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수입차 유통, 올해 수소사업 총괄 예정, 승계 지렛대 될지 주목…코오롱 “승계 논의 일러”
#걸음마 수준이지만 시장 기대감 ↑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규호 부사장은 앞으로 그룹 내에서 코오롱인더스트리(코오롱인더), 코오롱글로벌, 코오롱플라스틱, 코오롱글로텍의 수소사업을 총괄할 예정이다. 앞서 9월 8일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 창립총회에 수소기업협의체 회원사로 참석해 수소사업에 대한 의지를 공식 표명했다. 이 행사에는 국내 수소경제를 주도하는 15개사 오너 경영인들이 참여했다. 이규호 부사장이 외부 공식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코오롱 계열사들은 다방면에서 수소사업을 펼쳐왔다. 코오롱인더는 국내 최초로 수소연료전지용 수분제어장치(내부 습도 유지 역할) 양산 체제를 갖추고, 현대차의 수소전기차 넥쏘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최근엔 수소차용 분리막인 고분자 전해질막(PEM) 국산화에 성공해 생산·판매 중이다. 수소연료전지 내에서 산소와 수소의 화학 반응으로 전기를 생성해내는 부품인 막전극접합체(MEA)도 2023년까지 양산 체제를 갖춘다는 목표다.
코오롱글로벌은 육상과 해상 풍력발전에 이어 풍력발전단지에서 생산한 전력과 수전해 기술을 활용해 친환경 수소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코오롱글로텍은 수소 저장·운송에 필요한 압력용기를 개발 중이고, 코오롱플라스틱은 수소연료전지의 효율성을 증진시키는 외함(하우징)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규호 부사장은 기존 그룹에서 추진 중인 수소사업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다양한 사업 영역에서 수소사업과의 접점을 찾아 수소경제 밸류체인 구축에 나설 계획이다.
현재 국내 수소사업은 현대차, SK, 포스코, 효성 등 4개 그룹이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코오롱은 이들을 뒤쫓는 형국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들 4개 기업이 수소에 투자하는 규모도 가장 크고 수소협의체 설립도 이끌어 온 그룹으로, 코오롱을 비롯한 다른 기업들은 막 시작하는 단계로 안다”고 전했다.
글로벌 탄소중립 정책과 완성차업계의 친환경 차 전환으로 수소 시장 전망이 매우 밝다는 점에서 시장 기대감은 크다. 최근 코오롱그룹 계열사들 주가가 급상승세를 보이는 이유다. 코오롱인더스트리 주가는 지난 6월 6만 원대에서 최근 11만 원대로 올랐다. 코오롱글로벌도 2만 원대에서 3만 원대로, 코오롱플라스틱도 6000원대에서 1만 원대 후반으로 상승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수소경제 전반의 밸류체인을 구축하고 소재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솔루션 제공자가 되기 위해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며 “수소사업 본격화로 성장성 등이 가시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수소, 이번엔 승계 지렛대 될까
이규호 부사장은 그간 맡았던 계열사에서 경영 능력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이 부사장은 2018년 코오롱글로벌 계열사 리베토 대표이사를 맡으며 경영 시험대에 올랐다. 리베토는 셰어하우스 사업을 영위하는 공유경제 기업이다. 매출이 2018년 12억 원, 2019년 35억 원, 2020년 46억 원으로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48억 원, 46억 원, 29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7월 이 부사장은 리베토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이 부사장은 2018년 11월부터 패션사업인 코오롱인더스트리FnC(코오롱FnC) 부문 최고운영책임자(COO) 전무로 승진했다. 하지만 코오롱FnC 매출은 2018년 1조 456억 원에서 2019년 9729억 원으로 줄어 ‘1조 클럽’에서 탈락했다. 지난해에는 8680억 원으로 덩치가 더 쪼그라들었다. 영업이익도 2018년 399억 원에서 2019년 135억 원으로 급락했고, 2020년에는 코로나19에 따른 타격으로 적자전환해 107억 원의 손실을 냈다.
물론 코오롱 측은 이 부사장이 코오롱FnC 재임 시절 온라인몰을 개편하고 온라인 전용 브랜드를 론칭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한 결과 최근 실적이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5월 온라인 골프 플랫폼을 출시하면서 골프 호황에 대비한 것도 한몫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말부터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165억 원, 올해 1분기 2억 원, 올해 2분기 153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흑자로 전환했다.
이규호 부사장은 지난해 말 코오롱FnC에서 코오롱글로벌로 소속을 옮기며 수입차 유통 사업을 맡았다. 부사장으로 승진한 것도 이때부터다. 코오롱글로벌은 1987년부터 국내 최초로 BMW를 수입 판매하기 시작해 현재는 미니, 롤스로이스, 볼보, 아우디 등으로 라인업을 늘렸다. 또 수입차 정비 사업까지 포트폴리오를 추가하며 수입차업계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수입차 유통은 코오롱글로벌 사업 중 알짜로 꼽힌다. 해마다 외제차 수요가 늘면서 유통과 정비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수입차 판매대수는 2016년 22만 5279대에서 2018년 26만 705대로 늘었고, 2020년 27만 4859대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해도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보복 소비로 1~8월 수입차 누적 판매 대수는 20만 3115대를 기록했다. 작년 동기(17만 724대)보다 3만 대 이상 늘어난 수치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이규호 부사장이 보다 안정적으로 실적을 쌓기 위해 실적과 전망이 좋은 사업부를 맡은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는다. 수입차업계 한 관계자는 “수입차 부문을 맡은 이유는 개인 취향이 반영됐거나, 큰 리스크 없이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일 수 있다”며 “수입차 이용 인구가 늘면서 수입차 정비시장 규모가 커졌고, 국내외 유통망이 촘촘해지면서 부품 가격에도 거품이 빠졌다. 차량 유지 관리 보수가 이전보다 훨씬 수월하고 저렴해지면서 수입차 수요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이규호 부사장이 수소 사업을 발판으로 승계 퍼즐을 맞춰나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 부사장은 아직 그룹 지주회사인 코오롱의 지분이 없다. 앞서 부친 이웅열 명예회장은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으면 주식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코오롱그룹뿐 아니라 많은 재계 3~4세 오너경영인들이 수소사업을 승계 지렛대로 활용 중이다. 한화그룹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 GS그룹 허세홍 GS칼텍스 사장, 현대중공업그룹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 등이 그 예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이규호 부사장은 차기 총수로서 그룹 전체에 대한 미래 사업을 구상해야 하는 위치”라며 “활발한 수소 투자로 차기 총수로서의 역량을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수소 관련 기술들은 연구개발 단계로 상용화 여부가 불확실하다. 기업마다 투자한다면서도 뚜렷한 계획을 내놓는 경우는 드문 이유”라며 “수소차 등 제품 상용화가 먼저인지 충전소 같은 인프라 구축이 먼저인지 정리되지 않았고 폭발 우려도 해소해야 한다. 성공 여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 내다봤다.
코오롱 관계자는 “아직 승계를 논하긴 이르다”면서도 “코오롱은 수소경제의 시작을 함께하는 기업이다. 아직 내부적 수소 전담 조직을 신설하진 않았으나 이규호 부사장은 수소를 비롯한 미래 사업을 전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부사장은 기존 사업을 단순히 받아서 운영한 것이 아니라 패션부문 신규 브랜드 론칭 등 꾸준히 새로운 시도를 해왔다. 재임기간 사업 기반을 다져놓았기 때문에 코오롱FnC 실적이 개선된 것”이라며 “타이밍의 문제일 뿐 그간의 실적과 이규호 부사장의 경영능력은 무관하다”고 덧붙였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