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시스템…회원이 ‘봉’이가
매출액이 1조원이 넘는 대규모 다단계 판매회사 (주)위베스트인터내셔날(위베스트)이 최근 방문판매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으면서 다단계 판매 업계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특히 위베스트의 ‘가입비’ 징수 여부가 다단계 판매의 불법성을 가리는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유사한 판매 관행을 보여온 상당수 업체들에는 일대 비상이 걸린 상태다. 이번 수사 결과에 따라 후폭풍이 다른 다단계 업체들로 일파만파 확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일 서울 수서경찰서는 국내 대형 다단계 판매 회사인 위베스트사의 대표이사 안아무개씨(46) 등 회사간부 5명을 방문판매법 위반혐의로 구속하고 지부센터장 이아무개씨(40) 등 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수서경찰서에 따르면 이 회사는 다단계 방문판매원을 모집하면서 판매원으로 등록시켜 주는 조건으로, 일반회원 44만원, 우수회원 1백15만원, 최우수회원 2백30만원 등 회원별로 일정액의 가입비를 부담케 해 모두 2만5천여 명으로부터 1조1천억원 이상을 걷은 혐의를 받고 있다. 회사측은 이 돈이 ‘물품구매비’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실상은 불법적인 가입비라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경찰은 위베스트가 회원들로부터 1조원대의 돈을 끌어모을 수 있었던 것은 ‘공유마케팅’ ‘실적 배당형 공유마케팅’ 또는 ‘포인트마케팅’으로 불린 신종 변형 기법을 적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실제 물건을 판 실적만큼 그에 따른 인센티브를 줘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일정한 점수 이상이 되어야만 돈을 주고 그 기준에 못 미칠 때는 점수를 무시하는 등 회원들로 하여금 기준 점수를 채우기 위해 무리하게 물품을 사도록 유도하는 행위 등을 말한다.
그러나 이 같은 피해 수치는 지금까지 확인된 것에 불과하고 경찰은 피해자가 4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또 위베스트가 올해 5조원 매출을 목표로 한 것이 확인돼 수사가 진행될수록 피해사례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참고로 다단계 판매 업계 의 양대 조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정식 회원 가입사 1백30개사의 전체 연 매출액이 2조5천억원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에 따르면 이 회사는 또한 가입비를 부담하면 고액의 수당을 받을 수 있다면서 고액투자를 유도해 금융 피라미드식 다단계식 영업을 하면서 판매원들이 받은 수당으로 물품 재구매 및 하위판매원 모집을 못할 경우 수당지급을 정지시키는 방법으로 강제 탈퇴시켜 부당이득을 취했다.
경찰 수사결과 이 회사는 리더스클럽, 하이클래스, 로얄패밀리, 로얄클래스 등으로 구분된 최상위층 회원 89명에게 월 수당 2천만원에서 1억원 이상을 지급한 사실을 강조, 사람들로 하여금 이들을 동경하며 판매와 투자를 하도록 유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상위 판매자 89명은 대부분 회사 창립 초기 멤버들로 불법 다단계 업체의 특성상 하위 판매원이 늘어날수록 돈을 버는 쪽은 초기 상위 판매자들뿐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이 상위 판매자들이 전체 회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0.35%에 불과했다. 또한 이번 경찰 수사에 대해 가장 강력히 항의하고 있는 그룹도 바로 이들이 주축이다. 경찰 관계자는 “상위 판매원이나 곧 상위 판매원으로 진입할 수 있으리라고 믿은 사람들은 ‘위사모’(위베스트를 사랑하는 모임)를 조직해 경찰수사에 강력히 항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 수사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위베스트가 판매원을 모집하면서 실제 가입비를 징수했느냐 여부다. 판매원 등록을 이유로 가입비나 교육비 명목으로 금품을 요구하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현재 방문판매법에서는 이 사항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 진술과 관련 서류, 전산자료 등 이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증거는 충분히 확보했다”며 “회사는 물품원가에 회원별로 44만원에서 2백30만원을 더 얹어 판매자들에게 넘겼다. 회사가 판매자들에게 넘긴 상품에는 원가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이 책정돼 있어 이들 상품이 일반소비자에게 판매되기보단 판매원들 사이에서만 유통되는 전형적인 불법 다단계 유형을 보여준다. 이 물품 중에는 상품가치가 없는 것들도 있다”고 자신감을 비치고 있다.
반면 구속된 안씨 등 피의자들은 “우리는 법 테두리 안에서 사업했다. 다른 업체들도 우리처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위베스트는 지난 3일 보도 자료를 통해 “가입비를 징수한 적이 없다. 이번 일은 네트워크마케팅 업체의 특수성 때문에 불거진 오해”라며 강력한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위베스트측은 “우리는 판매원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넘기고 물품 구입비를 받은 것뿐이다. 이 과정에서 판매원들에게 부담을 지우거나 물품 구입을 강요한 사실이 없다”며 “우리 회사는 금융업처럼 자본 납입을 통해 이익이 창출되는 구조가 아니며 상품을 구매 및 판매했을 때만 수익이 발생하고 수당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위베스트측은 이번 사건과 관련, 유명 로펌의 변호사 등 4명의 변호인을 선임해 법리 공방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몇몇 대형 다단계 업체들도 사건의 후폭풍에 대비해 고문 변호사 진용을 정비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경찰과 검찰은 향후 법정에서 위베스트의 위법성을 입증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편 검찰의 한 관계자는 “합법적인 다단계 회사는 일반 소비자에게 물건을 팔아 수익을 남기지만, 불법 다단계 업체들은 ‘사람사냥’을 통해 모집한 하위 판매자들에게 물건을 고액에 떠넘겨 이 돈을 상위 판매자에게 몰아주는 식이다.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불법다단계의 전체 시장 규모가 5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일부 지방에서 유통 및 금융질서를 어지럽히는 불법 다단계 회사들의 피해사례가 급증하고 있어 확인중”이라고 밝혀 수사 확대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암암리에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는 불법 다단계 업체들이 철퇴를 맞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