, 한국경제와 글로벌리서치의 조사에서는 48.2% 대 44.3%로 역시 안 후보가 우세를 보였다(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고, 이하 동일).
박근혜 대 문재인 후보의 양자대결에서도 격차가 크게 좁혀지거나 오차범위 내이긴 하지만 문 후보가 역전을 했다. 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는 45.0% 대 45.9%, 한국리서치 조사에서는 42.0% 대 47.7%로 문 후보가 그때 처음으로 박 후보를 앞섰다. 다자대결에서도 한때 40%를 웃돌던 박 후보의 지지율은 추석 직전 30%대로 하락했다. 월드리서치 조사에서 박 후보는 37.7%, 안 후보는 32.2%로 안 후보가 5.5%p 차로 추격했고, 문 후보는 20.7%를 보였다. 안철수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을 합칠 경우 50%대를 훌쩍 넘었다.
그 당시 여론조사를 다룬 신문 기사들을 살펴보면 그때 새누리당 관계자들은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양자대결에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도 뒤지다니 정말 큰일 나는 것 아니냐” “정권을 넘겨주게 생겼다”고 토로했다. 친박을 포함한 상당수 의원들은 “위기의 원인이 복합적이라 걱정스럽다”고도 털어놨다.
대세론이 뒤집어졌다는 여론조사 결과 발표 직전인 9월 10일, 박근혜 후보는 한 라디오방송에 나가 “인혁당 사건에 두 가지 판결이 있다”는 ‘실언’을 하면서 새누리당의 일부 지지층까지 박 후보 역사관에 공감을 못 했고 이런 상황이 지지율 하락으로 직결됐다. 2007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진 2차 인혁당 사건(1975년 8명이 사형당함)의 첫 확정 판결을 옹호하는 것처럼 비치면서 역사 인식 문제가 초대형 악재가 된 것이다.
박 후보는 이에 앞서 2012년 7월엔 “5·16은 그 당시 아버지로서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해 역사관 논란이 불붙기 시작했고 ‘인혁당 발언’은 그 판에 기름을 부은 형국이 됐다.
#추석 밥상이 살린 박근혜
대세론이 허무하게 무너져버린 박 후보는 추석을 코앞에 두고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한 승부수를 던졌다. 그는 추석을 불과 6일 앞둔 9월 24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그의 ‘영원한 정치적 모델’인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의 과에 대해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이 기자회견에서 “정치에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음은 과거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 민주주의 가치라고 믿는다. 그런 점에서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언급, 아버지 시대의 오류를 장녀가 강하게 질타했다.
박 후보는 프롬프터를 활용해 10분간 회견문을 읽어내려 갔지만 몇몇 대목에선 목소리가 떨렸을 만큼 박정희 대통령의 딸로서 감내하기 쉽지 않은 발언을 내놨다. 박 후보는 서두에서 “자녀가 부모를 평가한다는 것, 더구나 공개적으로 과오를 지적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아시리라 믿는다”고까지 하면서 인간적 고뇌도 털어놨다.
박 후보의 이날 발언은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진 것이었다. 박 후보는 그동안 5·16에 대해 “구국의 결단(2007년)”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2012년 7월)”이라고 했으며 유신에 대해선 “지금도 찬반 논란이 있으니 국민과 역사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2012년 7월)”고 했다. 박정희 시대의 공과 과에 비슷한 무게를 두는 발언들이었다.
박 후보는 또 “기적적인 성장의 역사 뒤편에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고통 받은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고 북한에 맞서 안보를 지켰던 이면엔 공권력에 의해 인권을 침해받았던 일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이로 인해 상처와 피해 입은 분들과 그 가족들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도 했다. 박 후보의 공식 사과는 새누리당 대선 주자로 선출된 이후 처음이었다.
중도층을 겨냥했던 박 후보의 승부수는 먹혀들었다. 추석 직후 조선일보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내놓은 여론조사에서 반전이 나타나는 등 박 후보는 추석 직전의 상황을 뒤집고 대세론을 다시 가동하기 시작했다.
추석 직후 여론조사에서 박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양자 대결은 안 후보 47.4%, 박 후보 44.7%였다. 열흘 전인 9월 21~22일 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는 안 후보(49.9%)가 박 후보(41.2%)에게 오차범위(±3.1%p)를 넘어선 8.7%p 차이로 앞섰지만 추석을 지나면서 두 후보의 차이가 2.7%p로 좁혀진 것이다.
박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양자 대결은 박 후보 46.4%, 문 후보 46.1%였다. 미디어리서치의 그 열흘 전 조사에서는 박 후보 45.0%, 문 후보 45.9%로 문 후보가 0.9%p 앞섰으나 이때 조사에선 박 후보가 0.3%p 앞섰다.
그 당시를 기억하는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그늘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매우 힘들었고 참모들도 정말 직언하기 힘든 사안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는 여론을 읽어내면서 결단을 내렸고, 이를 추석 밥상으로 직결시키면서 여론을 결집해 재역전에 성공하면서 청와대로 갔다”고 회고했다.
#윤·홍의 추석 밥상 쟁탈전
국민의힘 1차 컷오프를 앞두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유지해온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윤 전 총장을 맹추격하며 ‘2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홍준표 의원의 추석 밥상 쟁탈전이 가장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둘 모두 추석 밥상에 새 메뉴를 올리기보다는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을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해석으로 이어지게끔 이 메뉴를 조리하고 요리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전망이다.
윤 전 총장은 고발 사주 의혹을 집권세력의 공작으로 규정하면서 집권세력이 임기 동안 아무리 때려도 밀리지 않았던 자신을 후보로 뽑아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맞설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윤 전 총장은 9월 13일, 국민의힘 최대 지지기반이기도 하지만 민주당 대선 유력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 고향이기도 한 경북 안동을 찾아 당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고발 사주 건을 주도적으로 언급했다.
윤석열 전 총장은 “공작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지만,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제가 이런 거 한두 번 겪은 사람도 아니고, 오히려 고맙다”면서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그는 “맞으면 맞을수록 더 강해지는 강철처럼, 저한테는 이런 공작과 모략이 큰 힘이 된다. 바로 여러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발언, 참석한 당원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검찰 일부 관계자가 고발 사주 의혹에 관여한 것으로 드러나더라도 윤 전 총장이 검찰총장 재직 시절 이 고발 건을 사주한 증거가 나오지 않는다면 고발 사주 건이 오히려 호재가 될 수도 있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정권에 저항해오면서 탄압에도 굴복하지 않는 윤 전 총장의 이미지를 더욱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맞서는 홍준표 의원은 이런 윤 전 총장 이미지가 허상이라고 규정짓고 이를 무너뜨리는 전략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홍 의원은 9월 12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한 생각을 묻는 취재진에게 “제 문제도 아니고 당 문제도 아니며 후보 개인의 문제다”라고 언급, 윤 전 총장 책임을 강하게 부각시켰다.
그는 “민주당은 우리 당을 공범으로 엮으려고 프레임을 짜고 있는데 그 프레임에 넘어가면 바보 같은 짓”이라며 “경선 중에 왜 당이 나서서 후보 개인의 문제를 당의 문제로 떠안느냐”고 되물었다. 홍 의원은 윤 전 총장을 향해 “대장부답지 않다. 개인의 문제이기에 개인이 헤쳐 나가야 한다”고도 쏘아붙였다.
홍 의원은 그의 정치적 근거지인 대구·경북(TK) 지지층들의 지지 전환을 위해 윤 전 총장의 ‘과거 전력’을 추석 밥상에 집중적으로 올리는 데도 주력할 전망이다. 그는 9월 12일 박정희 전 대통령 고향인 구미를 찾아 “윤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때 특검 수사팀장을 했다. 적폐 수사 때는 우리 진영의 사람을 1000명 이상 조사하고 200여 명을 구속했다. 당시 구속 사유를 보면 뇌물 같은 건 거의 없고 전부 직권남용인데 이는 정치 수사를 한 것이다”고 주장하면서 강하게 날을 세웠다.
국민의힘 한 TK 초선 의원은 “의원 생활을 해보니 명절 민심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했다. 추석 민심을 다잡을 경우, 윤 전 총장이 대세론을 확실히 거머쥘 수도, 홍 후보가 역전을 이뤄낼 수도 있다. 큰 메시지 전략도 중요하지만 딱딱한 이미지의 검사 출신 두 후보가 소프트하고 서민적인 이미지를 추석 밥상에 올리고, 이를 제대로 인증 받는 것도 주요 과제”라고 했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